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신작 '소원'은 몇 해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영화는 등굣길에 50대 취객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장기 일부를 영원히 쓸 수 없게 된 아이 소원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의미도 있고, 파급력 있는 소재지만 조심스러운 접근을 요하는 영화다. '소원'은 사건이 아닌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다. 끔찍한 기억으로 고통받은 아이가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회복 과정, 그런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는 부모의 가슴 저릿한 마음을 공감 가능한 에피소드로 풀어냈다.
언론과 여론이라는 세상의 눈은 사건의 내용과 범인의 존재를 추적하는 데 몰리지만, 당장 이 가족에게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보다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아이는 오랜 결석에 대해 반친구들에게 어떻게 변명할지를 걱정하고, 부모는 인공 장기로 한평생을 살아가야 할 딸의 불행한 미래에 가슴 아파 한다. 그럼에도 살아있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강력한 희망이라고 소원이네 가족은 이야기 한다.

이 영화의 목적은 '고발'이 아닌 '치유'다. 그 때문에 범죄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는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 이후 피해자들이 어떻게 상처를 회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가에 대한 기록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또 그 과정에서 가해자 처벌에 대한 법적 잣대의 적합성, 피해자 보호를 고려하지 않은 언론의 과도한 취재 경쟁 등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한다.
영화 '왕의 남자'(2005), '라디오 스타'(2006) 등을 통해 사람이 빚어내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 바 있는 이준익 감독의 결 고운 감성은 이번 작품에도 그대로 관통한다. 어떻게 하면 아동 성폭력 범죄를 신중하되 깊이있게 다루고 또 피해자 가족의 아픔과 상처를 들춰내지 않으면서 어떤 식으로 그들의 희망을 이야기 할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는 영화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감독은 사건에 대한 자극적 묘사와 감정 과잉의 신들은 최대한 배제하면서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과 내면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부정과 모정, 우정과 같은 사람과의 진심어린 소통이라는 것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표현해냈다. 이같은 연출 방식이 새롭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감독의 따뜻한 시선은 관객을 가장 쉽고 편안하게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들고, 끝내 눈물을 쏟게 한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 가족이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가장 꿈꾸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어떤 이들에게는 전혀 특별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그 일상의 행복 말이다.
영화 '평양성'(2010)의 흥행 실패 이후 상업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던 이준익 감독은 본인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로 자신의 재기를 알렸다.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펼친 배우는 타이틀롤을 맡은 아역배우 이레다. 연기 경력이 전혀 없다시피 한 이레는 9살 아이의 순수함과 귀여움은 물론이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이겨내는 성숙한 모습까지도 놀랍도록 섬세하게 연기해냈다.
또 소원의 부모로 분한 설경구와 엄지원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부모된 입장에서 누구나 느낄만한 생생한 감정을 전달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2분, 10월 2일 개봉.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