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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바다 소용돌이가 블랙홀?

블랙홀 처럼 주변 빛까지 흡수하진 않아

바다 소용돌이 관련 취리히 공대 연구진 그래픽 자료

 미국과 스위스 과학자들이 남대서양에서 블랙홀과 같은 작용을 하는 바다 소용돌이를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발견으로 지구 온난화나 해양오염 물질 이동과 관련한 여러 의문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내용인데요. 출처는 미국 허핑턴포스트와 영국 데일리 메일입니다. 

 두 언론사는 스위스 취리히 공대 조지 홀러 교수와 미국 마이애미 대학 해양학 교수인 프란시스코 베론베라 교수가 남대서양에서 발견한 바다 소용돌이가 온난화가 빙하가 녹는 것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내 일부 언론사는 "연구진이 지금까지 '눈으로 볼 수 없었던' 바다 소용돌이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온난화 방지 효과를 계량화하지 못했으나 수리 모델과 위성 사진을 바탕으로 계속 변화하는 바다 소용돌이의 경계 부분을 분석해 바닷물을 머금은 바다 블랙홀의 소재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습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연구진이 지구 온난화와 관련해 중요한 발견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다 소용돌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구에 존재한 자연현상입니다. 대기에서 발생하는 토네이도나 태풍처럼 바다에서도 소용돌이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블랙홀 이미지(취재

 대기와 마찬가지로 유체(Fluid)인 바닷물에서도 해류와 온도, 밀도에 따라 만들어지는 여러 형태의 소용돌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좀 더 쉬운 설명을 위해 태풍을 예로 들어볼까요? 태풍은 적도 근처 바다에서 증발하는 수증기가 모이면서 발생한 열이 에너지원이 됩니다. 태풍의 눈을 중심으로 강력한 바람을 동반하며 해수온도가 낮은 지역이나 육상에 상륙해 수증기 공급이 중단되면 세력이 급격하게 약해집니다. 이렇게 대기에서 발생하는 태풍이 오래 전부터 존재한 것처럼 바다에도서 바닷물의 온도와 흐름, 밀도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소용돌이가 존재해왔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일부 언론은 외신 보도를 그대로 인용 보도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일부 보도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바다 소용돌이가 우주의 블랙홀과 등가여서 빛이라도 바다 소용돌이 안을 뚫고 들어가지 못 하고, 바닷물 조차 빠져나가지 못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미국과 스위스 과학자들이 이번 바다 소용돌이 발견을 기초로 1년간 바닷물을 방출하지 않으며 이동하는 바다 소용돌이를 비롯해 7개 유형의 블랙홀과 같은 바다 소용돌이를 규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에도 일부 왜곡과 과장이 있는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바다 소용돌이는 빛까지 빨아들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바다 소용돌이는 5대양 곳곳에서 만들어집니다. 크기는 대략 140km 정도인데요. 생성 환경이랄 수 있는 해양 상태에서 따라 크기나 방향, 밀도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바다 소용돌이는 대부분 웬만한 도시보다 큰 크기로 수십억 톤의 바닷물을 머금고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넘게 이동합니다.

 바다 소용돌이는 기체와 달리 물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고 한번 회전하는 데 며칠씩 걸린다고 합니다. 남대서양처럼 남극 주변의 차가운 물에서 만들어진 소용돌이는 해수면보다 수위가 낮고, 멕시코만처럼 따뜻한 바다에서 생선된 소용돌이는 해수면보다 수위가 높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태풍이나 토네이도처럼 바다 소용돌이도 이동하는 지역의 바닷물 염분과 온도를 바꾸며 기후에도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그러나 바다 소용돌이는 블랙홀처럼 주변 빛까지 흡수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블랙홀은 별이 극단적인 수축을 일으켜 밀도가 크게 증가하고 중력이 굉장히 커진 천체를 말하는데요. 일반 상대성이론에 근거를 둔 것으로, 물질이 극단적으로 수축하면 그 안의 중력은 빛, 에너지, 물질, 입자의 어느 것도 탈출하지 못할 만큼 강해진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조양기 교수는 "바다 소용돌이는 블랙홀과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바다 소용돌이가 빛까지 빨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스위스와 미국 연구진인 바다 소용돌이를 수학적으로 계량화 하는 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 성과를 다소 과장해 보도한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우주와 달리 해류라는 일정한 흐름 속에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는데다 그 크기와 힘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블랙홀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전부터 있었던 자연현상이라고 한다면 연구진이 말하는 온난화 방지 효과도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연구진이 밝힌대로 바다 소용돌이가 차고 따뜻한 바닷물을 품고 이동하면서 대양에 재공급하는 과정에서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바다 소용돌이의 역할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나사는 최근 33년간 북극 얼음이 지난해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절반 이상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알래스카와 텍사스, 캘리포니아를 합친 면적이 줄어든 건데요. 북극 얼음이 줄면서 태양열을 반사시키는 이른바 '얼음 모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태양열이 바다에  흡수되고 해수 온도도 그만큼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사의 빙하 전문가 톰 와그너는 "바닷물이 해류를 타고 이동하면서 기온에 영향을 미치며, 북극 얼음이 줄면서 기후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사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바다 소용돌이가 온난화 방지에 기여하는 역할은 제한적이라는 반증도 나올 수 있습니다. 바다 소용돌이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에 최근 급변하는 기후변화를 설명하는 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블랙홀 사진(취재파
 그렇다면 미국과 연구진은 어떻게 바다 소용돌이를 발견하게 된 것일까요?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모델을 계량화하는 과정에서 예전보다 더 정밀하고 세밀한 분석방식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구변화와 관련해 해양 순환을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에서 지구 전체를 바둑판 크기만큼 작은 격자 무늬로 세분화해 관찰하는 과정에서 예전부터 존재했던 바다 소용돌이를 발견하게 됐고, 그 생성원리와 소용돌이의 경계 부분을 수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는 설명입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찬반 의견이 팽팽한데요. 국제부에서 세계 기후변화 관련 보도를 다루면서 세계 전문가들이 기후변화 예측하는 모델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교하지 않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심지어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조차도 지난 2007년까지 해수면 상승을 예측할 때 바닷물의 온도 상승과 팽창만 고려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내용은 IPCC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전문가들 통해 직접 확인한 내용입니다. IPCC가 최종 결론을 낸 것은 아니지만, 최근 진행된 연구에서는 빠르게 녹고 있는 빙하를 해수 온도 상승과 팽창과 함께 고려하면서 해수면 상승 예측치를 32cm나 더 올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오는 2100년까지 해수면이 최대 91.4cm까지 상승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IPCC는 추가 의견 수렴 과정을 통해 조만간 결론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스위스와 미국 연구진의 바다 소용돌이 관련 연구 결과까지 검토하면 예전보다 객관적인 예측 자료를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각종 자연 현상을 보면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이 떠오릅니다. 가이아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일종의 자기 제어 혹은 자정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블랙홀과 동일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바다 소용돌이는 자정 기능을 하는 지구의 메카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지구의 자정 능력에도 분명히 한계가 존재할 겁니다. 사람들이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현재의 편의만 추구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면 지구의 자정 능력도 언젠가 한계가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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