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경찰 기자로 일하다 보면, 각종 사기사건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전화금융사기, 스미싱 같은 신종 금융범죄부터 고전적인 방문 방매까지 그 종류와 수법도 다양합니다. 이처럼 사기범죄의 종류와 수법은 다양하지만, 사기꾼들이 가장 먼저 노리는 범행대상은 한 곳으로 집중됩니다. 바로 나이가 많은 중·노년층입니다. 실제로 절도, 폭행 등 다양한 범죄 가운데서도, 노인들은 사기피해를 가장 많이 당하는 편입니다. 한해 발생하는 노인 대상 범죄 10만 건 가운데 약 30%가 사기범죄입니다. 한 소비자단체가 실시한 조사에선, 65세 이상 고령소비자의 70%가 ‘공짜여행이나 무료공연 후 상품 강매, 전화 금융사기 같은 사기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라고 답할 정도로, 노인들은 사기범죄에 많이 노출돼 있습니다.
뇌 기능 장애가 사기범죄를 부른다.
과연, 나이가 들수록 사기범죄에 취약해지는 게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체로 그렇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셸리 테일러 박사는 우리 몸이 노화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연구팀은 55~84세(평균 68세) 중·노년층 119명과 20대(평균 23세) 24명을 대상으로, 30명의 다양한 얼굴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30명에 대해 각각 얼마나 믿음직해 보이며, 얼마나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평가하게 했습니다. 연구진이 실험자들에게 제시한 보기는 1) 믿음직한 얼굴, 2) 그저 그런 얼굴, 3) 신뢰할 수 없는 얼굴 이렇게 3가지였습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1) 믿음직한 얼굴, 2) 그저 그런 얼굴을 선택한 비율은 중·노년층과 20대 모두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3) 신뢰할 수 없는 얼굴을 선택한 비율은 이 두 그룹이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연구진이 제시한 ‘신뢰할 수 없는 사진’에 대해, 20대는 대다수는 “신뢰하기 어렵다.”라고 답했지만, 중·노년층은 일부만 “신뢰하기 어렵다.”라고 답했습니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통해 나이가 들수록 우리 뇌에서 ‘혐오감’과 ‘경계심’,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뇌 부위(앞쪽 뇌섬엽, anterior insula)가 퇴화해, 사기범죄에 취약해진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 연구진은 연구조건의 제약 때문에, ‘신뢰할 수 없는’ 얼굴 사진이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구 담당자인 테일러 교수는 진짜 웃음은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이 가늘어지며 뺨의 근육이 올라가지만 <이 웃음은 명명자의 이름을 따 ‘뒤센 웃음’이라 불립니다.>, 가짜 웃음은 입만 웃는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인상이 찌푸리는 등의 얼굴이 ‘신뢰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테일러 교수는 "‘신뢰할 수 없는 얼굴’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는 점을 쉽게 알아차릴 만한 단서들이 있었는데도, 나이 든 실험자의 상당수는 이를 간과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 실험결과는 젊은 사람들이 돈 관리를 더 잘한다거나 어떤 투자가 유망한지를 더 잘 판단한다는 뜻은 아니며, 시각적인 정보를 줬을 때, 어떤 사람이 잠재적으로 더 믿을만한지를 잘 분별한다.”라는 뜻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원인은 ‘앞쪽 뇌섬엽’ 기능의 저하
테일러 박사는 이 설문실험을 영상 의학적으로도 증명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얼굴 사진을 보게 하면서, 실험자들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해봤습니다. 참가자는 55~80세의 성인 23명(평균 66세)과 젊은이 21명(평균 33세)이었습니다.
분석 결과, 사진을 보는 동안 젊은 실험자의 뇌 ‘앞쪽 뇌섬엽’ 부위는 평소보다 훨씬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신뢰할 수 없는’ 얼굴을 볼 때 더 뚜렷하게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중·노년 실험자들의 뇌 활동은 극히 미미했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젊은 실험자들은 뇌가 ‘조심하라, 뭔가 수상한 게 있다.’라는 경고신호를 보내지만, 중·노년층은 그런 경계심을 주는 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런 뇌 기능 저하는 50대 초중반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50대 중반이 넘으면 될 수 있으면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연구자 테일러 교수의 아버지, 70대 중반에 사기 당해
이 연구와 관련한 짧은 뒷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건강심리학 분야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는 테일러 교수지만, 테일러 교수가 처음부터 노인과 사기범죄에 대해 연구한 건 아니었습니다. 테일러 교수가 이 주제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건, 바로 자신의 아버지와 숙모가 사기피해를 겪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매우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함께 은행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던 그 남자는 ‘노숙자’였다. 누구라도 그 남자를 보면, ‘이 남자에게 6천 달러를 줘선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그 남자가 ‘괜찮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당시, 테일러 교수의 아버지는 70대 중반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테일러 교수의 숙모도 이런 사기 피해를 겪게 됩니다. 액세서리 외판원을 우편으로 판매하는 보석을 구매했는데, 숙모에게 배달된 것은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아니라 ‘유리 귀걸이’였습니다. 이런 개인사를 겪으며 테일러 교수는 노인과 사기범죄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테일러 교수는 ‘노인이 사기범죄에 취약하다.’라는 주제를 논의할 때마다, 숙모에게 배달됐던 그 유리 귀걸이를 착용한다고 합니다.)
사회-심리적 변화도 원인
“즐겁게 공연 보시고, 매장에 잠시만 들리시면 됩니다.”, “이 제품을 사용하시면 비가 내릴 때마다 쑤시던 무릎이 싹 낫고, 중풍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 먹으면 혈압, 당뇨 안 낫는 병이 없어요.” (만약, 이 말들이 사실이라면 그 개발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노벨상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기꾼들이 쓰는 고전적으로 쓰는 말들입니다. 십수 년 전부터 성행하던 교과서적인(?) 수법의 사기행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중·노년층이 겪게 되는 사회적, 심리적 변화도 이들이 사기범죄에 취약해지는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기본적으로 중·노년층은 직장에서 은퇴해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에게 의지하거나 퇴직금, 연금 등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쓰면서 예전보다 경제적 여건이 나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거나 투자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기가 쉽습니다. 또, 몸이 아픈 상태에서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속삭일 ? 유혹에 흔들리는 건, 어쩌면 본능적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자신의 불안정한 현실이 쉽게 사기를 당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중·노년층이 겪게 되는 외로움도 사기범죄자들에겐 좋은 미끼가 됩니다. 중·노년층은 직장에서 은퇴해 대인관계가 좁아지거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 노인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는 이들은 범죄자가 아닌 ‘반가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경로당과 집을 오가는 일상에서 말도 걸어주고 관광도 시켜주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겠지요. 그 때문에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사기 피해를 본 노인의 상당수는 자신이 피해를 본 사실 조자 제대로 모르고, 범죄자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습니다. 실제로 한 대학의 조사 결과, 혼자 살거나 병을 앓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사기당할 확률이 30%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취재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를 속이는 건 상대의 감언이설이 아니라 나약해진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사기 피해, 어떻게 막을 것인가?
피해 유형에 따라 대비책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2가지를 조언합니다. 1) 공짜 선물 등을 환심을 사는 설명회 등에는 아예 참석하지 마라,
2) 일정 금액 이상의 돈거래를 할 때는 반드시 주변에 물어보고 하라.
일단, 사기범죄자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사기꾼들을 만나면 현란한 말솜씨와 행동에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일정 금액 이상의 돈거래를 할 때는 미리 주변에 알리고, 두세 번 확인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일종의 보조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미 거액의 물건을 구매했을 땐, 상품의 포장을 뜯거나 훼손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상품계약 해지 규정에 따라 20만 원 이상의 물건을 3개월 이상의 할부로 구매했을 땐 계약서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엔 이유를 묻지 않고 철회가 가능합니다. (방문판매는 14일 이내에는 단순변심이라도 철회할 수 있습니다.)
사기꾼들은 이런 점을 피하려고, 일부러 안에 내용을 확인해주는 척하거나 식품이면 한 번 드셔 보시라면서 해당 물건의 포장을 뜯으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땐, 견본을 보여 달라거나 시식하겠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습니다. 피해를 봤다고 생각이 되면, 즉시 경찰이나 소비자상담센터(국번 없이 1372)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필요한 건 본인의 노력과 주위의 세심한 관심
전 이번 취재과정에서, 예전에 읽었던 조선 시대 사상가 성호 이익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개구리는 시내나 도랑에서 나는데, 꼭 계단이나 뜰 사이에 숨는다. 닭들이 마구 뒤져 잡히기만 하면 죽는다. 왜 수풀 사이에 가만 있지 않고, 인가에 가까이 와서 재앙을 면치 못하는 것일까. 생각건대, 사람 가까운 곳에는 땅이 기름져 벌레가 많으니, 개구리는 벌레를 쫓아 온 것이다. 아! 이로움이 있으면 해가 뒤따른다는 말을 이에 경험할 수 있겠다. - 이익, 관물론-
이에 대해 한문학자 한양대 정민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입니다.
“인가 근처의 많은 벌레는 개구리에겐 탐나는 먹이지만, 닭들에게는 개구리가 더 없는 먹이다. 벌레를 얻으려면 목숨을 담보해야 한다. 하지만, 개구리는 눈앞의 이익에 팔려, 앞뒤 가리지 못하고 죽을 땅으로 뛰어든다. 한두 끼의 배부른 식사와 목숨을 바꾸고 만다. 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예기치 못한 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얻고 잃는 즈음에 손익 계산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일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이 이 일로 말미암아 일어날 수 있는 해로움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세상에도 ‘인간 개구리들’이 너무 많다.“
이익에 있는 곳에 뜻하지 않는 해로움이 있다는 지적,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상식을 판단하는 기준도 흐려지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 상식을 지키기 위해선 본인 스스로는 물론 주변의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 취재과정에서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신보경 서울대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계명대 경찰행정학과-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자문과 연구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취재파일] 왜 노인은 사기범죄에 취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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