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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산 망치는 ‘샛길 산행’

[취재파일] 북한산 망치는 ‘샛길 산행’
북한산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샛길 등반’ 탓입니다. 정규 탐방로가 아닌 곳으로 다니는 샛길 산행으로 북한산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수없이 밟고 지나간 자리는 풀이 잘 자라지 못해 식생이 파괴됩니다. 동물들이 몸 숨길 곳은 물론, 먹이 얻을 나무도 사라집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북한산국립공원 안 샛길은 백20여 곳으로 추정됩니다. 2007년 조사에서 3백65개, 221.8km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3분의 2쯤 줄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꾸준히 복원 사업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출입 금지 목책을 넘어 샛길 산행에 나서고 있습니다. ‘자기만 안다’고 생각하는 한적한 길로 은밀하게 산에 오르는 쾌감을 못 버리는 겁니다. 실제로 정규 탐방로에서 볼 수 없는 경치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인터넷에선 샛길 산행에 다녀온 뒤 자랑스럽게 사진과 후기를 올려놓은 산악회 커뮤니티 사이트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립공원 안 지정되지 않은 탐방로로 오르는 건 자연공원법 위반입니다.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됩니다.

지난 주말, 공단의 북한산 샛길 등반 단속에 따라 나섰습니다. 출입금지 구역인 상장능선을 찾았습니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어서인지 단속반이 꾸준히 순찰을 다녀도 기어이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정규 탐방로가 아닌, ‘길 아닌 길’을 낑낑거리며 숲을 헤쳐 올랐습니다. 10여분 남짓 올랐을까, 어느새 여러 갈래로 펼쳐진 ‘길’이 나타났습니다. 하나의 정규탐방로에서 가지를 뻗고 또 뻗어나가 마침내 거미줄처럼 펼쳐진 북한산 샛길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간 흔적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흙이 다 쓸려 내려가 거대한 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위태하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무는 오래지 않아 고사합니다. 길과 길이 조각낸 산은 여러 개의 섬 같았습니다. 큰 비가 내린다면 이 많은 샛길은 그대로 ‘수로’가 될 것입니다.

비가 오락가락 한 날이었지만, 반나절 만에 10여 명을 적발했습니다. 날씨 좋은 주말엔 20~30명 씩 적발되기도 합니다. 적은 인력으로 모든 구간 단속을 다 못하는 형편을 감안하면 더 많은 샛길 산행객이 있을 걸로 추정됩니다. 샛길 출입으로 공단에 단속된 산행객 2011년 2백90명에서 지난해 4백20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9월 현재 벌써 3백67명에 달합니다.

하나같이 단속엔 비협조적이었습니다. “몰라서 그랬다”는 핑계는 양반이었습니다. 적발되면 “산에 무슨 신분증을 들고 오느냐”며 버티기 일쑤였고, 단속반은 “다음에 내겠다”며 도망가 버리는 사람을 쫓기에 바빴습니다. 단 한번도 ‘깔끔하게’ 단속에 응하고 과태료 처분을 받아들인 ‘불법 산행객’은 없었습니다. 매 순간 실랑이가 반복됐습니다. 정춘호 국립공원관리공단 보전팀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실랑이가 벌어진다”며, “한 두 명도 이렇게 버틸 정도인데, 산악회와 같은 단체가 위압적으로 버티고 우르르 사라져 버리면 방법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샛길 산행은 단순히 자연을 망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등산객 본인의 안전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위치 안내’가 없어 조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빠른 대응이 어려운 겁니다. 서울 119 산악구조대 백운웅 팀장은 “가을철을 맞아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은데 우선 위치 파악이 쉽지 않고, 접근이 어렵다”고 토로합니다.

한해 4백 80만 명 정도가 찾던 북한산국립공원은 2007년 입장료 폐지 이후 9백만 명 가까이 늘었습니다. 주말이면 북한산 정규 탐방로는 ‘줄을 서’ 올라야 할 정돕니다. 이러다보니 한적한 길을 찾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국립공원을 살리려면 다시 입장료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자연을 보고 즐기도록 하자는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우리가 다 즐겨버리고 후대에 남길 자연유산이 손상되면 후손 볼 낯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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