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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수익의 달콤한 유혹…동양그룹 사태의 본질은?

[취재파일] 고수익의 달콤한 유혹…동양그룹 사태의 본질은?
(주) 동양 제265회 채권...“연 7.6%~8.3%(9개월)”
동양증권이 지난 5월2일~3일 판매한 (주) 동양 CP의 광고 전단지 내용입니다. 기자가 입수해 자세히 봤더니 이자지급구조와 (주) 동양의 지배구조가 전단지에 인쇄돼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억원을 투자했을 때 원금을 언제 돌려받을 수 있는지, 세후 이자는 대략 53만원~58만원까지 된다며 표를 그려 놓기도 했습니다.  한술더떠 (주) 동양의 신성장동력은 동양파워라며 삼척에 국내 최대 민간 화력발전소를 짓는다는 청사진까지  담겼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몇 개월 뒤 동양그룹 사태는 5개 동양그룹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동양 사태는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개인들한테 떠넘긴 일명 폭탄 돌리기였습니다.  폭탄이 돌아가는데도 감시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개인투자자들은 폭탄인지 제대로 확인을 안했습니다.  3중 안전장치(동양증권-감독당국-개인투자자)가 모두 작동하지 않는 사이 폭탄이 터진 겁니다. 동양증권이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개인 고객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위 광고 전단지에서 보듯 동양증권은 동양그룹의 지배구조상 한 곳이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지게 돼 있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고, 동양시멘트가 보유한 알짜기업 동양파워를 내세워 역시 안전함을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동양증권 직원의 권유로 동양그룹 계열사의 회사채와 CP를 사들인 개인투자자는 5만 명에 육박하고 금액으로는 1조 5천억 원이 넘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동양증권은 추석 연휴 전날에도 CP, 회사채를 판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상장기업인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전자단기사채(전단채)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습니다.  CP에 문제가 생겨도 시멘트 주식을 130%나 담보로 제공했기 때문에 주가가 반토막 나지 않는 한 원금 회수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밀하게 동양증권 직원과 친인척, VIP 고객에게만 판매 정보가 돌았고 한정판매라는 소식에 너도나도 고수익에 안전하다는 전단채에 투자했습니다. 기자가 입수한 서울 강서지역본부의 일일 보고에는 ‘동양채권 총력 판매’라는 글씨가 선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만큼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했고 직원들이 그룹의 CP와 회사채 판매에 총동원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융감독 당국의 늑장대처와 감독소홀도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동양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되던 지난해 12월부터 위기를 감지하고 이에 따른 선제적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만, 그 이후 한 번도 동양증권에 검사 인력을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지난 4월 계열사의 부실 채권을 팔지 못하도록 감독 규정을 만들어 놓고 6개월의 유예기간을 줌으로써 사실상 부실 채권 판매를 방조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감독당국은 이 대목에서 유예기간을 준 것은 자본시장통합법상 허용된 것이고, 유예기간을 줘 부실 채권이 정리되도록 유도해 결과적으로 추가 피해를 막았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평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양그룹 사태가 정점을 치달은 8~9월에도 CP, 회사채는 수 천억 원치나 팔려 나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이 본격적으로 동양사태를 다루자 감독당국은 특별점검을 특별조사로 확대하고 조사인력을 확충해 불완전판매 조사를 본격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이 피해 신고를 접수해 집단소송을 할 움직임을 보이자 또 부랴부랴 금감원에 신고센터를 설치해 민원과 분쟁신고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됐고 7천건이 넘는 민원 및 분쟁이 접수됐습니다.
동양 집회 캡쳐_5

개인투자자들의 사연은 참으로 딱했습니다.  아들 결혼자금을 일시 넣어두려 했다 묶인 어머니,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묻어둔 아내, 전세에 살면서 평생 모아둔 6천만 원을 넣어둔 할머니 등 서민들이 많았습니다.  동양그룹 고수익 채권에 투자한 사람이면 고액 자산가이겠지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한글날 2천명의 피해자들이 금감원에 모여 시위할 때도 눈시울을 적시며 피켓을 든 노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피해를 주장하는 분들이 모두 구제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증권사 직원에게서 아무리 안전하고 안심하라는 말을 들었어도 확인을 안한 책임은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청약서에 첨부된 상품 설명서를 들여다보니 "High Risk(고위험)“이라는 문구가 선명했고, 원금손실 위험과 채무 불이행 위험 및 유동성 위험, 환급성 위험, 채권가격 변동위험 등 고수익 채권의 위험성을 알리는 난에 투자자가 직접 체크와 서명을 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상품설명서마저 뒤늦게 직원이 가지고 와서 고객에게 ”그냥 체크하고 서명만 하세요“라고 권유한 불완전판매 증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완전판매를 입증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증거가 필요합니다.  정황상 직원이 투자자에게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입 당시 녹취나 서류가 없으면 구제를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의 분쟁조정위나 법원에서는 서류상 증거를 먼저 보기 때문에 가입 당시 직원이 투자자를 현혹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야 합니다.  설사 증거를 찾았다 하더라도 원금손실액의 100%를 돌려 받기도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힘듭니다.  분쟁조정위 판례를 보면 손실분의 30~40%를 보상받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현실입니다.  투자자에게도 청약서를 확인하지 않고 서명한 책임 등을 묻기 때문입니다.

동양사태는 이제 현재현 회장과 오너 일가와 계열사의 부당 자금거래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법정관리 신청 전후 이혜경 부회장의 거액 인출과 대여금고에서 찾아간 물품 논란, 계열 대부업체의 부실 계열사 대출, 계열사 대표들의 법정관리 신청 직전 주식 대거 처분 등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감독당국과 검찰 등 사정당국은 동양사태를 철저하게 파헤쳐 금융업계에 남아 있는 검은 그림자를 걷어내야 합니다.  부실채권을 개인투자자에게 과도하게 팔지 못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면 보상 등 적극적인 구제 조치를 실행해야 합니다.   

동양사태는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남겼습니다.  영원히 잘나가는 기업은 없고, 고수익엔 반드시 고위험이 따른다는 사실.  위험을 알고 투자했든 모르고 투자했든 손실은 결국 투자자가 질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금융지식을 높이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시는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번 동양사태로 상대적으로 양호한 A 등급의 회사채와 CP마저 발행, 유통이 안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금융시장을 조속히 정상화하는 노력도 금융당국의 숙제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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