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남부 전 해상에 풍랑경보가 내려진 지난 15일 오후 3시 40분 포항 앞바다.
지난 4일 포항 영일만항에 도착해 화물을 내린 뒤 방파제 바깥에서 정박해 있던 8천여t급 파나마 화물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선박은 공선 상태로 묘박 중이었고 일본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묘박은 항구가 아닌 지역마다 정해놓은 특정 장소에 배를 정박하는 것으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는 것과 똑같다.
포항 앞바다의 경우 북방파제 바깥쪽이 묘박 장소다.
항구에 정박하면 세금을 물어야하기 때문에 대형 화물선들은 종종 묘박하며 이 기간에 선원들은 배 안에서 생활한다.
배 앞머리 양쪽에서 바닷 속에 내려져 있던 2개의 닻이 갑자기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선박이 심하게 흔들렸다.
당시 사고 해상에서는 초속 20~40m의 강한 바람과 함께 높이 6~8m의 큰 파도가 치고 있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어 배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19명의 선원들이 부리나케 갑판으로 뛰어올라와 2개의 닻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닻이 서로 꼬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거센 파도와 강풍으로 방파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결국 선박의 엔진을 가동해 방파제 충돌을 막으려 갖은 애를 썼지만 닻이 꼬인 데다 파도가 워낙 거세 속절없이 방파제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렇게 방파제에 부딪치길 수차례.
길이 132m에 이르는 큰 배가 뒷부분부터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사고 신고를 받은 해양경찰은 경비정 등을 투입해 사고 선박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기상 악화로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나서 특수구조대를 투입해 인명 구조에 나섰다.
그러나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아 구조대조차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해경은 사방이 깜깜한 오후 9시 10분께 비행기까지 현장에 투입해 조명탄 6발을 쏘며 인명 구조에 나섰으나 비까지 내리면서 현장 상황이 더욱 악화될 뿐이었다.
사고 선박에 있던 선원들 가운데 일부가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결국 선원 9명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고 구명보트 1척도 파손됐다.
16일 날이 밝으면서 배 위에는 8명의 선원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모습이 확인됐고, 2명은 추가로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기상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실종자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8명의 선원들은 동료를 잃은 슬픔과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교차했지만 사고 발생 후 20시간 가까이 추위에 떨며 악몽과 같은 순간을 견뎌야 했다.
중국 국적의 선원 씨에하이핑(38)씨는 "갑판 밑에서 기계를 담당하고 있는데 선장이 빨리 갑판으로 올라오라고 방송해 올라가보니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면서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를 타려고 했지만 파도가 높고 보트가 바다에 떨어져 결국 타지 못했고 밤새 닻을 내리려고 애쓰다가 결국 날이 밝았다"고 말했다.
(포항=연합뉴스)
포항 앞바다서 선박 침몰…긴박했던 사고 순간
풍랑경보에도 묘박중 방파제와 충돌…닻 꼬여 움직이지 못해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