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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썩어가는 다리를 스스로 절단한 농민…뒤늦은 관심

[월드리포트] 썩어가는 다리를 스스로 절단한 농민…뒤늦은 관심
음력 2012년 1월

허베이성 바오딩시 한 농촌에 사는 농민 정옌량씨는 어느 날 아침 침상에서 일어나면서 양쪽 다리에 갑작스런 통증을 느꼈습니다. 너무 아파서 다시 털썩 주저 앉을 정도였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자 마을 보건소를 찾아갔습니다.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역시 통증의 원인을 확인할 수 없었고, 베이징의 큰 병원으로 찾아가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통증이 갈수록 심해진 정씨는 아내 천충홍씨와 함께 베이징의 한 전문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다리 동맥에 혈전이 생겨 다리 아래쪽에 괴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동맥 색전증이라는 난치병이었습니다.

아내 천씨의 말입니다. "병원에서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입원해도 소용 없다고 했습니다. 길어야 3개월쯤 더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술을 받아볼 수는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30만 위안(우리 돈 5천2백50만 원)의 보증금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체 수술비는 대략 1백만 위안(1억7천5백만 원)이 들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거액이죠."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 정씨는 별 수 없이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만 계속 받았습니다.

음력 2012년 2월

오른 다리의 상당 부분이 썩어들어갔습니다. 곳곳에서 고름이 흘러나왔습니다. 다리 위로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정씨는 통증이 극심해지자 아내 천씨에게 다리를 스스로 잘라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천씨는 펄쩍 뛰었습니다. "남편의 말에 제가 무슨 미친 소리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남편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톱으로 스스로 다리를 자르겠다고 우겼습니다. 저도 말도 안된다고 크게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정씨는 더이상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다리 상태는 갈수록 안좋아졌습니다.

[월드리포트] 썩어

음력 2012년 4월14일

정씨는 항상 그렇듯이 극심한 통증에 눈을 떴습니다. 오른 다리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이불을 들춰보니 구더기가 여기저기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천씨를 불렀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다리를 잘라야겠어. 톱과 칼을 가져다줘요."

천씨는 다시 반대했습니다. 그런 짓을 도와줄 수 없다고. 그런데 이번에는 정씨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한참 말싸움을 하다 천씨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럼, 당신 마음대로 해요. 다리를 자르든 말든 혼자서 해요." 그리고 건너 방으로 뛰어가버렸습니다.

정씨는 다리를 질질 끌며 톱과 과도를 가져와서는 스스로 절단 수술을 시작했습니다. "워낙 썩어서 피부 감각이 죽어서인지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피가 통하지 않는 상태여서 출혈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뼈 절단을 시작하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너무 아파서 저는 옆에 있던 효자손에 수건을 둘둘 말아 이로 악물었습니다. 얼마나 세게 이를 악물었던지 어금니 4개가 깨졌습니다."

30분 뒤 천씨는 자신을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남편의 침상으로 와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 천씨는 경악했습니다. "정말 다리를 절단할 줄은 몰랐습니다. 기절할 뻔 했습니다. 남편이 뒷처리를 부탁했습니다. 붕대만은 남편 손으로 싸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양력 2013년 10월10일

정씨가 스스로 다리를 절단했다는 사연이 뒤늦게 지방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중국의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정씨의 사진과 말이 인터넷 사이트마다 실렸습니다.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앙 언론매체들까지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중국 언론들은 정씨와 아내 천씨의 말이 사실인지를 취재했습니다. 부부의 말 외에 이를 증명해줄 제 3자를 찾아봤습니다. 정씨의 부모가 생존해 있지만 함께 살지는 않았습니다. 유일한 딸은 도시에 나가 직공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부부가 전해주는 말 외에는 당시 상황을 알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어느 병원에서도 정씨가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즉, 적어도 정식 의료 기관에서 수술을 받은 적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스스로 다리 절단을 하는 것은 가능할까? 중국 현지 매체의 취재 결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정씨의 경우 이미 괴사가 일어나 혈류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출혈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의사들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하는 절단 수술은 천만부당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을 하다가는 쇼크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독도 하지 않은 도구들을 사용하면 감염될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다리 절단3
양력 2013년 10월14일

정씨의 사연으로 언론이 들끓으면서 지방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나섰습니다. 정씨를 즉시 지역 병원에 입원시켜 무료로 치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지난 해 11월부터는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도 받아왔다고 합니다. 난방비와 전기비도 내지 않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온정도 답지했습니다. 성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벌써 31만 위안(약 5천5백만 원)이 모였고 금액은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정씨의 상태는 훨씬 양호해졌습니다. 천씨의 말입니다. "정말 기억도 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일을 겪었죠. 아직도 남편 얼굴을 보기가 무섭습니다. 그런 고통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어서. 하지만 의사가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1년이 넘도록 살아 있잖아요. 또 이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도 받게 되고요. 그저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느낄 뿐입니다."

다리 절단4
양력 2013년 10월15일

이번 사태를 통해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중국의 의료체계입니다. 많은 언론매체가 이렇게 한탄합니다. '돈이 없으면 절단 수술도 스스로 이를 악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신화통신 기자가 이 부분을 취재했습니다. 알아보니 새로 시행되고 있는 농촌합작 의료 시스템을 통해 절단 수술을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씨 부부가 이 의료 보장 제도를 이용했으면 스스로 절단 수술을 하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정씨 부부가 무지한 탓으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천씨는 문제의 신형농촌합작 의료시스템도 알아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무료로 수술이 가능하다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해당 공무원의 실수든, 정씨 부부의 오해든, 어떻든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죠. 결국 빈곤층에 대한 의료보장 체계의 부실로 인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는 중국만의 문제일까요? 물론 우리나라의 의료보장 제도는 꽤 잘 갖춰져 있습니다. 중국은 물론 심지어 미국보다도 더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사실은 미국은 의료 보장 체계에서는 후진국 취급을 받습니다. 이를 극복하겠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의료보험 체계를 들고 나왔는데 그 탓에 미국 정부가 셧다운 상태죠.)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고 병의 고통속에 사는 빈곤층은 수두룩 합니다. 가족이 큰 병에 걸려 치료비를 대느라 가정 경제가 붕괴되는 사례도 흔히 목격합니다. 스스로 다리를 자른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가슴을 파내고 인간성을 버리는 더 끔찍한 비극은 우리나라에도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은 의료 보장 체계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보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리 정부도, 국민도 부디 남의 나라 얘기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 의료 체계에 헛점은 없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꼼꼼히 따져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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