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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철도 예산을 깎겠다고?"…국회-감사원 갈등

[취재파일] "철도 예산을 깎겠다고?"…국회-감사원 갈등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가장 신경 쓰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철도 사업입니다. 대게 지역 숙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지역민들의 오랜 민원이 반영된 것인데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9일, 국회 국토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기재부, 국토부 차관이 비공개 긴급 당정협의를 가졌습니다. 전국 주요 철도 사업 6개의 내년도 공사비가 홀라당 삭감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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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날아간 철도 사업 들여다보니

가장 규모가 작은 사업이 동두천과 연천을 잇는 전철 사업이었습니다. 내년에 책정된 공사비 50억 원이 날아갔습니다. 설계를 다 끝냈는데, 삽도 못 뜨게 된 겁니다. 포항-삼척 구간에서도 147억 원이 삭감됐고, 보성-임성리 구간 노선이 150억 원, 도담-영천 사이 철도 구간도 100억 원이 없어졌습니다. 이보다 더 삭감된 곳도 있습니다. 서해선 복선 전철 구간은 내년 공사비 200억 원이 전부 없어졌고, 이천-문경 구간은 261억 원이 삭감됐습니다. 6개 구간을 모두 합치면 908억 원이나 되는 예산이 배정되지 않은 겁니다.

직접 동두천-연천 구간에 가봤습니다. 동두천 주민들은 연천 방향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려면 전철에서 내려서 한 시간에 한 번밖에 없는 디젤 기관차로 갈아타야 합니다.(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게, 신기합니다.) 복선 선로는 동두천역을 끝으로 끊겨 있습니다. 그 위로는 단선으로 가는데, 전철용으로 선로를 새로 깔고 시설도 새로 정비해야 한답니다. 그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디젤 기관차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도 예산이 없어졌으니 공사는 시작조차 못 합니다.

철도 사업이 중단된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불을 뿜게 됩니다. 사업 예산까지 배정돼서 지역민들이 다 알고 있는 사업인데, 공사도 못 하게 되면 국회의원 체면이 이만저만 상하는게 아닙니다. 지역민들은 뽑아줬더니, 아무것도 안됐다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9일 날 열린 당정협의는 이렇게 화난 새누리당 의원들의 성토장이었습니다. 예산까지 배정된 사업을 무슨 근거로 없앴느냐는 추궁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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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삭감이유는 '감사원'

국회를 통과한 사업의 예산을 깎으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기재부가 얘기한 거는 감사원의 철도건설사업 구조조정 감사 결과였습니다. 해당 사업들의 예산이 부풀려져 있으니 깎아도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가재정법 50조 2항에 근거법령도 있습니다. 감사원이 요청하는 사업은 타당성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국회 심의를 다 거친 사업을 뒤늦게 나타난 감사원이 딴죽을 걸고, 그걸 핑계로 기재부는 예산까지 날려버리니 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정협의에서 꺼내 든 카드가 국가재정법 개정안입니다. 감사원이 요구하면 재조사하는 규정을 없애버리겠다는 겁니다. 아울러 국회를 통과한 사업은 사업 규모를 축소할 때 국회 동의를 얻도록 명문화하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감사원이 국가 기간 사업 건설 같은 대규모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예산 낭비는 없는지, 설계 자체가 뻥튀기된 건 아닌지, 선심성 사업은 아니었는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해야 국민의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내년 예산안 편성은 10조 원 안팎의 세입 결손이 우려됩니다. 공약 이행과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워낙 많은 재정이 투입되고 들어오는 건 적다 보니 쪼들리는 나라 살림은 불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마른걸레를 쥐어짜가며 허튼 돈 쓰는 걸 줄여야 하는데, 지역 철도 건설은 문제 삼기 좋은 소재입니다. 왜, 지금 당장 이 예산이 들어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변하기에는 꼭 필요해 보이지 않는 사업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락가락했던 4대강 감사 이후 국회도 감사원을 공격하기가 딱 좋아졌습니다. 감사원이 동네북이 되다 보니 4대강 감사와 마찬가지로 이번 철도 사업 감사 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는 정서적인 불신감이 국회에 깔려 있는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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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통과한 국책 사업은 무조건 예산 줘야하나

감사원의 결과는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국회를 통과한 사업은 무조건 계획한대로 예산을 다 줘야한다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예산안 편성 때면 항상 벌어지는 쪽지 예산, 지역 선심성 예산 편성을 너무 자주 봐왔기 때문입니다. 논먼 돈으로 지역에 나가는 돈이어서 상대적으로 담합이나 부정부패 우려도 큰 것도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가장 감사원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한 곳이 지역 개발 사업일 수 있습니다.

국가재정법 개정안까지 발의되면 내년도 예산을 심사하는 과정은 더욱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감사원의 정당한 권한을 국회가 뺏는 것은 입법권 남용이라는 지적부터, 복지 예산 확충을 위해서는 덜 중요한 지역 건설 사업은 자제해야 한다는 다양한 의견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민들도 국회의 기능을 견제하는 기관을 국회 스스로 입법권을 남용해서 견제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우려가 충분합니다. 이런 논란 속에서 감사원의 위상과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해답을 찾는 생산적인 논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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