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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LA 한인타운이 촌스럽다고요?

이민1세대의 눈물과 땀을 생각하며

[월드리포트] LA 한인타운이 촌스럽다고요?
 LA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꼭 들렀다 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한인타운입니다. 한글 간판이 한국의 이태원보다 더 많다고 하는 곳이죠. 올림픽 가와 윌셔 가를 중심으로 동서로 약 2킬로미터 길이로 형성돼 있는, 중국 연변을 제외한 세계 최대의 한인 집단 촌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돌아가면서 거의 예외 없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은 맛있는데 참 촌스럽다” “70년대 서울 변두리 같다” 등등… 며칠 동안 불편함 없이 잘 먹고 잘 놀다 가면서도 꼭 뒷전에다 이런 말들을 남깁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2년 6개월전 특파원으로 부임해서 처음 만난 LA 한인타운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서울 번화가의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빌딩과 번쩍번쩍한 조명에 익숙해진 제 눈엔 한인타운은 변두리 그 자체였습니다. 기왕 만드는 한인타운, 왜 번듯한 지역에 들어서지 못했을까? 촌스럽다는 것은 점잖은 표현이고 솔직히 꾀죄죄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상당기간 계속됐습니다.
   
 특파원 생활 1년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습관처럼 타운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 갔습니다.  아주 오래된 식당 중의 하나였죠. 무심코 메뉴 판을 보는데 ‘고추장 찌개’라는 음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추장 찌개라? 고추장 국물을 풀고 새우 젓과 두부, 호박을 넣어 맛을 낸 음식입니다. 아 그런데 그 맛이란…어릴 적 방학 때 고향에 가면 할머니께서 뚝배기에 넣어 만들어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습니다. 40년 가까이 잊고 있던 텁텁하면서도 달콤한 그 맛이었습니다. 순간 ‘어떻게 이런 맛을 냈지?’ ‘새우젓을 어디서 구했을까?‘ ‘고추장은 또 어디서?’ ‘재료도 양념도 다른데 어떻게 똑같이 맛을 냈을까?’ ‘총각 김치, 부침, 멸치볶음은 또 어떻게? 미국 야채는 엄청나게 크고 맛이 싱거운데..’ 몇 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이어졌습니다. 생각은 곧 ‘이국 땅에서 이런 맛을 내려고 식당 주인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까?’로 발전했습니다. 고심하는 식당 주인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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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두부찌개, 추어탕, 뼈다귀 해장국, 설렁탕, 순대국…그 후로 한인타운 식당에 가면 꼭 식당 주인부터 떠올립니다. 지난 70년대 중반 ‘나도 한번 잘 살아보자’며 바리바리 세간을 싣고 이역만리 건너온 사람들 말입니다. 영어를 못해 천대 받고, 식당 접시를 닦으며, 건물 청소를 하며, 부잣집 잔디를 깎으며, 밤새 재봉틀을 돌리며 온갖 고초를 다 견디어낸 우리 이민 1세대들을 떠올립니다. 그로부터 40년…그들은 영어를 못했어도 자식들은 번듯한 대학을 졸업하고 주류 사회에 속속 진입하고 있습니다. 식당 접시닦이는 식당 주인이 됐고, 청소부는 청소업체 사장님이 됐습니다. 재봉틀을 돌리던 점원은 미주대륙 최대의 의류시장인 자바에서 연 매출 3천만달러, 4천만달러 올리는 대기업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땀과 눈물, 열정, 희망..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LA 한인타운입니다.
    
 지금 보는 한인타운의 모태는 1965년쯤 처음 형성됐습니다. 물론 지금의 한인타운보다 남쪽에 교회를 중심으로 일제 때부터 한인들이 모여 살긴 했지만, 65년 무렵부터 유학생과 초기 이민자, 그리고 서독이나 남미를 거쳐 모여들기 시작해 7천여명에 이릅니다. ‘친구 따라’ ‘친척 따라’ 지금의 올림픽 가를 중심으로 한인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한 겁니다. 올림픽 가는 LA에서는 그나마 대중교통이 편리한 편이어서 차도 없이 하루에 두 가지, 세가지 일을 뛰어야 하는 한인들에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마침 60년대 후반부터는 흑인들이 남쪽에서 올림픽 가로 북상하면서 이 지역에서 백인들이 떠나가던 시기여서 집값도 쌌습니다. ‘김방아간’ ‘삼오정’ ‘로얄식품’ ‘올림픽 마켓’ 등이 초창기 이민자들이 문을 연 가게들인데 지금도 ‘김방아간’은 대를 이어 문을 열고 있는 LA 한인타운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죠. 그 후 수많은 식당, 마켓, 주류판매점, 세탁소가 들어서면서 LA 한인타운엔 아직도 20년, 30년된 식당과 가게가 당시 상호 그대로 상당수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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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타운이 미 주류사회에 알려진 계기는 1974년 한국의 날 축제인 코리안 퍼레이드가 펼쳐지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미국 밴드와 태권도 시범, 농악대 등과 오픈카를 탄 2천여명이 행진했다고 당시 미주 한국일보는 전하고 있습니다. 구경 나온 인파만도 3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후 80년대 접어들면서 한인타운은 올림픽을 중심으로 버몬트와 웨스턴, 8가까지 북쪽으로 더 커졌습니다. 그리고 82년 1월 고속도로 입구에 코리아타운이라는 공식 안내판이 세워지고 곳곳에 한인과 한국을 상징하는 건물과 지역표시도 들어섰습니다. (이상 민병용 한인역사박물관장의 글을 참조했습니다)

 이곳 시간으로 9월 26일 저녁 한인축제가 시작됩니다. 앞서 말씀 드린 코리안 퍼레이드가 어언 40년, 불혹을 맞은 겁니다. 나흘 동안 참가자만 4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주최 측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퍼포먼스와 K팝 경연대회가 열리고, 280개 부스마다 한국의 우수 농수산특산물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한인축제를 앞두고 한국의 각급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들의 LA 방문도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LA 지역 주류사회와 동포들에게 한국의 지역특산물 홍보를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의 머릿속엔 홍보도 홍보지만 지역 유권자들에게  ‘미국까지 가서 뛰는 지도자상’을 심어주기에 이만한 소재도 없다고 생각했음직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어느 단체장은 개막식 기념촬영이 끝나자마자 이튿날부턴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더군요. 정치적 셈속에 바쁜 그들의 눈엔, 아니 꼭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그저 폼 내면서 LA를 찾은 한국인 방문객의 눈에는 뭐가 보일까요? 한인축제는 그저 그런 촌스러운 시골 행사일 뿐입니다. 한인타운은 그저 촌스러운 변두리일 뿐입니다. 실컷 먹고 실컷 놀다 가면서 “음식은 맛있는데 참 촌스럽다” “70년대 서울 변두리 같다”고 불평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심코 던진 그 말 한마디가 지난 40여년간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이민 1세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는 상상조차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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