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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이석기, 귄터 기욤인가 오펜하이머인가

[논설위원칼럼] 이석기, 귄터 기욤인가 오펜하이머인가
귄터 기욤, 1974년 4월 당시 서독 정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브란트 총리의 당무 비서이자 총리의 휴가에 동행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귄터 기욤 부부가 동독이 파견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로 따지면 청와대 최측근 비서진에 북한의 간첩이 있었다는 얘기와 비슷합니다.

기욤은 체포된 뒤 "나는 동독의 장교이며, 국가안보부 요원이다. 장교로서 명예를 존중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수사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했고, 13년 형을 받은 뒤 동서독 첩보원 교환에 따라 동독으로 보내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동방정책을 주도해 독일 통일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은 브란트 총리가 사임했습니다.

오펜하이머, 2차 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설계, 제작한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소장을 지내면서 최초의 원폭을 제조한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였던 물리학자입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반 미국을 뒤흔들었던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모든 공직에서 쫓겨납니다. '원자탄의 아버지'라는 칭호 까지 붙은 한 과학자에게 닥친 비극이었습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국정원에 구속된 지 1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국정원과 검찰의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정도의 변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의원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이후 국정원이 내란음모죄를 넘어 여적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이 정도가 현재 까지 나오는 수사 얘기들입니다. 그밖에는 RO(혁명 조직) 모임 참석자들에 대한 수사가 병행되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정치권에서 관련 움직임이 더 부산합니다.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 당일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의원들을 밝혀내야 한다거나, 이석기 의원을 제명 처리해야 한다거나, 또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켜야 한다거나, 또는 아예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거나 내란음모죄를 범하면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법안 까지 검토되고 있습니다. 여야 모두 아직도 이석기 의원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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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쯤해서 따져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이석기 의원은 과연 기욤인가요? 아니면 오펜하이머인가요? 본인은 일련의 일들이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정원이 댓글 사건으로 궁지에 몰리니까 당의 정상적인 회합을 내란음모로 몰았다는 것입니다. 반면, 국정원은 수 년 간 수사를 해 왔으며, 그 결과 이 의원이 북한과 연계된 것은 분명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녹취록 등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의원 자신은 매카시즘에 희생된 오펜하이머라고 보는 것이고, 국정원은 근거 없는 마녀 사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체제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귄터 기욤 같은 존재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사안에 관한 한 통합진보당을 제외하고는 이 의원을 동정하는 이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민주당이나 심지어 한때 같은 당을 꾸렸던 정의당 조차도 이 의원 등의 행동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9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국민 71.8%가 이 의원을 구속한 것을 '잘 한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잘못한 일' 이라는 응답은 13.6%에 그쳤습니다. 통합진보당을 해산해야 한다는 의견도 61.7%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 27.0%에 비해 높았습니다.

여론은 전반적으로 이 의원 쪽에 비판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거 군사정권이 특하면 써 먹었던 '공안 정국'이라는 주장입니다. 정권이 불리하다 싶으면 이를 덮기 위해 공안 정국을 조성하곤 했는 데, 이번 사안도 혹시 국정원이 댓글 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자 이를 덮기 위해서 터트린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의혹을 해소하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진실을 진실 그대로 밝히는 것입니다. 국정원의 댓글 사건은 댓글 사건 대로 처리하고, 이 의원 등의 사건은 또 그 사건 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혹 누구라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득실을 따지려 한다면 큰 착각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순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링컨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번 사건,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논란이 제기될 것입니다. 그럴 수록 철저히 진실에 입각해 일을 풀어나가는 게 순리입니다. 자칫 정치적 득실 또는 나의 처지에 따라 진실을 덮으려 하다가는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이 의원이 과연 기욤이 될 것인지, 아니면 오펜하이머가 될 것인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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