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뜻도 있지만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될 때가 더 많다. 검찰이 15일 발표한 대우조선해양의 비리 수사 결과를 보고 언뜻 떠오른 단어가 ‘끝판왕’이다. 일부 대기업의 비리가 이 정도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이 회사의 뻔뻔한 甲질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이 회사의 임원급 전문위원 모씨는 하청업체 직원에게 “아내가 TV를 보고 ‘김연아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하니 하나 사다 달라” 고 요구했다고 한다. ‘김연아 목걸이’의 가격은 45만원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문위원 모씨는 “아들이 수능 시험을 보는데 순금으로 된 행운의 열쇠를 사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청업체 직원은 할 수 없이 2돈(49만원 상당)짜리 행운의 열쇠를 사다 주었다고 한다. 수능 시험이 끝난 뒤에는 온 가족의 일본 여행 경비 일체를 제공받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드러난 비리의 사례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렇게 불법으로 금품을 제공받았다가 사법 처리된 임직원은 모두 1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1명은 구속되고 3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이 제공받은 금품 액수는 35억원에 달했다. 한 명당 평균 2억원이 넘는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고액 연봉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저지른 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대기업의 모럴 해저드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대우조선해양만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자료를 뒤져보면 밑도 끝도 없다. 지난 6일 발표된 한수원의 원전 비리 수사는 한심하다 못해 절망스럽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이 회사에서 위조된 서류가 277건이나 됐다고 한다. 이를 통해 비리에 연루됐다가 기소된 한수원 임직원만 100명이었다. 단일 사건으로 한 기업의 임직원이 100명이나 비리에 연루된 것은 아마도 전무후무한 기록일 지도 모른다. 비리 관련자들도 업계가 총 망라돼 있다. 발주처인 한수원과 납품업체, 검증기관들이 모두 한 통속으로 연루돼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먹이사슬처럼 먹고 먹히는 공생관계가 지속돼 온 것이다.
또 다른 통계도 있다. 최근 3년간 한수원의 부패, 비위 행위 관련 건수는 1천414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수원 직원 6명당 1명꼴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한수원으로 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른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김제남 의원실 자료)
새누리당 이채익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비리 관련 금액도 엄청나다. 지난 2001년 이후 구속, 불구속, 약식 기소된 한수원 직원은 모두 58명, 이들 가운데 순전히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된 직원은 45명이나 됐다. 이들이 수수한 금액도 46억3천600만원으로 1인당 1억300만원이나 됐다.
이렇게 숫자와 통계를 나열해 본 이유는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어디까지 와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 해서 터져 나오는 고위층의 정관계 로비 뿐 아니라 민간 기업과 일부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비리는 훨씬 더 은밀하고 고질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생충과 숙주처럼 서로 공생하면서 먹고 먹히는 부패의 고리는 근대화 이후 수십년이 지났어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는 많이 성장하고 글로벌을 지향한 환경도 많이 나아졌지만 공직자와 기업, 민간 분야 할 것 없이 총체적인 부패의 고리를 끊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기록과 사례들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투명한 사회로 한발 더 나아가기위한 특단의 조치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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