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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포츠 외교전으로 뜨거웠던 '탱고의 도시'

[취재파일] 스포츠 외교전으로 뜨거웠던 '탱고의 도시'
지난 5일부터 일주일간 '탱고의 도시'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전세계 스포츠계에서 내로라하는 많은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바로 제125차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총회가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이죠.

올림픽 관계자들이 올림픽 운동과 관련된 업무를 보고하고 논의하는 IOC총회는 매년 전세계를 돌아가면서 열리지만 이번만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왜냐면 이번 총회에서는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과 신규종목 결정, 그리고 12년만에 새로운 IOC 수장을 뽑는 위원장 선거까지 한꺼번에 3가지 사안을 놓고 치열한 스포츠 외교전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여느 총회때 같으면 다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던 IOC위원들도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삼삼오오 본부 호텔 로비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등 다소 긴장된 모습이었습니다.

취재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최근들어 국제스포츠계에서 가장 중대한 사안이 결정되는 만큼 전세계에서 약 7백여 명의 기자들이 모여들어 돌아가는 판세를 읽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특히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도전장을 던진 일본은 무려 3백여명의 취재진을 파견했습니다. 한 IOC위원은 마치 일본에서 총회를 치르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곳곳에 일본기자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희 SBS 취재진도 일본기자로 오인받아 지나갈때마다 일본식 인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대규모 취재진을 파견해서일까요. 일본의 도쿄는 압도적인 표차로 이스탄불을 따돌리고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습니다.

일본은 유치전 내내 풍부한 재정과 안정된 개최 능력으로 선두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한 방사능 공포가 두드러지면서 막판 곤혹을 치렀지만 아베 신조 총리가 마지막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안전 개최를 보장해 IOC위원들의 표심을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2016년에 리우 데자네이루에서 올림픽을 치르는  브라질이 최근 재정난으로 개최준비가 큰 차질을 빚고 있는 점도 한몫을 했습니다. IOC위원들이 명분보다는 재정이 풍부하고 인프라가 모두 갖춰진 도쿄를 선택한 것이죠.

비록 개최지 2차 투표에서 도쿄에 60대 36으로 크게 졌지만 터키 이스탄불의 선전은 놀라웠습니다. 이스탄불은 이번이 5번째 유치도전인데 그동안 늘 투표에서 최하위로 가장 먼저 탈락하는 단골 꼴찌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1차투표에서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동수를 이룬 뒤 추가투표에서 마드리드를 꺾고 2차투표까지 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당시 저는 기자들이 있는 프레스센터에서 이장면을 지켜봤는데 터키 기자들이 마치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것 처럼 펄쩍 펄쩍 뛰며 좋아 하더군요. 단순히 2차 투표에 진출한 것인데... 그런데 이 일로 중국의 CC-TV와 신화사 통신은 엄청난 오보를 내고 말았습니다. 터키 기자들이 껑충 껑충 뛰면서 좋아하니까, 이스탄불이 개최지로 선정된 줄 알고 ‘이스탄불 2020 올림픽 개최’라는 자막과 속보를 내보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레슬링
두 번째 이슈인 레슬링의 2020년 하계올림픽 정식종목 채택도 한편의 코미디 같았습니다. 레슬링은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치러진 올림픽의 상징 같은 종목이죠. 그런데 지난 2월 IOC 집행위원회에서 25개 핵심종목에서 탈락해 올림픽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당시 IOC의 의도는 대중적인 인기도 없고 종목이 너무 많아 TV 중계도 어려운 근대 5종을 탈락시키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레슬링이 퇴출 종목으로 선택된 것이죠.

깜짝 놀란 레슬링은 가장 먼저 국제연맹 회장을 바꿨습니다. 또 세트제를 폐지해 경기의 긴장감을 높이고 여자종목 확대, 여자부회장직 신설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실시해 IOC위원들의 마음을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떻게 올림픽의 상징인 종목을 뺄 수 있느냐는 의견도 지배적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럴 거면 왜 핵심 종목을 선정하고, 종목 선정 투표를 했느냐”는 비난도 높았습니다. 레슬링과 경쟁을 펼쳤던 야구와 스쿼시는 괜히 헛심만 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핵심 종목 선정으로 IOC내 종목간 경쟁을 유지하고자 했던 자크 로게 IOC위원장도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습니다. 외신들의 레슬링이 핵심종목에서 제외됐다 다시 살아난 일이 자크 로게 위원장의 재임기간 오점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토마스 바흐_500
이번 부에노스 아이레스 총회는 하이라이트는 바로 12년만에 실시되는 IOC위원장 선거였습니다. 이번에는 역대 최다인 무려 6명의 후보가 경쟁을 펼쳤습니다. 물론 지난 1991년 IOC위원으로 선출돼 집행위원과 부위원장을 거친 독일의 토마스 바흐 부위원장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아무래도 후보수가 많으니 변수도 많을 것이란 전망도 뒤따랐습니다.

기자는 지난 2001년 자크 로게 위원장과 우리나라의 김운용 IOC 부위원장이 IOC위원장 자리를 놓고 팽팽히 맞섰던 모스크바 IOC총회를 취재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IOC위원이 “개최지 투표는 3차 4차까지 가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위원장 선거는 다르다. 위원장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인데 투표가 만약 3,4차까지 간다면 위원장의 영향력이 그 만큼 약하다는 의미이다. 이럴 경우 되더라도 IOC내 단합을 유지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한 걸 기억합니다. 

때문에 "퇴임하는  IOC위원장이 자기의 뒤를 이을 차기 위원장 후보중 한사람을 골라서 밀어준다것이 관례이다" 이런 말이 나돌았습니다. 지난 2001년 총회때도 로게 위원장은 1차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아 우리 김운용 후보를 제치고 수장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도 투표가 2차까지는 갔지만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예상대로 일찌감치 위원장이 결정된 거죠. 토마스 바흐가 2차투표에서 49표를 받아 29표를 받은 푸에르토리코의 리처드 캐리언 IOC재정위원장을 제치고 제 9대 IOC 위원장에 뽑혔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바흐 위원장은 법률가이며 IOC내에서 가장 수완도 좋고 마케팅 감각을 가진 위원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그는 독일 기업 아디다스, 메르세데스 벤츠, BMW, 그리고 루프트한자 등을 각종 스포츠 이벤트에 스폰서로 끌어들여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해왔습니다. 일찌감치 가장 강력한 차기 IOC위원장 후보로 꼽혔고 4년전 자크 로게 위원장이 중임을 원할 때 자기가 후보로 나서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차기 IOC위원장 자리를 약속을 받았다는 소문까지 있었을 정도입니다. 

바흐 위원장은 원래 친한파였지만 지난 2011년에는 2018 뮌헨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평창과 팽팽히 맞섰습니다. 평창의 압도적인 승리로 뮌헨은 탈락했고 당시 서운한 감정이 우리나라와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바흐 위원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워낙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해 뒷끝이 없다” 그리고 “추진력과 결단력이 뛰어난 만큼 평창의 올림픽 개최준비에도 오히려 더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SBS 취재진도 현장에서 바흐 위원장을 직접 만났는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흐 위원장은 “이번 총회에서 평창의 올림픽 개최 준비 보고가 있었는데 내용이 훌륭했으며 성공적인 올림픽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평창이 성공적이 올림픽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민들이 동계 스포츠에 보다 더 많이 참여하고 선수와 조직위원회에 큰 지지를 보내야 된다”고 조언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도 보여줬습니다.

한 외신기자는 이번 총회를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레슬링 경기를 관전한다’는 한문장으로 정리해 주위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마치 탱고처럼 강렬한 눈빛과 격정적인 몸짓속에 국제 스포츠계를 달구었던 스포츠 외교전은 막을 내렸습니다. 다음 IOC총회는 내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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