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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도심 대로의 집단폭행'…폭주족의 권리는 무엇인가?

뉴욕 오토바이 폭주족, 운전자 집단폭행 사건의 파장

[월드리포트]'도심 대로의 집단폭행'…폭주족의 권리는 무엇인가?
 미국 시간 지난 달 29일 일요일, 뉴욕 맨해튼 서쪽의 강변도로인 헨리 허드슨 파크웨이는 이상하게 한산했다. 아내와 2살 아기를 자신의 SUV에 태우고 도로로 진입한 33살 리옌 씨도 뭔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다른 차들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곧이어 자신의 뒤로 굉음과 함께 1백여 대 가까운 오토바이 무리가 몰려오는 것을 백미러를 통해 지켜봤다.

상상하지 못했던 공포…가족을 위한 선택

"또 폭주족이구나. 오늘은 정말 숫자가 많네." 평상시처럼 조심해서 지나치면 그만이었다. 이들의 난폭한 행태를 처음보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뉴욕의 폭주족은 그냥 광적이고 극성스러운 동호회 활동으로 보기엔 위험한 현상 중 하나이다. 다인종 사회인 뉴욕에서 폭주족의 무리 자체가 하나의 '인종 과시적' 양상을 띠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만은 광적인 스피드와 과시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리옌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은 상상하지 못했다. 또 한번 잘 피해가면 될 듯 싶었다.

앞서 가던 오토바이 한 대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리옌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쿵'하며 가벼운 접촉사고가 나고 말았다. 차가 서있는 상황에서 헬멧을 쓴 수십 명의 바이커들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차를 둘러싸는 모습을 보았다. 뒤에는 아내와 불과 2살의 딸이 타고 있었다. 여러 명이 차를 세게 두드리는 소리, 극대화된 공포감은 그에게 현장을 빨리 피해야한다는 직감을 불러왔다. 차를 가속하는 순간, 앞에 있던 오토바이 운전자를 들이받고 말았다. 하지만 차는 오토바이를 밟고 계속 달렸다. 위험한 순간 가족을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오토바이를 다루는데 익숙한 폭주족들의 추격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약 4킬로미터를 진땀을 흘리며 달리던 리옌의 차는 도심 거리에서 결국 정체에 멈추고 말았다. 폭주족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차를 둘러쌌다. 그리고 한 남성이 다가와서는 자신의 헬멧을 휘둘러 차의 운전석 옆 유리창을 무자비하게 박살냈다. 그는 밖으로 끌려나갔고 무지막지한 집단폭행을 당했다. 아내는 뒷 좌석에서 이 상황을 지켜봐야했다. 2살 아기도 보고 있었을까?

리옌은 얼굴이 찢어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했다. 그는 자신이 들이받은 오토바이 운전자 때문에 적극적으로 신고에 나서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다른 사람도 아닌 폭주족이 촬영한 화면이 인터넷상에 올려지면서 알려지게 된다.
뉴욕 폭주족 캡쳐_
"2살 아기도 탔는데"…폭주에 지친 뉴요커들의 분노

화면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격앙 그 자체였다. 뉴요커들 상당수가 폭주족으로 인해 공포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2살 아기가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뉴욕 전체의 분노가 폭발했다. 오토바이 운전자 한 명이 헬멧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문제의 추격전 상당 부분을 촬영했는데 영상을 올린 이유는 뺑소니 사고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초기엔 쌍방 수사 개념으로 사건에 접근했던 뉴욕경찰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여론은 압도적으로 리옌의 편이었다.

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른 폭주족 1명을 검거하고 2명을 공개 수배한 경찰은 이번 사건이 뉴욕 폭주족들의 대대적인 연례 행사와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뉴욕경찰의 레이몬드 켈리 국장은 "이번 사건은 당일에 계획된 것으로 보이는 이른바 '헐리우드 스턴츠'라는 오토바이 폭주족 모임의 도심점령 계획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폭주족들의 '8.15 폭주'처럼 뉴욕 일대 폭주족들이 은밀한 약속을 통해 갑자기 맨해튼 한복판인 타임스퀘어를 점령하는 계획이었다. 이날 NYPD는 위험한 오토바이 폭주 행태를 봤다는 200여 통의 신고 전화를 받았다. 경찰은 도심을 봉쇄해 오토바이들의 진입을 차단했고 이들은 강변의 고속도로에서 다시 한번 자신들의 이벤트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리옌이 해당 도로에서 차를 보지 못했던 이유는 이들 일부가 도로로 진입하는 진입로 부근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가장 위험한 지점으로 차를 몰아갔던 셈이다.

영상을 스스로 올렸을 정도로 가해집단의 심리는 뻔뻔하기만 하다. 화면이 보여주듯 명백한 뺑소니 사건이었던 만큼 응분의 댓가를 치러야한다는 것이다. 비난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그들은 차에 치인 오토바이 운전자의 입원 사진을 다시 SNS에 띄웠다. 그는 다리 골절과 허리 부상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중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폭주족의 권리는 없다'…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대부분 뉴요커들의 반응은 폭주족들의 권리에 극도로 냉담하다. 차량운전자 리옌의 과실과 폭주족들의 폭행을 쌍방수사하겠다던 경찰은 뉴욕 여론의 분노에 난폭운전과 아동학대 혐의로 28살의 오토바이 운전자 크루즈를 체포했다. 뉴욕 검찰은 이례적으로 "심리적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면 법은 운전자가 꼭 현장에 남아있어야한다고 강제하고 있지 않다"는 해석을 밝혔다. NYPD는 지금까지 SUV 운전자 리옌을 기소할 방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폭주족의 권리는 없다는 의미이다.

영상이 잘 보여주 듯 이번 상황은 선량한 뉴요커라면 누구나 닥칠 수 있는 것이었다. 촬영한 영상으로 뺑소니를 증명하려했던 폭주족의 발상이 단죄의 불길을 일으킨 셈이다.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뉴욕타임즈는 이 사건의 속보를 전하면서 "이런 상황이 당신에게 닥쳤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전문가들의 답변은 이렇다. 첫째, '차량 문을 잠가야 한다.' 둘째, '무조건 경찰이나 911에 신고하라.' 셋째,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며 차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이번처럼 유리창을 부수는 경우라면 이런 행동지침은 한계가 있다. 또한 일부러 갓길로 차를 이동하지 말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대로에 정지해있어야 다른 사람들과 특히 경찰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을 피하려하지 말고 법으로 달려가라"는 충고도 나왔다. 의도가 선량하다면 법은 처벌이 아닌 보호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 "증거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폭주족 중 한 명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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