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만 되면 더욱 바빠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건만씨다. 성함이 ‘이것만’이 아닌 ‘이건만’이다. 그래픽 아니 패션 디자이너다. 그것도 한글을 소재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문양을 만들고 여러 형태로 변용시키는 등 한글을 다채롭게 디자인한 뒤 이걸로 지갑, 가방, 넥타이, 스카프 등을 만들어 팔고 있다. 자기 이름을 브랜드(ㅇㅣㄱㅓㄴㅁㅏㄴ) 명칭으로 삼았고 자체 매장만 여러 군데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글날을 즈음해 관련 행사를 열며 바빠진다.
이 이건만씨가 올해는 무엇을 기획했을까 찾아보니 시내버스를 한글 디자인으로 래핑했다는 기사가 떴다. 이른바 ‘한글 디자인 시내버스’를 만든 것이다. 102, 151, 152번 버스가 이렇게 한글 디자인 겉옷을 차려 입고 1달간 서울 시내를 누빈다. ‘한글, 세계적 디자인으로 꽃 피우다’라는 주제로 기획된 프로젝트인데 물론 그의 아이디어다.
우리글의 자음과 모음에 여러 가지 색깔을 입히고 입체적으로 그려 한글이 마치 버스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만들어져 있어 ‘한글 버스’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한글이 저렇게 재미있고 다양하게 그려질 수 있구나 하는 면에서 음미하는 맛도 쏠쏠하다.
수년 전부터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비행기 동체에 독수리나 동물 캐릭터, 심지어 여자 모델 누드까지 그려 넣고, 래핑해 인기와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는데 시내버스 래핑, 그것도 한글 디자인 래핑은 훨씬 신선하다. 대중들이 가까이서 보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 한글은 영어 문자 알파벳에 비해 촌스럽고 글자를 디자인해도 모양이 나지 않는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지금도 왠지 그렇다. 그런데 이건만씨가 디자인한 지갑이나 넥타이를 보면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우아하고 세련됐다. 한글 글꼴의 숨은 아름다움을 그가 찾아낸 것이다.
이건만 브랜드의 패션 제품이나 기념품은 이제 G20 등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에서 외빈을 위한 단골 선물이 됐다. 이른바 해외 명품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 백화점의 1층 매장과 인천공항 면세품점 등에도 이건만 브랜드가 입점했다. 한글을 소재로 한 디자인으로도 명품을 만들고 경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대중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한글로 ‘이 정도 온 것만’도 대단하다.
이건만씨는 고교시절 1등과 꼴찌를 오갔다고 한다. 대학입시 1년을 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평소 하고 싶었던 미술에 승부를 걸었고 홍대 미대에 극적으로 진학한다. 여기 들어가서도 남들이 하지 않은 뭔가를 해보려던 끝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한글에 천착하게 된다. 이른바 한글 모노그램 디자인이다. 한글만이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고유의 문화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씩씩하고 호방한 그의 외모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일찌감치 주체사상(?)에 심취했던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 “처음부터 명품은 없다. 샤넬이나 에르메스도 시작할 때는 무명브랜드였다.” 그는 이런 좌우명으로 외길 인생 한글 디자인에 매달렸고 한글날만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되었다. 탤런트 정경순씨가 부인으로 화제도 뿌리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을 소재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기획물을 펼쳐놓고 있다는 점에서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국민 디자이너라는 생각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