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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소기업 울리는 '은행'…폭리에 찬밥대우까지

[취재파일] 중소기업 울리는 '은행'…폭리에 찬밥대우까지
중소기업 대표 강모씨, 은행에 애원한 사연은?

“사장님, 저희 은행은 금리를 당장 내려드릴 수 없으니까 다른 은행으로 갈아타시던지 하세요.”  시중 은행 가운데서도 자산규모로 손가락에 꼽히는 모 은행의 00지점 기업대출 담당자는 대출 금리를 낮춰달라고 사정하러간 중소제조업체 대표에게 은행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20여년간 정밀기계부품을 만들어온 업체 사장은 이 은행만 줄곧 이용해온 이른바 충성 고객이었습니다.  억울하고 서운하다는 말로 당시의 상황을 기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이 업체 사장이 은행에 애원하러 간 사연은 이렇습니다.

강모 씨는 지난해 감정가 4억 원가량의 공장을 담보로 해당 은행에서 사업자 대출을 받았습니다. 당시 은행의 대출금리는 5.83%였습니다.  문제는 대출만기가 도래한 올해부터였습니다.  은행 측은 강씨의 대출금리를 갑자기 12%로 올린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입니다. 강씨가 1년 중 네 번에 걸쳐 20여일 연체한 기록 때문에 기업 신용등급이 부도 직전등급인 CC등급으로 떨어졌다는 겁니다. 강씨는 갑자기 금리를 두 배 올리면 어떻게 하냐고 은행에 항변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또 17%에 달하는 연체 이자를 갚을 테니 다시 대출 금리를 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강씨는 “9년 동안 거래하면서 이자도 꼬박꼬박 잘 갚을 때는 깎아주지도 않다가 올해 경기 사정이 어려워 연체를 좀 했는데, 이렇게 찬밥대우를 받아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감정을 토로했습니다. 

은행 직원의 답변은 냉담했습니다.  연체를 해소하더라도 떨어진 신용등급을 올리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금리를 이전 수준으로 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엉뚱하게도 하는 말이 “은행을 갈아타세요.  사장님의 신용등급이 저희 은행의 신용등급이지 다른 은행의 신용등급이 이렇지는 않을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서 정 금리를 내리고 싶으면 편법이지만 사업자를 바꿔 새로 대출을 받으면 금리가 떨어질 수 있다고 일러줬습니다. 강씨의 개인 신용등급이 나빠 당장 금리를 내리기 어려우니 다른 사람 명의로 신용 세탁을 하란 겁니다. 그리고 월30만원 적금에 새로 가입하면 개인 신용등급을 점수를 20점 올릴 수 있다며 편법인 꺾기까지 강요했습니다.  담당 은행 직원은 “연체 사실을 알렸고, 계속 연체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씨에게 고지했지만 연체 이자를 갚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잘나갈 땐 ‘고객님’…어려울 땐 ‘채무자’

문제는 은행의 대출 행태가 이중적이란 점입니다.  강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업이 잘 돼 이자를 꼬박꼬박 낼 때는 고객이지만, 연체를 한 시점부터는 채무자로 전락해 고리의 연체이자는 물론이고 담보가 충분히 있는데도 신용등급 하락과 대출금리 인상 등 2중, 3중의 화살을 한꺼번에 맞는다는 점입니다.  또 연체를 모두 해소 했음에도 한번 떨어진 신용등급은 좀처럼 복원이 힘들다는 것도 중소기업들의 애로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은행은 손해볼 장사는 하지 않습니다.  담보가 충분하기 때문에 원금을 떼일 염려가 없는데다 연체에 따른 고리의 이자를 물리고, 대출 금리도 올리기 때문에 어찌보면 연체자가 더 고마운 고객인지도 모릅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제조업체를 상대로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 시 애로사항을 점검한 결과 높은 대출금리가 31.5%로 1위, 까다로운 대출심사 2위, 예.적금 가입요구 3위, 과도한 부동산 담보요구 4위, 신용보증서 위주 대출 5위를 차지했습니다.  중소 IT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기자에게 “신용등급을 덧씌워 은행들이 기업들의 등골을 빼먹는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특히 기업의 재무재표가 일시적으로 나빠지기라도 하면 대출회수부터 하고 금리를 인상시켜 기업 의지마저 꺾어 놓는다고 토로했습니다. 

중소기업 대출은 늘었지만 실상은…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확대했습니다.  그 결과 1월~4월까지 금융권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5조4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5조원이나 늘어났습니다.  지난해까지 상대적으로 중소기업대출이 부진했던 시중 은행들도 정부 방침에 따라 중기대출을 크게 늘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금 지원이 우량 중소기업에만 쏠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 조사결과 2009년말부터 2013년3월까지 신용등급이 우량한 1~3등급의 중소기업 대출은 15조6천억원 늘었고, 중간 등급인 4~5등급도 34조원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6등급 이하 기업대출은 20조3천억원이나 감소해 대조를 이뤘습니다.  특히 매출액 60억~300억 기업에 대한 대출비중은 3.7%p 상승한 반면 10억 미만 영세 기업 대출비중은 오히려 1.2%p 줄었습니다.  또 은행권의 보수적인 대출관행으로 담보대출 비중이 5.6%p나 늘면서 신용대출과 담보대출 비중이 거의 같은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은행도 할 말은 있을 겁니다. 자선사업을 하지 않는 한 돈 떼일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곳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문제는 돈 떼일 가능성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인데 신용평가란 이름으로 은행 자의적으로 평가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사례에서 보듯 강 씨의 경우에도 은행이 담보로 잡은 공장부지가 충분해 원금을 떼일 가능성이 없는데다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자를 두 배 이상 올려 폭리를 취하고, 연체일수 만큼 17%의 고리의 이자까지 물렸습니다.  사실상 은행으로서는 잃을 것이 없는 장사인 셈입니다. 장사를 잘해서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은 자본주의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이익을 남겼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익을 남겼나도 따져봐야 합니다. 즉, 은행 이익의 양적인 부분과 질적인 부분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겁니다. 

채권-채무 관계 아닌 파트너십 형성해야

은행들은 과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거액을 투자해놓고 대규모 손실을 봤습니다.  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안전한 소매금융, 그러니까 떼일 염려가 상대적으로 적고 위험도가 낮은 주택담보대출이나 중소기업 대출 시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자 놀이인 예대마진으로 안전하게 수익을 챙겼습니다. 이런 은행이 중소기업의 피를 빨아먹고 이익만 남기려 한다면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 없겠지요.  단순히 주주(shareholder)를 위한 경영 성과보다 고객과 직원 등 모든 이해당사자(stakeholder)를 만족시키는 노력이야말로 바람직한 은행의 모습 아닐까요? 독일의 경우 은행과 기업의 관계가 채권 채무자가 아닌 오랜 기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파트너십에서 비롯됐습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은행이 살고, 은행이 잘돼야 중소기업에도 혜택이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하루빨리 만들어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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