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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취재에 응했다고 색출에 조사까지 한다고?

태양광 설비 취재…그 뒷이야기

[취재파일] 취재에 응했다고 색출에 조사까지 한다고?
취재를 하다보면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만납니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그들은 취재를 위한 ‘도구’로 이용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취재가 이들의 생계를 위협할 때입니다. 이번 취재도 그게 문제였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던 어느 날, 지인 한 명이 영등포구 공영주차장에서 근무하는 아주머니들 얘기를 해왔습니다. 당시 최저임금 4580원에 외근수당 100원씩을 추가로 받는 계약직 근로자들. 뙤약볕에 선풍기 하나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에 사실 확인을 해봤습니다.

공공근로자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부스엔 각각 태양광 발전 시설이 달려있습니다. 자가 발전을 통해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게 한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스는 영등포구에만 52개에 이릅니다. 그런데 전기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해도 선풍기가 없었습니다. 영등포구 시설관리공단에서도 돌아가지도 않는 선풍기를 지급하진 않았던 겁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었습니다. 당시 취재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태양광 취재에 응했
그리고 올해, 태양이 내려쬐던 날에 취재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올해엔 선풍기가 지급됐습니다. 쓰라고 지급됐지만 제대로 사용되진 않았습니다. 시설관리공단에서 지급한 선풍기는 소비전력이 40w. 보통 조명을 두 개 정도 켤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전력이지만, 선풍기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공공근로자 아주머니들께 물어봤습니다. 선풍기가 돌아가지 않는다며 지급된 선풍기를 꺼내놓지도 않은 분도 있고 부스 안이 더워서 그냥 밖에 있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현장 근로자들의 멘트를 보도에 사용했습니다.
태양광 취재에 응했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즈음, 연락을 주고받던 공공근로자 한 분으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SBS 보도 관련해서 공단이 근로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상은 당시 제 기사에 멘트를 사용했던 공공근로자 아주머니 3명. 근로자들에게 하달한 공문엔 어떻게 찾았는지 세 명의 이름이 정확히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서엔 ‘감사규정 제13조’에 의거해 성실 의무 위반과 품의 유지 의무 위반 여부를 확인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태양광 취재에 응했
네, 물론 조사는 할 수 있습니다. 명명백백히 사실을 확인한다는 취지에서 말이죠. 하지만 취재를 거쳐 보도를 하는 과정은 사실 굉장히 오픈돼 있습니다. 보도내용은 언제든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공단의 말처럼 품위 유지를 손상했거나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면 보도내용 안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공근로자들을 수차례 불러서 보도에 나온 아주머니가 누군지 물어보고, 확인하고, 확인서를 써가면서 압박하는 과정이 없이도 말이죠.

“(부스) 안에 있으면 더운데.. 시원하니까 밖에 나와 있죠.”
“(선풍기) 안 돌아가서 집어넣었어요.”
“안 되잖아요. 그냥 선풍기만 바라보고 있어요. 시원하라고.”

공공근로자 세 명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취재 당시에도 공공근로자분들은 말을 아꼈습니다. 혹여 본인에게 불이익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저도 무리하게 질문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사실만 듣고 본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인터뷰 내용에서 성실 의무 위반이나 품위 유지 손상에 대한 의혹이 드십니까? 노무사를 통해 문제 소지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제한적인 사실 확인만 했기 때문에 문제제기 하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근로자 아주머니는 건물 지하 골방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혼자 의자에 앉아있었고 남성 직원 두 분은 서서 뭔가를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조사를 하느냐고 물어보자 다른 부서 직원들까지 몰려들어 갑자기 들이닥친 취재진을 향해 윽박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던 영등포구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은 ‘바쁜 용무’로 말도 없이 밖에 나가 만나지 못했습니다.
태양광 취재에 응했
“이왕이면 공단에 도움 되는 얘기를 해주면 좋지 않나”

공단 본부장의 얘깁니다. 주차관리팀장은 이미 해임된 상태였습니다. 해임 이유는 시설 관리 부실이 아니라 언론 응대를 잘 못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감시자 역할을 하는 언론, 그리고 언론을 피하고 보자는 기관. 서로의 생각이 평행선만 긋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후속 보도가 나간 지금, 공단에선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하진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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