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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선 최초 키스신을 훔쳐보다!

2013 간송 가을 정기전 관람 포인트

[취재파일] 조선 최초 키스신을 훔쳐보다!
10월 13일부터 간송미술관의 가을 정기전이 시작됐습니다. 이번에도 개막 첫날부터 2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린 뒤에야 전시를 보러 들어갈 수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전시 작품인 간송의 소장품이 대부분 문화재급인데다, 관람료까지 무료이니, 관람객들이 몰리는 것도 당연합니다. 봄과 가을, 1년에 2번, 2주 남짓 열리는 전시마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간송의 전시는 ‘전시를 위한 전시’가 아니라 ‘연구 성과 발표회’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간송의 연구원(사실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연구원-간송은 이 연구소의 부설미술관임)들이 반 년 동안 연구한 주제와 내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조선 미술이 꽃 핀 시기를 일컫는 ‘진경시대’라는 용어도 1985년 간송의 연구에서 나왔다고 하니, 한국 미술사에서 이른바 ‘간송학파’라고 불리는 간송의 연구원들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죠.

간송의 정기전은 1971년에 시작되어 벌써 43년째에 이르고 있는데요, 사실상 지금까지 해왔던 형식의 정기전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간송미술관은 그동안 미술관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운영을 해왔는데요, 정식 미술관이 되면 문화재급 유물을 대여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소장품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명목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눈에서 벗어나 있어 오히려 소장품 관리를 소홀히 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여러 차례 받아왔습니다. 그랬던 간송이 2013년 8월 재단으로 출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동안의 ‘은둔’의 모습을 벗고 체질 개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년부터는 확실히 달라집니다. 정기전은 그대로 이어나가되, 형태는 조금 바뀔 수도 있습니다. 먼저 2014년 3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관전으로 ‘간송 소장품 상설전’이 준비 중입니다. 다른 나라에도 간송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도 열린다고 합니다. 꽁꽁 숨어있었던 간송의 소장품 3천여 점이 좀 더 많이 소개될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변화를 앞둔 간송이 내놓은 전시는 바로 ‘진경시대 화원전’입니다. 진경시대는 숙종 때부터 정조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문화가 활짝 꽃피웠던 시기입니다. ‘진경산수화’의 개념을 세운 겸재 정선 등 1세대에서 시작해, 표암 강세황과 현재 심사정 등 2세대 문인화가들이 발전 시켜 나갔고,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등 3세대 도화서 화원들이 대미를 장식하기까지의 시기입니다. 정치와 경제가 안정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던 시기로, 그동안 중국의 것에 치우쳐 있던 분위기를 타파하고 조선 고유의 색을 찾던 때입니다. 우리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우리 생활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진경(眞景)’인 것입니다.

기존 형태로는 마지막이라 더 관심이 가는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도 바로 그것입니다. 문화적으로 여유로웠던 우리 문화의 황금기의 작품들이 어땠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작품이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꼽은 ‘이것만은 꼭!’에 해당하는 작품 몇 점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혜원 전신첩(국보 제135호) 中 ‘월야밀회’
김홍도 신윤복

이른바 ‘간송 신드롬’을 일으키게 했던 장본인,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화첩의 대표작입니다. (간송의 정기전은 1971년부터 시작됐지만, 지금처럼 줄을 서서까지 보게 된 건 불과 5년 전부터입니다. 혜원 신윤복을 다룬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 덕분인데요, 당시 간송 소장품 가운데 혜원의 ‘미인도’가 전시되면서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그 때부터 간송 전시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게 된 것이죠.)

보름달이 훤하게 뜬 밤, 인적이 없는 담벼락 아래서 젊은 연인이 만났습니다. 어찌나 애절했던지 얼굴을 맞대고 꼬옥 달라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남의 눈에 띌까, 안절부절 하는 듯도 합니다. 그 모습을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여인의 표정도 묘합니다. 이들을 안타까워 하는 건지, 부러워하는 건지, 질투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은은하고도 야릇한 분위기에 눈길이 절로 가는 작품입니다. ‘남녀상열지사’였던 조선 시대라 할지라도, 남녀 사이에 불꽃 튀는 사랑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좀 더 자유로워진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그림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혜원 전신첩 中 ‘단오풍정’
김홍도 신윤복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한, 역시 유명한 혜원의 작품입니다. 큰 명절의 하나였던 단옷날 풍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네 타기, 머리 감기 같은 단옷날 풍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데요, 그냥 풍습만 그려져 있었다면 그저 그런 ‘기록화’였을 텐데, 혜원은 유머와 위트까지 그림에 담았습니다.

치마를 훌렁 걷고 그네에 오르는 여인, 웃옷을 다 벗어놓고 개울에 몸을 씻는 여인들, 아마도 남자들의 눈에 띠지 않는, 여인들만 아는 ‘금남’의 장소였을 겁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여인들의 태도가 그걸 말해줍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시선이 있습니다. 바로 바위 틈 사이입니다. 호기심 가득한 까까머리 동자승들이 숨어 키득대며 훔쳐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단오를 즐기는 새초롬한 여인들의 표정과, 눈의 호사를 누리고 있는 동자승들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 단원 김홍도 ‘구룡연’
김홍도 신윤복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김홍도의 산수화입니다.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가 정조의 명을 받들어 5번이나 직접 금강산에 올라 그린 금강산도입니다. 이 그림은 금강산에서 직접 보고 그린 그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화첩에 담아온 금강산 스케치를 보고 다시 그린 그림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원의 산수화의 특징은 섬세한 필선으로 세밀하고 유연하게 묘사를 했다는 점입니다. ‘진경’ 개념에 딱 걸맞게 ‘사진으로 찍은 듯’ 정확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점은 화원 화가들의 한계로 꼽히기도 합니다. ‘진경’의 1세대 화가 겸재 정선은 같은 구룡연을 그리면서도 폭포 뒤쪽에 위치한 산은 과감히 생략해 폭포의 시원함을 더욱 강조해 ‘작가의 주관’을 더 뚜렷하게 드러냈는데요, 단원은 있는 그대로 뒷산의 모습까지 그려 넣고 있어 폭포의 힘을 드러내는 맛이 덜합니다. 앞선 세대의 문인화가들이 ‘작가적인 해석’을 좀 더 하고 있다면, 직업 화가였던 화원들은 ‘기술적인 묘사’에 더 치중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 단원 김홍도 ‘낭원투도’
김홍도 신윤복

역시 단원의 작품입니다만, 이번에는 신선도입니다. 김홍도는 풍속화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김홍도는 ‘신선도의 1인자’라고 불릴 정도로 신선도를 많이 그리고, 또 잘 그렸습니다. 단원은 일찍이 신선사상에 심취해서 관련 서적도 탐독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3천갑자 동방삭’을 그린 것입니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이라는 노래에도 나오는 바로 그 신선입니다. 동방삭이 한 개를 먹으면 1천 갑자(6만 년)를 산다는 복숭아를 훔쳐 오는 모습입니다. 워낙 귀한 것이다 보니, 경계도 아주 삼엄했다는데, 동방삭의 재주는 어찌나 용했는지 무려 3번이나 복숭아 절도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3천 갑자를 살았던 것이고요.

신통방통한 동방삭인데, 얼굴은 그냥 우리 주변의 평범한 얼굴입니다. 이전만 하더라도 신선은 중국풍의 영향을 받아 이마가 길게 늘어진 기괴한 모습이었는데, 단원은 그냥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죠. 우리만의 표현법을 구사한 것입니다.

과감하게 복숭아를 훔친 동방삭도 ‘귀하디 귀한’ 복숭아를 손에 쥐고는 떨리긴 했나 봅니다. 옷자락이 휘날리도록 도망치면서도, 두 손으로 고이고이 복숭아를 쥐고 있는 모습이, ‘신선답지 않게 인간적’입니다.작가의 재치까지 엿보이는 듯해, 풍속화 못지않게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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