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이런 사연이 전해지면서 대단히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남의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기'로 유명한 중국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던져 어린이들을 구한 행동은 거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입니다.
자칫 또 한편의 '영웅 만들기'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중국 언론에 소개된 목격담만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봤습니다. 당시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한 소년의 죽음을 평가해보시죠.
왕충위안(허난성 신양시 진캉타이촌 주민, 男)
10월1일 국경절을 맞아 손주 3명을 데리고 놀러 나갔습니다. 11살인 큰 손녀와 6살의 작은 손녀, 그리고 한창 개구장이 짓을 하는 4살짜리 손자는 오랜만의 외출에 신이 났습니다.
마을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갔습니다. 80 제곱미터 크기의 제법 큰 연못까지 있어 평소에도 자주 산책을 가는 곳이었습니다. 공원 한가운데 광장에서는 문예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끌려 공연을 정신없이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못가에서 한 여성이 달려오며 "살려주세요. 애들 셋이 연못에 빠졌어요. 구해주세요."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주변을 살펴보니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류위쥐(신양시 진캉타이촌 주민, 女)
연못가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광장에서 벌어지는 문예 공연을 보느라 연못가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애들 세 명만 놀고 있더군요. '보호자 없이 괜찮을까' 살짝 걱정을 하는데 갑자기 어린 아이 둘이 발을 헛디디며 연못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언니가 급하게 두 명의 팔을 잡더군요. 하지만 그 아이까지 물에 끌려들어가 버렸습니다.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살려주세요."하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광장 쪽으로 냅다 뛰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외쳤습니다. "살려주세요. 애들 셋이 연못에 빠졌어요."
갑자기 한 학생이 연못 쪽으로 나는 듯 달려가는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연못에 뛰어들더군요. 다른 2명의 어른들이 연못 쪽으로 뛰어가는게 보였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더 모으려고 광장 쪽으로 외치며 뛰어갔습니다.
볼 일을 보고 공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연못 근처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한 여성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한 학생이 물 속에 뛰어들더군요. 그 학생은 물에 빠진 여자애 쪽으로 헤엄쳐 가더니 그 아이를 끌고 물가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뭍으로 밀어올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물로 뛰어 들었습니다. 학생쪽으로 수영을 해서 여자 아이를 땅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학생은 제게 그 여자 아이를 맡기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여자 아이를 안전하게 뭍으로 올린 뒤 뒤를 돌아보니 학생이 더 작은 아이 2명을 물 밖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또다른 남자 어른이 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다른 2명의 아이들도 땅 위로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한 숨 돌리는데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그 학생이 안보인다는 사실을.
왕칭란(신캉타이촌 주민, 男)
우연히 연못을 보니 2명이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 한 명은 이미 뭍에 누워 있었습니다. 달려가서 물에 뛰어든 뒤 함께 다른 두 명의 아이를 물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아이들이 축 늘어지다시피 해서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가까스로 안전한 곳에 올려놓고 뒤를 보니 학생이 안보이는거예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구하느라 기진맥진해서 본인은 그대로 물속에 가라앉은 것이죠. 빨리 구해야하는데 저도 힘이 너무 없어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공원 관리원들이 오더군요. 그래서 학생 한 명이 물에서 못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국경절 행사 관리를 위해 마을 공원에 있었습니다. 연못 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공원 관리인들과 함께 달려가보니 두 명이 세 아이를 물에서 막 건져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구조에 나섰던 학생 한 명은 물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말하더라고요.
저를 포함해 6명의 직원이 물에 들어갔습니다. 연못은 수심이 3미터 정도라 어른이라도 빠져 죽을 수 있는 깊이였습니다. 연못의 물이 그리 맑지 않아 처음 잠수에서 그 학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두번째 잠수에서도 아무 수확이 없었습니다. 겁이 더럭 났습니다. 너무 시간이 지났는데. 세번째 물 속에 들어가서 더듬는데 사람이 손에 잡혔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끌고 나와보니 그 학생이었습니다.
땅 위로 끌어올리고 보니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맥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인공 호흡을 하고 흉부 압박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응급조치를 다했습니다. 하지만 학생은 끝내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 3명을 구하고 정작 자신은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청 선생님(담임 교사)
아이들을 구하다 숨진 학생은 청장쟝이라고 합니다. 올해 18세로 내년에 대학 입학 고사를 볼 예정이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교실 뒷 편에 붙어 있는 저 그림이 청장쟝이 그린 것입니다. 학급 문예위원이었습니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학생이었습니다. 학기 초에 학급 간부를 뽑겠다고 했더니 다들 눈치를 보면서 선뜻 나서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유일하게 청장쟝이 나섰습니다. 연단에 서서 친구들에게 유세를 했습니다. 자신을 문예위원으로 뽑아달라고. 잘 할 수 있다고.
머리가 아주 좋은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반면 대단한 노력파였습니다. 처음 입학했을 때는 학급에서 70등이었습니다. 거의 꼴찌 수준이었죠. 그런데 지난 7월 시험의 반 석차는 12등이었습니다. 필사적으로 공부한 결과죠.
레이청화(이웃 주민)
청장쟝이요? 잘 압니다. 부모가 항저우에서 농민공으로 일했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학교 근처에 방 한칸을 구해서 청장쟝과 동생 3명을 돌봤습니다.
청장쟝은 착하고 효심이 깊었습니다. 살면서 누구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할아버지를 도왔습니다. 빨래도 하고, 밥도 짓고.
제가 도시에 나가 일을 했기 때문에 자주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청장쟝이 집에 있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통화를 하면 "제가 동생들 잘 돌보고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실 것 없어요"라며 저를 오히려 위로했습니다.
지난 아버지의 날에 장쟝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오늘은 아버지의 날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디 쉬세요.' 메시지를 읽으면서 '우리 아들이 어느새 다 컸구나' 싶어 가슴이 짠했습니다.
장쟝은 대학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대학에 가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스스로 벌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장쟝이 사고를 당한 뒤로 장쟝의 할아버지가 집 문을 닫아놓지 않습니다. 도저히 못 닫겠다 그러시네요. 언제라도 장쟝이 불쑥 들어올 것 같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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