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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람페두사 그 이후 (1)

[논설위원칼럼] 람페두사 그 이후 (1)
10월 들어 지중해에서 두 차례나 충격적인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3일 지중해 남부에 위치한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부근에서 난민들이 탄 배가 침몰했습니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와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들이 4백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이 사고가 수습되기도 전,바로 1주일 뒤인 11일에도 또 난민선이 침몰해 27명이 숨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15일에도 람페두사 섬 부근에서 위기에 처한 배 2척을 구조했다고 이탈리아 해군이 발표했습니다. 두 배에서만 290명의 난민이 구조돼 람페두사 섬으로 옮겨졌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약 3만 2천명의 난민이 이탈리아와 몰타에 도착한 것으로 유엔은 집계했습니다. 이렇게 구조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앞선 두 사고 처럼 지중해에서 침몰하는 난민선이 많습니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지에 따르면 1993년 이후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수가 2만 5천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왜 난민들이 람페두사 섬으로 향하는 것일까요? 유럽으로 향하려는 난민들의 출신 국가가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3일 사고 처럼 소말리아나 에리트레아 출신들도 있고, 리비아 출신들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정정 불안으로 인해 이집트에서도 난민이 많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통해 나아가면 처음 만나는 유럽 지역이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입니다. 부근에 몰타가 있지만 몰타에는 입국이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튀니지에서 바로 북쪽에 있는 스페인 지브롤터 쪽으로 가는 루트도 난민들이 많이 이용했는 데 워낙 단속이 심하다 보니 최근에는 튀니지에서 113km 떨어진 람페두사 섬으로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막상 람페두사 섬은 시칠리아 섬과는 176km나 떨어져 있습니다. 이탈리아령이라지만 이탈리아 보다는 아프리카 쪽에 가깝습니다.

난민 발생 이유로는 정치적인 요인이 크겠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작용한다고 합니다. 에리트레아 경우 지난 2000년 이후 주기적인 가뭄과 기아 사태로 난민이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이런 난민들을 이용해 장사하는 조직도 생겼습니다. 11일 구조된 한 난민은 리비아에서 출발하기 전 난민 밀수조직에 4,800$를 지불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도 리비아를 출발하기 전 민병대가 들이 닥쳐 총으로 위협해 5,000$를 또 빼앗아 갔다고 폭로했습니다. 그 이후 민병대가 뒤에서 총을 쏴 몇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상태에서 난민선에 떠밀려 탔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람페두사 섬에 난민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20.2제곱km의 면적에 4천 5백여명이 사는 조그만 섬에 2만명이 넘는 난민이 수용된 상황이니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난민들은 이곳에서 수용돼 난민 심사를 받고 거부되면 본국으로 추방됩니다. 그렇다 보니 가끔씩은 난민수용소에서 폭동도 일어납니다. 이탈리아는 유럽 각국에 부담을 나눠 갖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요구입니다. 그렇지만 유럽 어느 나라도 이 요구를 섣불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몰려 들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고로 유럽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지중해를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책은 뭘까요? 먼저 이탈리아의 불만에 EU는 3천만 유로를 지원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리고 유럽 각국은 국경 단속에 더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도 더 이상 난민 사태를 방치하지 않겠다며 해상 순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15일 구조된 배들은 그런 순찰 과정에서 구조됐다는 후문입니다. 난민 밀수조직 단속도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해군은 15일 난민선 두 척을 구조하면서 밀수 조직이 탄 '모선'을 단속해 1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습니다.

EU 집행위원회는 바르샤바에 본부를 둔 국경관리청을 강화해 지중해의 불법 난민을 차단하고 수색과 구조 작업을 효율화하기로 했습니다. 말름스트룀 EU 내무담당 집행위원은 "인신매매 조직을 와해시키고 난민들이 유럽으로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들어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각국 내무장관들에게 설명했지만 결국 난민들의 유럽행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탈리아와 인접한 오스트리아는 국경 검문을 강화했습니다. 국경 지역인 브렌너에는 '새로운 철의 장막'이 드리워졌다고 이탈리아의 레스프레소지는 표현했습니다.

김인기 논설위원 대
유럽 각국에서는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치권에서도 난민 문제를 테이블에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탈리아는 당장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난민 문제를 터놓고 논의하자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내년 EU 의장국이 전반기는 그리스, 후반기는 이탈리아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나 모두 난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나라들입니다. 이탈리아는 벌써 부터 의장국이 되면 난민 문제를 EU의 주요 의제로 올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EU가 난민 문제를 공론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앞서 내년 5월 EU 의회 선거에서 난민 문제가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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