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러니까 8월 30일, 임씨의 누나는 갑자기 경찰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경찰서로 와서 확인하세요."
8년 전 가정불화로 집을 나간 아버지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은 겁니다. 슬프고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그동안 연락도 없었던 아버지의 시신만이라도 수습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시신이 변사체로 발견된 건 지난 7월 21일이었습니다. 서울 용마산 꼭대기에서 등산객이 목을 맨 변사체를 발견했습니다. 발견당시에도 시신의 부패는 심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무더운 여름 날씨에 한 달이나 넘게 보관돼 있다 보니 시신은 차마 눈으로 보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임씨의 누나는 시신을 확인하지 못하고 임씨의 누나 남편이 변사체의 발견 당시 사진을 보고 확인을 했습니다.
"장인어른이 맞는 거 같습니다. 등산복을 자주 입고 다니셨는데, 비슷한 거 같습니다."
임씨 누나의 남편이 시신이 자신의 장인어른이라고 확인을 한 후 시신이 보관돼 있는 한 장례식장에서 경찰과 임씨의 누나, 그리고 누나의 남편이 김포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모셨습니다.
다음 날 빈소를 차리고 입관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임씨가 아버지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시신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임씨는 너무 놀랐습니다. 아버지는 윗니가 없었는데, 시신에는 윗니가 멀쩡히 있었던 겁니다.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임씨 가족은 너무 황당했습니다. 임씨가 보지 못했다면 임씨 가족은 평생 모르는 사람을 아버지인 줄 알고 모셨을 겁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멀쩡히 살아계실 수도 있는 아버지를 고인으로 만들 뻔 했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 아버지의 소식을 접했다는 안도감도 또 다시 불안감과 걱정으로 바꿨습니다. 경찰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임씨의 가족들은 경찰의 말만 믿었습니다. 국과수에서 DNA 분석 결과 일치한다는 그 말만 믿었습니다. 시신이 너무 처참해 임씨의 누나가 직접 보지 못하고 남편이 확인했지만, 8년 전에 집을 나간 장인어른의 모습을 알아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경찰이 국과수의 분석결과 DNA가 일치한다고 하니 그 말만 믿고 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임씨의 누나는 지난 2010년 실종신고를 하면서 자신의 DNA를 실종자 가족 DNA DB에 올렸습니다. 혹시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변사체 등이 발생하면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국과수에서 실종자 가족 DB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국과수에서 DNA 분석 결과 친자 관계라고 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일 수 있을까. 국과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과수는 DNA로 친자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확률게임이라는 말로 설명을 시작합니다. 국과수는 우선, 17개의 유전자형이 일치하면 "친자 관계가 배제되지 않는다" "인정된다"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경찰에 통보합니다. 단지 17개의 유전자형에 대한 검사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는 통보입니다. 17개 유전자형이 아니라 24개 유전자형, 더 많은 유전자형을 검사하면 좀 더 정확해지겠지만, 수많은 변사체와 실종자 가족 DB의 유전자 검사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유의미한 가능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17개로 우선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겁니다. 따라서 경찰에게 가족이 맞는지 확인해 보라고 통보합니다. 그리고 추가 검사를 하거나, 유가족의 확인이 정확하면 유전자 검사 감정서를 발급한다고 합니다.
흔히, 유전자 감식 결과 '일치한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용의자가 있고 범죄 현장에서 용의자의 DNA가 나온 상황이라면 1:1 관계이기 때문에 '일치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비행기 사고가 났다면 사망자 명수가 정확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가족이 정확히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사망자의 DNA와 유가족 DNA가 100% 맞습니다. 하지만, 변사체와 실종자 가족 DB는 오픈시스템입니다. 너무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17개 유전자형으로는 가지고는 불충분할 가능성이 있다고 국과수는 설명합니다. 한 변사체에게 3~4명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국과수에서는 가능성이 있다고 가족에게 통보했더니 이미 그 가족의 실종자는 집에 돌아와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추가실험도 하고 형사들에게 알아보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번 경우에는 임씨의 누나 한명이 나왔고, 경찰이 임씨 가족을 불러 확인을 했습니다. 임씨 가족은 경찰의 말만 믿었다고 하지만, 경찰도 임씨 가족의 이야기만 믿었습니다. 가족이 맞다고 하니 경찰은 시신을 인계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시신 보관비용이 하루에 7만 원에 달하는데다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시신을 인계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가족이 맞다고 확인만 하면 최대한 빨리 인계하기 위해 편의를 제공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전자 검사 감정서는 가족을 배려해 추후에 발급해 주는 것도 통상적인 관례라고 국과수에서도 설명했습니다.
임씨 가족은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경찰과 국과수를 믿었고, 경찰은 "가족이 맞다"는 임씨 가족을 믿었습니다. 국과수는 매뉴얼대로 변사체의 가족을 찾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다소 더디긴 했지만 그래도 국과수에서 특정한 가족을 찾아서 확인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원하는 대로 시신을 인계했습니다. 결과가 다소 황당했지만 경찰도 국과수도 절차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임씨 가족은 경찰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임씨 가족은 정말 큰일을 겪은 피해자인데, 경찰이 임씨 가족을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피한다는 겁니다. 임씨 가족은 경찰에게 아버지를 좀 찾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을 뿐인데 경찰은 연락을 피하고 자신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고 억울해 했습니다.
경찰은 빈소에 찾아가서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찾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물론, 경찰이 한 실종자를 찾는 일에만 몰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부족한 인력에 해결해야할 사건이 많아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상황에 한 개인의 민원에만 매여 있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임씨 가족이 원하는 건 '관심'일겁니다. 아버지를 찾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임씨 가족은 경찰에게 '성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