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미국 공군은 지금 (1)
워싱턴의 해군 시설인 네이비 야드에서 총성이 울린 날, 남쪽으로 10km 떨어진 포토맥 강가의 내셔널 하버에서는 축하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미 공군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공군의 과거를 회고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토론의 장이기도 했다. 미 공군 수뇌부가 총출동했다. 마크 웰시 (Mark A. Welsh III) 공군 참모총장, 마이클 하스티지 (Michael Hostage) 공군 전투사령관, 허버트 칼라일 (Herbert J. "Hawk" Carlisle) 태평양 공군 사령관 등 쟁쟁한 4성 장군들이다.
분위기는 암울했다. 시퀘스터라는 예산 삭감의 압박 때문이다. 세계 최강의 공군 전력이라도 썩은 살은 도려내고 근육을 키우며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앞으로 5년간 항공기 550대를 쳐내야 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켜야 하나? 웰시 공군 참모총장은 반드시 지켜내야 할 최우선 순위의 무기 체계 3가지를 제시했다. 공중급유기인 KC-46 탱커, F-35 전투기, 그리고 차세대 장거리 타격 전폭기였다. 웰시 총장은 이 기간 열린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도 이를 재확인했다.
5세대 뜨고 4세대 지고
왜 F-35인가?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 라이트닝II에 대한 미 공군의 애착은 공군 전투사령관인 하스티지 대장의 설명을 통해 드러났다. 현재 미 공군의 주력이라 할 F-15와 F-16 계열은 4세대 전투기다. 처음 도입할 땐 각광받는 ‘차세대’ 전투기였지만, 이젠 구형이다.
4세대 전투기는 원래의 설계 수명을 이미 넘겼고, 앞으로 현대화 과정에서도 자금이 부족하거나 성능 개선 계획 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며 겁을 줬다. F-15 계열 중에서도 구형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4세대 전투기로 세계 최강의 공군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잠재 적국들이 능력을 키워 나가는 상황에서, 미 공군도 5세대 전력을 전장에 투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요체는 스텔스, 그것도 중국과 러시아의 차세대 전력이다. 앞으로 세계 50개국 이상이 중국의 젠 같은 첨단 전투기를 도입할 거라는 게 미 공군의 진단이다.
“전장에서 4세대 전투기가 5세대 전투기를 만나면 비용 면에선 더 효율적(cost-efficient)이겠지요. 하지만, 전투에 돌입했는지조차 모른 채 이미 죽은 신세입니다.”
하스티지 사령관은 지난 7월 월시 참모총장이 한 말을 전하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비용은 절감하겠지만 죽습니다. (It will be more cost-efficient, but it will be dead.)"
미 공군이 F-35를 1,763대 구매하도록 돼 있다면서, 이는 사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 다른 5세대 공대공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데도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면 F-15는 고철 덩어리 신세란 말인가? F-15 계열 전투기들은 이미 미 공군의 감축 목록에 올라 있다. 구형 F-15 전력을 도태시켜 그 비용으로 스텔스 전투기와 장거리 타격 폭격기 LRS-B같은 미래 전력에 투자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F-15C 전투기들을 완전히 빼 버리면 전투력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는 일부 전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논란의 대상은 F-15 계열에서도 구형으로, 우리 공군의 주력인 F-15E 계열의 F-15K, 특히 차세대 전력 후보인 F-15SE와 같은 급은 아니다.
태평양 공군 수장의 생각은?
‘별들의 향연’인 4성 장군 포럼이 끝난 뒤 미 태평양 공군 사령관인 칼라일 (Herbert J. "Hawk" Carlisle) 대장과 따로 만났다. SBS 취재진과 단독 인터뷰였다. 한국 정부와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 과정과 논란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F-15와 F-35 두 기종을 놓고 물었다. (유로파이터도 후보군에 들어 있지만 미군 사령관에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둘 다 훌륭한 전투기입니다. 하나는 스텔스 성능(stealth quality)의 5세대이고, 다른 하나는 대단한 능력을 갖춘 (incredibly capable) 4세대 후기 모델이죠.”
칼리슬 대장은 자신도 F-15 조종사라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전투기 중 하나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F-15SE 정도면 “괜찮다(right one)”는 평가였다.
“한국 정부와 군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잘 살펴볼 것으로 확신합니다.”
물론 한국의 차기 전투기로 F-15 쪽이 낙점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던 때라 어느 정도 깎아들어야겠지만, 아태 지역 공군 전력 운용을 주도하는 태평양 사령관으로서 볼 때 F-15SE 정도면 한국 공군에 그럭저럭 괜찮다는 평가인 셈이다.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임무를 대북 억지에 국한한다면 F-15SE가 아니라 현 주력인 F-15K도 훌륭한 전투기이다. F-15는 육중한 몸체에도 속도가 빠르고 무기 탑재 능력이 좋다. 그러나, F-35 개발에 참여한 일본, 스텔스 능력 확보에 사활을 건 중국 등 한반도 지평 너머 아태 지역의 전략 균형을 볼 때, 많은 국민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데 최고급 승용차를 몰 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미 합중국 공군의 미래 전력은 ‘하이엔드(high-end)’ 아니 ‘톱엔드(top-end)’로 가야 한다면서도 대한민국 공군의 미래 전력은 ‘차세대’가 아닌 ‘현세대’로 족하다는 조언은 아무리 곱씹어도 씁쓸하게만 들릴 뿐이다. 워싱턴에서 미 태평양 공군의 수장을 단독 인터뷰했다는 흥분도 포토맥 강변에 몰아치는 찬바람에 금세 식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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