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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당한 시장 논리인가, '갑'의 횡포인가

대형 유통업체 '판매장려금'을 둘러싼 갑론을박

[취재파일] 정당한 시장 논리인가, '갑'의 횡포인가
대형마트는 어떻게 물건을 그렇게 싸게 팔 수 있을까. 우선은 ‘박리다매’, 그러니까 이윤을 적게 붙이는 대신 많은 양을 판매하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주말과 휴일만 되면 전국 곳곳에 있는 대형마트 매장이 장보는 가족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그려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유통업체는 해마다 영업실적이 늘고 있는데, 정작 납품하는 협력업체는 성장폭이 계속 줄어듭니다. 심지어는 매출은 늘었는데,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요인이 바로 지금부터 이야기할 ‘판매장려금’입니다.

백화점과 달리 대형마트는 물건을 직접 사들여서 판매합니다. ‘직매입’이라는 것인데, 물건을 보관하고, 팔다 남은 재고를 처분하는 것 모두 납품업체가 아닌 대형마트의 소관입니다. 그런데, 납품업체가 1억 원어치를 납품하면, 5%에서 많게는 15%를 뺀 나머지 금액인 8천만 원에서 9천만 원 정도를 물건값으로 받습니다. 통상 매년 초에 맺는 계약서에는 이 비용에 ‘물류비’와 ‘판매장려금’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물론, 제가 앞서 ‘직매입’ 형태에서 재고 부담은 대형마트에 있다고 했습니다만, ‘물류비’ 명목입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형마트의 판매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납품업체도, 대형마트도 상인이니 이윤을 붙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앞서 말씀드린 ‘납품 대금에서 일정 비율로 제하는 돈’을 ‘판매장려금’이라 놓고, 아주 간략하게 그려보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판매가격) = (원가) + (납품업체 이윤) - (판매장려금) + (대형마트 이윤)

판매가격을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형마트는 당연히 납품업체의 소관인 ‘원가’와 ‘납품업체 이윤’ 항목은 손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자신들의 이윤을 낮추거나, 아니면 ‘판매장려금’을 올리거나.

납품업체들에게 ‘판매장려금’은 대형마트에 납품하기 위한 수수료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본래 취지는 ‘마트에서 물건을 열심히 팔아줘서 고맙다’는 뜻에서 납품업체가 지급하는 사례비 정도의 의미였는데, 지금은 경쟁업체 할인 판매에 맞춰 가격을 따라 내릴 때라든지, 점포 정리로 이른바 ‘떨이’로 팔아야 하는 등의 갖가지 명목으로, 수시로, 심지어는 계약서도 안 쓰고 받아간다고 합니다. 어떤 납품업체는 ‘마트 실적이 안 좋으니 얼마를 내라’는 요구를 받고 그냥 돈을 지급했다고도 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처럼 본래 취지와는 맞지 않는 ‘판매장려금’을 불법으로 보고 규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지난해 판매장려금 수입이 1조 250억 원, 한해 영업이익의 53.8%~64.4%라고 하는데, 공정위 계산으로는 이 가운데 약 80%, 8,452억 원이 규제 대상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공정위는 이번 조치를 통해 대형마트 3사의 영업이익을 반토막내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납품 원가 깎아서 이득 보고, 여기에 자신들 이윤 붙여서 이득 보니까 ‘이중 마진’인 것이고, 그러니 반으로 깎아도 사필귀정아니냐, 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세상 누구든 한 번 높아진 눈높이를 다시 낮출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대형마트들의 반박은 이렇습니다.

대형마트는 다른 소매점과 달리 많은 양을 구매하기 때문에, 납품업체로부터 가격 할인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그들의 원가 구조가 공개되고, 대리점 등 다른 유통 채널로부터 ‘우리에게는 왜 그 가격에 물건을 공급하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을 것이 두려워 편법으로 판매장려금을 지급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가격을 깎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의 수식을 빌어 표현하면, ‘판매장려금’ 항목은 ‘납품 가격’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납품 업체들도 뾰족한 반박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대리점 없는 중소 납품업체들에게는 왜 받느냐고요? 제가 물어본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그래서 중소업체들에게는 안 받거나 요율이 낮다’고 답했습니다만, 글쎄요. 제가 취재한 바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형마트는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공정위가 만약 이런 관행을 규제하겠다면, 자신들로서는 납품 가격 인하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대기업이야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중소 업체들은 납품을 포기하게 되니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판매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하지만, 우윳값 200원으로도 그렇게 큰 반발이 이는 마당에 쉽게 꺼낼 말은 아니지요. 물론 여기에서 ‘대형마트 이윤’이라는 항목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 부분이야말로 대형마트가 알아서 결정할 부분이니 밖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야기는 점점 미궁에 빠집니다. 납품 업체들도 정부의 규제 방침 자체는 찬성하지만, 대형마트들이 저렇게 나오니 ‘풍선 효과’는 언젠가, 어디에선가 나타날 것이라고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습니다. 공정위야 납품 가격 ‘후려치기’는 기존 공정거래법으로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판로가 없고, 그나마 대형마트도 3개사 밖에 없는데, 납품 업체가 불공정 거래를 신고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아닐까요.

판매점과 납품 업체가 서로 거래 계약을 맺는데, 시장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거래 조건을 왜 간섭하려 하느냐는 대형마트의 볼멘소리에도 일리는 있어보입니다마는 다만, 두 계약 당사자가 그리 대등한 관계는 아닌 듯합니다. 궁금한 점 있으면 설명은 해줄 수 있다고 하면서도 음성변조든, 모자이크든 한사코 카메라 앞에 나오는 것은 사양하는 납품 업체 관계자들을 보면서 그 생각은 더 굳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판매장려금'이라는 관행은 월마트와 까르푸 같은 외국계 대형 유통업체가 우리나라에 진출하던 무렵에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에는 없고, 우리와 비슷한 유통구조인 일본에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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