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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의 사소하게] 홈런왕 박병호 인생역전, 그리고 리더의 조건

[이주형의 사소하게] 홈런왕 박병호 인생역전, 그리고 리더의 조건
박병호를 처음 인터뷰했던 건 재작년 초가을, 아마도 잠실 구장 넥센 대 두산전 덕아웃에서였던 것 같다.
듬직하긴 했지만 덩치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서글서글한 성격이었지만 약간은 수줍음을 타는 스타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LG에서 막 트레이드돼와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 할 때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인성이 좋은 선수라는 느낌을 받았다.

의아했던 것은 타고난 재능에다 인성까지 좋은 선수가 왜 트레이드되는 신세가 됐을까 하는 것이었다. 성남고 시절 전국대회에서 4연타석 홈런을 날린 거포, 2005년 LG트윈스 1차 지명된 차세대 홈런왕..하지만 LG에서 네 시즌을 보내는 동안 1할대 타율에 홈런은 24개에 불과한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박병호가 올 시즌에만 친 홈런이 37개이니 세상이 달라졌든가 그가 달라졌다. 역대 4명 밖에 없는 2년 연속 홈런왕이 떼놓은 당상인데다 타점, 득점, 장타율도 1위다. 넥센으로 옮긴지 3년 만에 슈퍼스타급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 잠깐 인터뷰했던 것 빼곤 아무 인연도 없는 나까지 괜히 뿌듯하다.(두 번째 인터뷰할 때 나를 알아봐줘 고맙긴 했다.(^^)

박병호를 트레이드해온 사람은 당시 넥센 감독이었던 김시진 현 롯데 감독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자의반 타의반인지, 박병호의 성공을 확신했는지 등등은 김 감독 당사자와 이장석 구단주를 빼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박병호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이 친구가 4번 타자가 될 수 있느냐? 감독이 돈 것 아니냐? 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저는 나음대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원래 알드리지가 4번을 치다 강정호가 4번을 치다 4번이 몇 명 바뀌었습니다. 팀의 3,4,5번은 거의 불변이라고 봐야되거든요. 그래야 팀이 강해집니다. 계속 바뀌게 된 것은 그 자리에 갖다 놓으니까 부담을 가지고 그 몫을 못하니까 바꾸게 된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박병호를 데리고 오고 싶어서 제가 먼저 구단에 박병호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시진 감독)
박병호_500
될성 부른 거포였던 박병호는 LG에서 만큼은 늘 새가슴이었다. '이 타석에서 못치면 또 2군 가겠구나'라는 불안감에 항상 시달렸다고 했다.

"LG에서는 비슷한 (스펙의)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성적이 어느정도 나다가 안나니까 또 교체를 하고 또 교체를 하고 이러다 보니까 그만큼 못치고 한두 번 못치다가 또 못치게 되면 선수는 '아, 내가 몇 번 못치게 되면 또 내 위치가 바뀔 수 있다. 2군으로 갈 수 있다' 이런 부담감 때문에 LG에서는 못치지 않았나..(김시진 감독)

넥센으로 쫓겨온 박병호는 그 시즌 66경기에 나가 2할5푼, 홈런 13개, 31타점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박병호의 얘기다. "기술적인 부분보다 심리적인 게 컸던 것 같아요. 처음 (김시진) 감독님께 인사드리러 왔을 때 '정말로 야구장에서 너 하고 싶은대로 한번 해봐라. 나는 바라는 게 그거 밖에 없다'고 하셨죠"

"나는 지금이 아니고 내년, 후년을 보기 때문에 너 하고 싶은대로 해라. 그리고 삼진을 겁내지 마라. 나도 투수를 했지만 흔히들 똑딱이 히트치는 것보다 100% 스윙돌려서 삼진 먹는게 투수들한테는 더 부담스럽고 두려워한다" 이렇게 말하는 김시진 감독이 박병호는 고마웠다. 자기 스윙을 시작했다. 김시진 감독 특유의 진솔한 성품이 이심전심으로 전달됐을 것이다. 물론 만년 하위권의 팀을 리빌딩해야 하는 넥센의 외적인 환경이 김시진 감독에게도 여유를 주었을 것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리더, 믿고 맡겨줌으로써 잠재력을 일깨워준 리더를 만난 박병호는 지난해 30홈런 100타점을 넘어서며 꽃을 피웠다. 그리고 올해는 명실상부한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다. 비록 지금은 김시진 감독이 롯데로 떠나고 없지만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박병호를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부드러운 김시진 감독과는 자못 다르게 선수들에게 냉혹하게 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승리지상주의자 고양 원더스의 김성근 감독에게도 그만의 리더십이 있다. 그는 흔히 알려진 것과 다르게 선수 한 명 한 명을 '냉철하게' 아낀다. 99% 부족한 선수라할지라도 단 1%만이라도 남들보다 뛰어난 구석이 있으면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1%를 완벽하게 만들면 세상 사람들은, 감독은, 그를 찾게 마련이라는 것이 김성근 감독의 생각이다.풀타임으로 경기를 뛰지 못하는 대수비, 대주자 전문 선수도 그만의 기술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주는 게 그만의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이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단 한 명도 그냥 버리지 않는 그를 선수들이 따른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과연 박병호가 김성근 감독 아래로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알 수 없는게 인생이고 리더십이다. 박병호와 함께 트레이드돼온 투수 심수창. 이적해서 '투수조련사'로 불리는 김시진 감독의 배려와 관리 속에서 18연패를 끊으며 눈물을 흘렸지만 지난해 21경기에 등판해 7.30의 방어율로 부진했고, 올해는 아예 1군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 역시 박병호와 마찬가지로 김시진 감독이 믿고 마운드를 맡겼지만 결과는 180도 다르게 나온 셈이다.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 포기하지 않는 자가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끝내 포기되지 않는다는 것만이 유일한 방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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