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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일의 NBA액션] 역사를 살찌우는 또 다른 원동력, 그 이름은 영구결번

[조현일의 NBA액션] 역사를 살찌우는 또 다른 원동력, 그 이름은 영구결번
선수들에게 등번호는 또 다른 분신과도 같다. 드와이트 하워드나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자신의 등번호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35살 때 사망한 코치를 기리기 위해 35번을 선택한 케빈 듀란트나 형의 반이라도 따라가겠다는 일념으로 23번을 집어든 조던처럼 저마다의 사연으로 백넘버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마치 박제라도 하듯, 역사 그대로를 보존하는 특출한 능력과 더불어 선수들의 등번호마저 마케팅 상품으로 삼는 NBA 구단들은 프랜차이즈에 청춘을 바친 선수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이들은 ‘영구결번’ 제도를 통해 훗날 구단의 가치를 높일 선수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동시에 프랜차이즈 역사를 살찌워가고 있다.

특별한 영구결번

조던을 나타내는 또 다른 심벌

조던은 현역 시절, 시카고 불스와 워싱턴 위저즈 두 팀에서 활약했다. 위저즈에서 뛴 기간은 고작 2년. 위저즈로부터는 영구결번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가 아닌 두 NBA 구장에 자신의 유니폼을 내걸었다. 시카고 불스는 1차 은퇴를 선언했던 지난 1993년, 조던의 23번 유니폼을 결번 조치했다. 시카고 홈구장에 모인 수많은 팬들이 30살이란 젊은 나이에 코트를 떠나는 조던의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구단은 마이애미 히트다. 조던은 히트와 아무런 인연이 없지만(오히려 악연으로 가득하지만) 팻 라일리 마이애미 사장은 조던의 업적을 기려 그의 23번 유니폼을 영구결번시켰다. 이러한 조치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르브론 제임스의 생각은 달랐다. 르브론은 지난 2009년, “리그 사무국은 조던의 23번을 쓸 수 없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며 조던에 대한 존경심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르브론의 ‘조던 찬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던은 고등학교 때부터 23번을 달고 활약했다. 조던이 없었다면 지금의 르브론, 코비 브라이언트, 드웨인 웨이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덧붙였다. 피닉스 선즈에서 슈팅가드로 활약했던 또 다른 23번 유저, 제이슨 리차드슨 역시 “그 대상이 조던이라면 기꺼이 내 번호를 바꿀 수 있다. NBA 사무국은 더 이상 23번을 달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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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장미’도 멤피스 대학 시절엔 23번을 달고 뛰었다

2008-09시즌, 리그에는 13명의 23번 착용자들이 있었다. 당시 신인이었던 바이런 멀린스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멀린스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더구나 나는 루키 아닌가”라며 설령 사무국이 23번을 달지 못하게 조치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밝혔다. 등번호 교체를 원하는 선수들은 매년 3월 첫째 주 목요일까지 리그 사무국 측에 의사를 밝히면 된다. 하지만 르브론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23번을 달고 뛰었다.

조던의 23번을 예우한 마이애미는 또 하나의 특별한 사연을 추가한다. 37년 간 NBA에서 트레이너로 활약한 론 컬프가 사연의 주인공으로 마이애미 창단 멤버(1988년)이기도 한 컬프는 지난 2008년 코트를 떠나기 전까지 NBA에서만 무려 3,001경기를 나섰다.


구단은 확실하고도 화끈하게 컬프를 대우했다. 히트 트레이닝 룸을 ‘컬프 룸’으로 명명한 것도 모자라 2006 챔피언 깃발 옆에 컬프의 이름이 새겨진 배너를 매달아 그의 업적을 칭송했다. 단 한 번의 결장 없이 히트의 역사를 함께 한 산증인이자 올해의 트레이너 상만 세 차례 받은 그를 위한 히트의 뜨거운 배려였다. 세계 최고의 의료진을 구축한 피닉스 선즈 역시 조 프로스키 트레이너의 이름을 역사에 새겼다.


덕 모 감독처럼 승리한 경기 수를 영구결번한 구단도 존재한다. 덕 모 감독은 덴버 너게츠에서만 432승을 거뒀는데 현재 덴버의 홈구장, 펩시 센터에는 432승이 적힌 유니폼이 펄럭이고 있다. 이에 메타 월드 피스는 “덴버와 계약하게 되면 저 번호를 꼭 달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헛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월드 피스는 올 여름, 레이커스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이후 뉴욕 닉스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천태만상 영구결번 행사

영구결번 행사는 보통 정규시즌 경기 하프타임에 열린다. 가끔 소요 시간이 너무 길어질 때도 있는데 2009년, 마이애미 히트의 알론조 모닝 영구결번 세레모니는 무려 43분이란 긴 시간이 쓰였다. 상대 감독이었던 스탠 밴 건디(올랜도 매직)는 이에 대해 동생 제프(ESPN 해설위원) 뺨치는 시니컬한 어조로 “그 시간이면 7명은 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유의 가래 끓는 목소리까지 더해지면서 스탠의 빈정거림은 그 밀도를 더했다.


상대팀 감독의 불만과는 관계없이 모닝은 영구결번 행사 도중 복받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마도 영구결번 세레머니 상 가장 사이즈가 클) 자신의 33번 유니폼이 AAA 천장으로 향하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현역 시절 ‘전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모닝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감수성 풍부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대학 선배인 패트릭 유잉, 은사 존 탐슨 등이 참가한 이 세레머니는 2000년대 들어 가장 긴 영구결번식으로 남아 있다.


영상 -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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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여러분, 품격을 보여주세요. 이건 미친 짓이라고요!

골든스테이트 팬들은 영구결번 주인공을 적잖이 당황시켜 화제를 낳았다. 1990년대 워리어스의 공격농구를 이끈 크리스 멀린이 희생양(?)이었다. 멀린은 이 경사스러운 날, 엄청난 야유를 경험해야 했다. 물론, 본인 때문은 아니었다. 야유의 대상은 조 레이콥 워리어스 구단주였는데 프랜차이즈 스타, 몬테 엘리스를 밀워키 벅스로 보낸 것에 대해 팬들은 엄청난 불만을 갖고 있었다.

공식석상에서, 그것도 2만 여명이 운집한 장소에서 구단주가 마이크를 잡을 일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애꿎은 멀린의 영구결번 세레머니가 타겟이 되고 만 것. 구단주를 향한 팬들의 야유가 길어지자 멀린은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코트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 마이크를 건네받아야 했다. 훈훈한 장면을 연출해야 할 축제의 장이 성토의 장으로 변질되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한 선수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것(트레이드)에 대해 이야기할 장소는 아니에요”라는 레이컵 구단주의 말은 워리어스 관중들에게 아무런 미동도 안겨주지 못했다. 그러자 워리어스가 낳은 최고의 스타, 릭 베리까지 나섰다. 베리는 “팬 여러분의 품격을 보여 달라”고 직설적으로 훈계(?)했지만 야유 데시벨만 더 높아질 뿐, 별무소용이었다. 영광으로 가득 차야 할 영구결번 행사 역사상, 가장 난처함을 겪은 인물은 아마도 멀린이 아니었을까.

영상 -  야유의 절정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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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말아요 킹콩! 그래도 6번을 단 마지막 매직 선수잖아요

새크라멘토는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주는 홈팬들을 위해 6번을 영구결번 조치했다. ‘팬들이야말로 팀 내 최고의 식스(Sixth)맨’이라는 의미였다. 급기야 홈구장 야외에 숫자 6을 형상화한 동상도 건립했다. 이보다 멋지고 세련된 팬 서비스가 또 있을까. 킹스 팬들은 복 받은 ‘식스맨’들이다.

올랜도 매직 역시 일찌감치 6번을 영구결번했다. 딱 한 해, 6번을 임시로 허락(?)한 적이 있는데 바로 패트릭 유잉이 입단했을 때였다. 올랜도 구단은 닉스에서 버림받은 후 시애틀을 거쳐 디즈니랜드의 도시로 입성한 레전드를 결코 홀대하지 않았다. 6번을 선택하고 싶다는 유잉의 뜻을 수락한 것. 뉴욕 닉스 시절의 33번 대신 3+3=6번을 달고 NBA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유잉은 올랜도의 ‘마지막 6번 플레이어’로 남아 있다.

NBA에서 영구결번 된 선수 가운데 키가 가장 큰 선수는 마크 이튼이다. 무려 224cm의 신장을 자랑하는 그는 1980년대 유타 골밑을 지키는 버팀목이었다. 칼 말론, 존 스탁턴과 함께 유타를 강호로 이끈 그는 NBA 역대 영구결번자 가운데 천장에 걸린 자신의 유니폼과 가장 가까이 호흡하고 있는 선수이자 잭 램지(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7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번호(#53)의 주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성(Eaton)처럼 골밑으로 돌진하는 공격수들을 차례로 씹어 먹었던 이튼은 통산 3,064블록슛으로 역대 5위에 올라 있다.

NBA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빅맨으로 꼽히는 윌트 채임벌린은 ‘Mr.20000’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레전드다. 본인 입으로 나온 말이긴 하지만 살아있을 적, 2만 여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것에서 기인한 허세 가득한 별칭으로(아무리 계산해 봐도 불가능한 수치다) 한 경기 100점, 55리바운드, 한 시즌 평균 50.4득점 등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남긴 신화 같은 존재가 바로 채임벌린이다.

그런데 채임벌린의 숫자에 대한 소유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무려 세 구단으로부터 영구결번을 받았는데 이는 아직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이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LA 레이커스, 필라델피아 76ers에서 모두 영구결번의 영예를 누린 채임벌린은 비록 프로 리그는 아니지만 할렘 그로브트로터스에서도 등번호 13번을 역사에 아로새겼다.

채임벌린 이후 세 팀 영구결번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최근 선수는 찰스 바클리가 아닐까 싶다. 필라델피아, 피닉스 선즈에서 34번을 결번 시킨 그는 1996-97시즌을 앞두고 휴스턴 로케츠로 이적해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하지만 이적 첫 해,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유타에 덜미를 잡히며 파이널 진출이 좌절되었고 그 이후엔 한 번도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1999-00시즌 초반, 친정인 필라델피아와의 경기 도중 경력이 끝나는 커리어 엔딩 부상을 입으며 아쉽게 NBA 생활을 끝맺음하고 말았다. 피닉스에서 단 4시즌 간 활약하며 결번을 받았던 그였기에 휴스턴에서의 마무리는 더욱 큰 아쉬움을 남겼다. 


대조되는 두 팀의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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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은퇴 후 17년 만에 영구결번의 영예를 누린 저말 윌크스

채임벌린이 몸담았던 레이커스는 영구결번에 인색한 구단이다. 16번의 우승을 차지한 명문이자 수많은 슈퍼스타를 배출한 최고의 팀이지만 영구결번의 영광을 누린 선수는 고작 1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지난 시즌 샤킬 오닐(34번), 저말 윌크스(52번) 두 명이 추가된 수치다.

어느 누구 하나 시원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레이커스의 기준은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라는 것이 중론이다. 은퇴한 지 6년이 지나지 않은 샤킬 오닐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은퇴한지 한참 지난 윌크스마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자마자 레이커스로부터 결번이 확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매직 존슨이 오기 전까지 레이커스의 주전 1번으로 활약한 놈 닉슨, 80년대 레이커스에서 온갖 잡일을 거둬들였던 마이클 쿠퍼, 쇼타임 레이커스의 속공 선봉 바이런 스캇 등은 여전히 입맛만 다시고 있다. 팀에 두 번의 우승을 안긴 주역이자 수차례 트레이드 소문에 연루됐던 파우 가솔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Honored Number’로 어느 정도 구색은 맞추고 있다. 조지 마이칸(99번)을 비롯해 짐 폴라드(17번), 번 미켈슨(19번), 슬레이터 마틴(22번), 클라이드 로벨렛(34번) 등이 ‘Honored number’의 주인공들. 하지만 동시대에 뛰면서 소속 구단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여러 동료들에 비해선 다소 쓸쓸한 감이 없지 않다.

이에 반해, 라이벌 보스턴 셀틱스는 마음씀씀이가 상당히 후한 구단이다. 영구결번자가 무려 20명에 달하니 말이다. 폴 피어스, 케빈 가넷까지 합치면 그 수는 금세 22명으로 불어난다. 이는 레이커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 NBA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피어스의 34번이 TD 가든의 천장으로 올라갈 경우, 31번부터 34번까지 네 개 번호가 나란히 걸리게 된다. 20번을 제외한 14번부터 24번까지 모조리 결번 처리한 셀틱스는 30개 팀 가운데 선수들과의 인연을 가장 넉넉하게 챙기고 있는 구단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2012-13시즌을 앞두고 마이애미로 이적한 레이 알렌이 14번부터 24번 사이에 딱 하나 남아 있는 20번을 달고 5시즌 간 활약했다. 하지만 라이벌인 히트로 떠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제 아무리 셀틱스라 해도 결번은 힘들다는 것이 전언이다. 대니 에인지 단장 역시 피어스와 가넷의 이름은 언급했지만 알렌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오는 10월 17일, 브루클린 네츠 구단은 “마이애미 히트와의 시범경기 도중 제이슨 키드의 5번을 영구결번한다”고 밝혔다. 감독으로 부임하기 직전, 자신의 유니폼이 결번되는 짜릿한 경험을 맛보게 될 키드는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최고의 영예입니다. 그 누구라도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을 거예요. 아마도 선수나 감독으로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요? 그 날은 제 인생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될 겁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NBA 선수들. 하지만 홈팬들 앞에서 치러지는 영구결번 행사에선 벅차오르는 감정을 쉽게 주체하지 못한다. 수 년 간 함께 했던 자신의 유니폼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바비 필스나 말릭 실리, 드라젠 페트로비치처럼 행사의 주인공과 함께 할 수 없는 비극을 접하지 않는 이상, 영구결번이 가져다주는 감동과 희열은 화려한 슬램덩크나 블록슛보다 더 짜릿할 것이다.

***NBA 구단별 영구결번 정보는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nba.com/history/team-retired-jerseys/index.html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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