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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집을 통째로 들어올려?"…필사의 '홈엘리베이션'

다시 찾아온10월…뉴욕에 드리워진 샌디의 악몽

[월드리포트] "집을 통째로 들어올려?"…필사의 '홈엘리베이션'
"지구상의 어떤 지역은 분명 대자연의 소유이다. 하지만 언제인가 대자연이 당신이 여기에 살기를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때가 오게된다." 뉴욕이 슈퍼허리케인 샌디의 충격에서 정신을 차릴 무렵,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뉴욕 시민들에게 제안한다.

'상습 태풍피해 지역의 집과 땅을 몽땅 주정부가 사들일테니 기존에 살던 분들은 보상금을 받고 떠나시라'는 것이다. 주 정부는 이 땅을 습지, 조류서식지역 등으로 활용하며 자연상태로 보존하면서 재해로부터 내륙지역을 감싸주는 일종의 재해막이용 그린벨트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 완충지대이다.
매입대상이 되는 가구는 1만 세대 정도, 매입 비용은 약 4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천 300억원으로 추산됐다. 연방정부에서 지원한 샌디 피해복수 예산 일부를 활용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당장 큰 화제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구상을 '방재대책 사상 가장 야심차고 이상적인 아이디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뉴욕주의 역발상…예상치 못한 저항

하지만 주정부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곧 당황해야했다. 상당수 주민들이 자신의 마을을 떠날 수 없다고 맞서고 나온 것이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허리케인과 기상이변에 지친 사람들은 주정부의 제안에 응하겠다고 했지만, 뉴욕주 롱아일랜드를 중심으로 3대 이상을 거주해 온 토박이 주민들은 앞으로 보험료 등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살던 곳에 계속 살겠다고 했다. "나에게 우리 집을 떠나고 우리 이웃을 떠나라고 하지 말고 실제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나 세워달라."는 것이다. 대서양의 수온상승 등 북미지역의 기후 변화로 허리케인이 남부가 아닌 미국 중부를 넘어 동북부까지 덮쳐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유서깊은 뉴욕주 해안지역의 주민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그 이상이었다.

 6개월째 계속되는 해안 방재시설 공사

그래서 실행된 대책이 대규모의 방재시설들이다.  SBS취재팀이 평온을 되찾은 듯한 피해지역을 찾았을 때는 다시 가을을 맞아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뉴욕시 퀸즈 락카웨이, 샌디가 몰고 온 높은 파도로 극심한 피해를 봤던 이 곳 주민들은 당시의 얘기를 하기 싫어했다. 아들과 함께 걸어가던 주민 로저씨는 말했다. "그런 허리케인이 또 온다면 아마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2미터 높이의 물이 집에 밀려온다면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다시 태풍 경보가 울리면 현명한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 타운을 일단 떠나야합니다."

락카웨이 해변에는 태풍 등 유사시 주택가 침수를 막기위한 두꺼운 시멘트 방벽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수십 킬로미터의 해변에 2미터에서 1.8미터 높이의 방벽이 길게 둘러쳐졌다. 샌디 때 경험했던 해수면 상승 높이를 감안해 뉴욕 곳곳의 취약지역을 아예 둘러싸버리는 대공사이다. 뉴욕 맨해튼 동쪽으로 길게 펼쳐진 롱아일랜드 남쪽의 록스베리, 롱비치, 존스비치에서도, 맨해튼 남쪽의 맨해튼 비치에서도, 서쪽 스태이튼 아일랜드의 사우스 비치와 미드랜드 비치에서도 같은 공사가 진행됐다.

"집을 통째로 들어올려?" 홈 엘리베이션

하지만 당국의 고민은 해당지역에 목조주택이 워낙 많다보니 주택침수와 파손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이었다. 해변의 시멘트 방벽은 파도의 충격으로부터 1차적 완충 역할을 해주지만 결국 밀려들게 될 엄청난 물로 인한 침수피해에는 또 다른 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집 들어올리기, 홈 엘리베이션(Home elevation)이다.

해변가의 주택을 균열이나 비틀림 없이 지반에서 최대 4미터 이상 들어올리는 정교한 작업이다. 본래는 뉴욕 롱아일랜드 해변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을 위한 아이디어였지만 일반 가정 주택으로 공사가 대폭확대됐다. 태풍이 왔을 때 일단 대피하더라도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을 때 집이 온전하게 남아있다면 그만큼 재산과 심적 피해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홈 엘리베이션의 가장 큰 난제는 '같은 주택이라도 각 지점마다 무게가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들어올릴 수 있나?'하는 것이다. 공기유압식 장치인 '유니파이드 시스템'이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 각 지지점의 무게차이를 조절해 같은 속도로 균일하게 올리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다. 주택은 지역에 따라 약 15피트, 4.6미터까지 들어올려진다. 비용의 반 이상을 정부가 지원하는데, 지금까지 1,500여 가구가 혜택을 봤다.

  "36시간은 버텨야한다" 불안한 뉴욕

뉴욕에선 이달 들어 비상식량과 연료, 각종 재해대비 용품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통조림, 배터리, 손전등, 식수... 샌디를 직접 겪은 로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일단 떠날 겁니다. 물론 나는 계란, 통조린, 식수, 배터리를 사놨어요. 하지만 태풍이 왔을 때는 휴대전화도 작동하지 않았고 어떤 통신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피신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최소한 24시간에서 36시간 동안 누구의 도움없이도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준비를 해야합니다."

샌디로 인한 사망자는 253명, 실종은 15명, 재산피해는 무려 630억 달러였다. 미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라 연방정부가 배정했던 복구예산은 실행속도나 규모 면에서 엄청났다. 505억 달러의 천문학적 예산이 배정됐고 이 예산은 뉴욕, 뉴저지 곳곳에 투입됐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직도 호텔이나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샌디 이재민이 4천 가구로 이들의 호텔 비용으로만 이미 4천 500만 달러가 지출됐다고 전했다. 제2의 샌디를 막기위해 지난 10개월 동안 뉴욕시가 방재시설에 투입한 예산만 무려 22조원이다.

미국 기상당국은 앞으로 석달 동안 최대 6개의 강력한 허리케인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서양의 수온 상승 때문이다. 샌디가 남긴 뉴요커들의 가장 큰 변화는 미국 동북부도 결코 허리케인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또 대도시라고해서 태풍 대비가 더 잘 돼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뉴욕의 방송사들도 장갑차를 방불케하는 생중계용 취재차량를 구비하고 허리케인 발생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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