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 빚진 잠, 주말에 갚다.
삶의 1/3은 잠을 자야 합니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회식을 했다고, 다음날 늦게 출근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 인생의 1/3, 즉 하루에 8시간을 잠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그래서 주말에 몰아자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 모자란 잠의 양을 수면학자들은 sleep debt, 빚진 수면이라고 합니다. 자야 하는 시간에 활동하는 것은 잠에게 빚을 지는 것인데, 그 만큼 건강을 해롭습니다. 부족한 잠이 심혈관 질환 위험성을 높이고, 우울증이 약물 중독 같은 정서장애는 물론, 당뇨병, 골다공증 같은 내분비계 질환의 위험성까지 높이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평일에 부족했던 수면 시간을 주말에 보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말에 잠 몰아자기, 수면 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빚을 갚는 것입니다.
주말에 잠 몰아자기…약이다.
순천향대 병원은 우리나라 19세 이상 성인 2천 7백여 명을 대상으로 수면과 고혈압의 상관관계를 살펴봤습니다. 평소 수면이 6시간 이하인 사람은 수면 시간이 7-8시간인 사람보다 고혈압 위험성은 73%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잠을 잘 못 자면 심혈관계 위험도가 높다는 게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임상시험에서 평소에 잠을 6시간 정도 자는 사람일지라도 주말에 한 시간 정도 잠을 더 자면 고혈압 위험도가 39%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잠을 충분히 자는 것보다야 못하지만 주말에 잠을 더 자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겁니다. 미국 UCLA 대학은 주말에 잠을 몰아 자는 게 당뇨병 환자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에 평소보다 4시간 많게 10시간 잔 사람은 평소처럼 6시간만 잔 사람보다 혈중 인슐린 농도가 높았습니다. 인슐린이 잘 분비되면 당이 잘 분해되어서 당뇨병이 낫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고혈압도 좋아지고, 당뇨병도 좋아진다면 주말에 잠 몰아자는 것 꼭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에서 잘 따져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말에 보충한 잠…독이다.
주말에 잠을 몰아 자고 나면 쌓였던 피로가 더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땐 반대로 몸 상태가 더 가라 앉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면 학자들은 주관적인 느낌대신 주말 몰아 자는 잠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를 고민 했습니다. 그게 혈액의 코르티졸이라는 호르몬과
염증 수치입니다. 코르티졸은 대표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분비가 늘어 납니다. 염증 수치 역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올라갑니다. 때문에 잠을 잘 자서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면 코르티졸의 분비는 줄어들고, 염증 수치는 낮아질 겁니다. 평소 6시간 자는 사람에게 주말에 8시간 자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코르티졸과 염증 수치가 모두 감소했습니다. 많은 연구팀의 실험에서 이 같은 결과가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주말에 8시간 자는 건 평소 부족한 잠을 보충한 것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원래 자야 하는 시간만큼만 잔 것이니까요. 평소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고 하려면 10시간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은 주말에 10시간을 자게 해 봤습니다. 역시 스트레스 호르몬과 염증 수치가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10시간을 자는 게 득이라고 말하려면 6시간 잔 것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8시간 잔 것을 비교 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말에 10시간을 몰아 자게 했더니 인슐린 분비가 많아져서 당뇨병을 낫게 했다는 미국 UCLA 대학은 주말에 8시간 잔 것과 비교한 게 아니라 6시간 잔 것과 비교한 겁니다. 고혈압 위험도를 낮춰 준 우리나라 연구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6시간 이내로 자는 사람이 주말에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잤을 경우에 고혈압 위험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니까, 주말에 잠을 7시간 정도 자는 걸 시험한 것이지 10시간 몰아 잔 걸 평가한 건 아닙니다. 여기까지를 일단 정리해보겠습니다. 주말에 잠을 10시간 몰아 자면 염증수치는 가라 앉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는 줄고, 인슐린 분비 늘어납니다. 하지만 이건 6시간 잔 것과 비교한 것이고 8시간 잔 것이랑 비교한 것은 아닙니다.
8시간 이냐? 10시간 이냐?
스트레스 지수나 염증 수치로만 따져봤을 때는 주말에 10시간 정도 몰아 자는 것이 8시간만 자는 것에 비해 나쁘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면의 주기를 살펴본 연구에서는 차이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먼저 미국의 러시 대학의 연구입니다. 주말에 적정 수면 보다 한 두 시간 더 자는 습관이 생체주기를 평일에도 한 두 시간 늦춘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생체 주기는 뇌의 송과선체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관여하는데, 주말 이틀 동안에 늦게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멜라토닌의 분비 주기가 변화되어 평일에도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주말에 오전 9시에 일어난 후 평일에 오전 7시에 일어나면, 우리 몸은 그 시간을 두 시간 빠른 오전 5시 정도로 느낀다는 겁니다. 그 만큼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일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은 주말에 평소보다 다른 수면 패턴을 갖게 되면 우울증이나 약물 중독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멜라토닌은 기분에 관여하는 세로토닌 분비에 영향을 주는데, 수면 주기가 불규칙 해지면 멜라토닌 분비도 불규칙해지고 이어서 세로토닌 분비도 교란되니까 우울증이나 약물 중독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또 뇌의 활동력을 측정한 여러 실험 에서도 주말에 10시간 자는 것은 8시간 자는 것과 비교했을 때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연구결과는 주말에 빚진 잠을 갚는 것보다는 빚지지 않고, 또 남아서 갚을 정도도 아닌 딱 8시간을 자는 게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취재파일] 평일에 빚진 잠, 주말에 갚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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