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황우여,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3자 회담이 입장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1시간 30분 정도에 걸친 협상이 끝난 뒤 회담장을 나선 표정은 사뭇 달랐다. 사랑재를 나서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웃으며 얘기를 나눴지만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걸었다.
◈ "국정원 선거 개입 사과하라" VS "전 정권 일"
김한길 대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박 대통령이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사과요구는 무리라며 거부했다. 다만 재판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묻겠다고만 말했다.
국정원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박 대통령이 계속 사과를 거부하자, 김 대표는 며칠 전 자신의 선친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해당 판사가 37년 전 사건인데도 사과했다며, 지난 정권의 일이라도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국정원 개혁 문제를 놓고도 김 대표는 국정원의 국내 정치파트를 해체하고 국회의 철저한 통제를 받게 하는 등 국정원을 개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그렇다면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왜 국정원 개혁하지 않았느냐며 국정원의 국내 대공 분야 존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 "검찰총장 몰아내기" VS "진실 밝히는 차원"
3자 회담을 앞두고 터진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문제를 놓고도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먼저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를 청와대가 배후조종했다거나 압박했다는 추측을
강하게 부인했다.
박 대통령은 채 총장은 의혹이 있으면 사표 대신 의혹 해소에 협력했어야 한다면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사표는 수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채 총장 감찰을 지시한 데 대해서는
"장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잘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한길 대표는 핵심은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몰아내기라면서 혼외아들 의혹이 지금 소문 수준인데, 그런 소문이 있을 때마다 모든 공직자들을 물러나게 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채 총장 감찰 지시를 내린 법무부 장관과 관련 의혹이 제기된 민정수석을 문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날선 신경전… 다람쥐 쳇바퀴 설전
사실 3자 회담은 시작 전부터 신경전이었다. 이른바 '드레스 코드' 논란이었다. 노숙투쟁 중인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회담장에는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민주당은 야당 대표의 옷차람을 지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쏘아붙였고 청와대는 청와대 내부 방침일 뿐이라며 해명했다.
회담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도 야당생활을 오래했지만 야당이나 여당 모두 정치적 목적은 같다며 여야 모두 민생을 최우선으로 해야한다는 말로 야당의 국회 복귀를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후퇴에 대해서 대통령께서는 후보 당시에 공약하신대로 돌아가야한다며 박 대통령이야 말로 민생 공약부터 지키라고 맞받았다.
이후 이어진 현안을 놓고도 상황은 비슷했다. 민주당은 회담 결과를 보고하는 의원총회에서 "국정원 개혁과 관련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대해서 묻고 또 묻고 검찰총장 사찰, 초유의 감찰에 대해서도 묻고 물었지만 쳇바퀴 도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 합의할 성질 아니다?
3자회담이 끝난 뒤 언론들은 민주당의 의원총회 발언을 토대로 '합의문 없다', '합의 실패' 같은 속보를 내보냈다. 김한길 대표는 의총에서 "많은 얘기 오갔는데 주제마다 7가지 요구에 평행성 긋는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대통령과의 담판 통해 민생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는 게 제 결론"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총 말미에는 "아쉽게도 민주주의의 밤은 더 길어질 것 같다"며 "저는 어쨌든 옷 갈아입고 천막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해 정국 경색이 장기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공개 발언이 모두 끝난 저녁 7시쯤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여상규 대표 비서실장은 "민주당에서 김한길 대표의 얘기들을 중심으로 브리핑을 하신 것으로 들었다"며 "그렇지만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세 사람이 한 얘기들을 말씀드리는 것이 정확한 판단인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보도를 의식한 듯 "합의가 되었느냐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것은 합의할 성질은 아니고 각자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교환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합의서는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3자 회담을 보는 여야의 시각차를 극명하게 드러낸 발언이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애초부터 모든 현안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 회담을 했을 뿐 합의를 도출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럴 거였으면 '좋은 결과'는 왜 기대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으니 알아서 이해해달라는 뜻이었다면 너무 상황을 안이하게 본 것이다.
◈ 회담 왜 했나
여권 일각에서는 야당 지도부가 대통령을 상대로 할 말을 다 하도록 해 면을 살려준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그런 한풀이 만으로 풀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야당의 요구사항이 모두 타당한지는 논외다.
하지만 어떻게든 정국 경색을 풀어보겠다고 회담을 추진했던 여당이 애초에 '합의할 성질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또 국정을 책임진 청와대와 여당으로서 무책임한 발언은 아니었는지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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