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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술 취한 여고생 성폭행 男 '혐의 없음' 왜?

[취재파일] 술 취한 여고생 성폭행 男 '혐의 없음' 왜?
박소연(가명) 양은 16살 여고생입니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친구와 서울 홍대에 놀러갔습니다. 분위기에 쓸려 술을 마셨습니다. 소주 두 병 정도로 기억합니다. 잘 걸을 수 없었습니다. 지하철역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같이 있던 친구가 어디인가로 전화를 합니다. 얼마 뒤 친구가 아는 ‘오빠’가 왔습니다. 소연 양에게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친구가 그 오빠에게 소연 양을 집까지 데려다 주라고 부탁했습니다. 몇 동 몇 호까지는 아니지만 사는 동네와 아파트 이름까지 말해줬습니다. 오빠는 알았다고 했습니다. 오빠는 소연 양을 일으켜 세워 택시에 태웠습니다. 소연 양은 당시 그 오빠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발끝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택시 안에서 자고 있던 소연 양의 윗옷 속으로 오빠의 손이 들어와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소연 양은 깜짝 놀라 깼습니다. 몸이 얼어붙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누구일까, 그러다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인가?’

얼마 전 소연 양은 친구에게 전화번호를 하나 받았습니다. 유명 사립대에 다니는 21살 오빠인데 한번 만나보겠느냐는 제의와 함께 말입니다. 좋다고 했습니다. 번호를 저장하니 그 오빠의 SNS 사진이 떴습니다. 메시지는 몇 번 주고받았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습니다.

어느 새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오빠가 흔들며 ‘내리라’고 했습니다. 소연 양은 집 앞인 줄 알고 내렸습니다. 오빠가 부축해줬습니다. 술이 안 깨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빠는 아무 말 없이 소연 양을 데리고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소연 양은 그때까지도 그곳이 모텔인 줄 몰랐습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깨워 눈을 떴습니다. 오빠였습니다. 그제야 소연 양은 자신이 모텔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빠는 욕조에 물을 받아놨다고 했습니다. 몸을 좀 담그고 있으라며 소연 양을 끌고 욕실로 데려갔습니다. 주머니에는 휴대전화가 없었습니다.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뜨거운 물 안에 있다 보니 술기운이 더 올라왔습니다. 갑자기 오빠가 들어왔습니다. 몸을 닦으라며 수건을 줬습니다. 옷을 챙겨 입고 나온 소연 양은 다시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소연 양의 싫다는 의사표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빠는 유사 성폭행을 저질렀습니다. 너무 아프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서야 오빠는 성폭행을 중단했습니다.

소연 양은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휴대전화가 가방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꺼내 봤습니다. 친구한테 부재 중 전화가 와 있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소연 양은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친구가 이상했는지 어디냐며 옆에 있는 사람 바꾸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오빠가 전화기를 빼앗아 가더니 “우리 옷 다 입고 있고 아무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소연 양은 엄마가 기다린다며 모텔을 빠져나왔습니다. 오빠는 가려는 소연 양의 손을 잡더니 술 냄새를 없애고 가야 한다며 이번엔 커피숍에 데리고 갔습니다. 소연 양은 싫다는 말을 못하고 따라갔습니다. 커피숍에서 오빠는 소연 양에게 ‘오늘 있었던 일 기억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소연 양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거짓말을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사흘쯤 지나자 소연 양은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수치스러웠습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어느 지하철 역사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모아둔 두통약 90알을 삼켰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깨어보니 병원이었습니다. 엄마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소연 양은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엄마와 소연 양은 그 오빠를 절대 용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서로 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 사이 오빠는 집요하게 전화했습니다. 끈질기게 합의를 요구했습니다. 무시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 강서경찰서를 찾았습니다. 담당 경찰관은 소연 양과 오빠의 얘기를 모두 듣더니 오빠에게 아동 청소년에 대한 ‘준강간(술에 취해 의식이 없거나 항거 불능 상태를 이용해 강간 또는 추행하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소연 양은 이 과정에서 오빠의 실제 나이를 알았습니다. 21살이 아니라 31살이었습니다. 대학생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 남부지검의 판단은 정반대였습니다. 오빠가 나이와 신분을 속이고 청소년에게 접근한 사실, 술에 취한 소연 양을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택시에 태운 뒤 모텔로 데려간 사실, 서서히 의식을 회복한 소연 양의 속옷을 내리고 ‘유사 성폭행’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를 한 사실, 이어 ‘성폭행’ 또는 ‘성폭행 미수’에 해당 될 수 있는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오빠에 대해 택시 안에서 자고 있던 소연 양을 성추행한 혐의는 인정해 기소했지만, 모텔 안에서의 '준강간' 혐의는 없다며 재판에 넘기지 않았습니다. 검찰 말로는 소연 양이 모텔 안에서 오빠에게 반항할 수 없을 정도로 심신이 상실돼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연 양이 ‘그 일’을 겪은 지 사나흘 뒤에 쓴 일기장이 증거라고 했습니다. 소연 양은 생각하기도 싫었지만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애써 기억을 복원해 그날 있었던 일을 적었을 뿐인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된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검찰은 “소연이가 춥다고 해서 2~3분 정도 안아줬는데 그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아 이 아이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 같은 행위를 했다”는 오빠의 말을 더 믿어버렸습니다.

소연 양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게 자신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니…. 차라리 그때 죽을 각오로 오빠를 밀치고 모텔에서 도망쳤어야 하는 것인지…. 소연 양에게 ‘그 일’이 일어난 지 벌써 아홉 달이 넘었습니다. 검찰은 용서했지만 소연 양은 절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자다가 식은 땀을 흘리며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길 가다가 군용외투만 보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 일’이 있었던 날 오빠가 입고 있던 옷입니다. 화도 잘 못 참습니다. 엄마에게 수시로 화를 냅니다. 몇 달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분노조절장애’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소연 양의 엄마는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묻다 보니 정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습니다. 소연 양은 16살, 형법 상 아동 청소년에 해당하는 나이입니다. 국가가 미성년자를 성범죄로부터 적극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2012년 8월부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개정됐습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서 강간죄를 적용할 수 없고, 항거 불능 상태가 아니어서 준강간죄도 적용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청법 7조 5항은 ‘속임수를 써서 미성년자를 성폭행 또는 성추행해도 강간죄와 같은 수위의 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게다가 형법에는 성폭행을 목적으로 유인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오빠가 집에 데려다주겠다던 소연 양을 모텔로 데리고 간 행위만 따져도 오빠에겐 큰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겁니다.

소연 양의 엄마는 검찰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물어서는 안 되지만 범죄를 당한 사람을 대신해 국가가 나서도록 검찰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 의무를 저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정말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아직도 ‘전관예우’가 있는 건지 소연 양의 엄마는 답답할 뿐입니다.

“저쪽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장 출신의 유능한 변호사여서 법에 능통했던 것 같습니다.” 라는 변호사의 말이 머리 속을 계속 맴돌지만 소연 양 엄마는 ‘아니었을 거야' 마음을 고쳐 먹고 항고장을 만들어 나갑니다.

<위 내용은 소연 양 사건 기록(경찰, 검찰)과 소연 양 어머니와의 인터뷰, 소연 양 진료 기록과 119 구급 일지를 토대로 형사 재판부 소속 판사 4명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실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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