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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같은 우산을 쓰고 있는 한국과 일본

[데스크칼럼] 같은 우산을 쓰고 있는 한국과 일본
지난 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한미국대사관 초청으로 일본 도쿄와 오키나와를 5박 6일 동안 다녀왔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 초청으로 일본에 있는 주일미군기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1년 5개월만에 다시 찾은 도쿄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의 눈길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화가 나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병기 주일 한국대사는 이제는 한류가 거의 사그라들었고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공개적으로 한국을 좋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도쿄에서 만난 한 지인은 불과 2-3 년 전만 해도 어디를 가든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인이란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불상사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악화된 한일 관계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입니다. 특히 식당과 같은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겐 치명타입니다.

제가 도쿄에 살 때 잘 가던 한국 식당이 있었습니다. 아카사카 번화가에 있는 이 식당은 한국인들은 물론 일본인들에게도 꽤 소문난 곳입니다. 인심 좋은 여사장이 밝고 큰 목소리로 주문을 받던 곳인데 두나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 손님들이 발길을 끊기 시작해 급기야 최근에 가게를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코리아 타운으로 알려진 오쿠보도리나 신오쿠보쪽 한인 상점가는 거듭되는 일본 극우단체의 반한 시위에 한류팬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한류바람이 거세게 불 당시 비싼 임대료를 주고 들어왔던 상인들이 많습니다. 커지는 임대료 부담 때문에 올 연말이 지나면 장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급증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도쿄타워_500
한일 관계의 악화로 대마도와 오사카 등지에서 열리던 한국 관련 축제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고, 올 상반기 일본의 對韓 투자액도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40%나 줄었습니다. 악화된 한일 관계가 앞으로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걱정입니다. 안 보고,안 만나고 살면 그만이지 하고 넘어가기에는 일본은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이 있습니다. 경제를 비롯한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도 절대 무시할 수 없고 말이지요.

다만 이번 일본 방문 일정을 통해서 저는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 예를 들면 물리적 충돌 같은 일은 빚어지지 않겠구나 하는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구요? 미국 때문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5박 6일 일정은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를 둘러보고 미국 외교관들과 장교들에게 브리핑을 듣고 질의응답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비보도를 전제로 한 비교적 상세한 브리핑과 질의 응답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미국이 펼쳐든 한 우산 아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됐습니다. 일본과 같은 우산을 쓰겠다고 우리가 선택한 적은 없지만 이 우산을 벗어나는 선택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는 미국의 동북 아시아 군사 전략은 일본과 한국을 하나의 戰域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한-일 두나라가 역사와 영토 문제 등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같은 우산 아래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우산 아래 있는 한 여기에서 치고받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산을 들고 있는 미국이 이런 사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쿄 일정의 첫째날 세 명의 일본 기자들을 만나 한일 관계에 대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일본 기자 가운데 한 명이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의도를 지적하는 한국 기자들의 발언에 반박하면서 영토 갈등 문제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은 분쟁지역인 센카쿠 열도 해역에 거의 매일처럼 함정을 보내고 심지어는 항공기까지 출격시키며 일본의 영토 주권을 위협하고 있지만 일본은 한국과 영유권 분쟁이 있는 독도에 그런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과서 등을 통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지만 군사적으로 영유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한 적도 없고
한국의 실효지배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그럴듯한 반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주장은 절반의 진실만이 담긴 말입니다. 일본은 독도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못하는 이유는 바로 미국 때문입니다.우리의 우산 아래 있는 한 같은 우산 아래 있는 사람들의 싸움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본과 한 우산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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