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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택가에 숨어든 '불법 게임장'

[취재파일] 주택가에 숨어든 '불법 게임장'
 서울 강남구의 한 주택가에 4층짜리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 1층은 식당, 지하 1층은 당구장, 4층은 가정집이 있었습니다. 취재팀은 밤늦은 시간까지 인근에서 건물을 지켜봤습니다. 

 밤늦게 까지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혼자였습니다. 당구장은 여럿이 함께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당구장을 혼자 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식당 출입구는 건물 출입구와 다르기 때문에 식당 손님도 아니었습니다. 4층 가정집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밤늦게 혼자 드나들지는 않을 거 같았습니다.  그럼 결국 2층이나 3층으로 들락거리는 사람들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층과 3층은 불빛이 조금도 새어나오지 않았습니다. 깜깜했습니다. 밖에서 보면 누가, 무엇이 있을거 같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은 밖에서 보면 불이 꺼진 것처럼 보이는 3층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3층은 밖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3층은 게임기들이 밤새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손님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3층은 두꺼운 암막커튼을 쳐놓은 '불법 게임장'이었습니다.

 경찰과 함께 단속에 들어갔습니다. 게임장 안에는 10명 정도의 손님과 업주 한 명이 있었습니다. 손님들은 일단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신원확인 이후에 진술서만 받고 현장에서 귀가시켰고, 업주는 현행범으로 입건했습니다. 그리고 게임기 24대와 현금 등을 압수했습니다. 

 이 게임장 자체가 불법입니다. 게임장을 운영하려면 관할 구청에 신고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아예 신고조차 하지 않은 불법 게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장에 있던 게임기는 '야마토'라는 일본식 파친코 게임기입니다. 이 게임기는 중독성과 사행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게임산업등급위원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는 불법 게임기로 분류돼 있습니다. 게다가 카드에 현금을 충전해 주고 게임을 하다가 손님이 게임을 그만하면 카드에 있던 금액을 돌려주면서 사행성을 더 부추기도록 게임기를 개조까지 했습니다. 게임장에서 이른바 이렇게 돈을 받고 다시 돌려주는 '환전'행위는 불법입니다.

 게임기 작동 원리를 경찰과 함께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일단, 손님은 카드에 현금을 주고 그 금액만큼 충전합니다. 그리고 게임기에 있는 단말기에 카드를 대면 기계에 충전된 금액이 입력되면서 게임기가 돌아갑니다. 게임기는 숫자 맞추기 게임기인데 알아서 돈이 다 떨어질 때 까지 계속 돌아갑니다. 그러다 숫자가 맞으면 점수가 올라갑니다. 그렇게 손님은 그냥 게임기만 쳐다보고 있고 게임기는 계속 돌아갑니다. 그러다 손님이 게임을 멈추면 남아있는 금액에서 10%를 수수료로 받고 현금으로 돌려줍니다.

 손님들과 업주는 그냥 100원 짜리 게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도박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이 게임기 사업장은 도박으로 적발한 것은 아니라 불법 게임장으로 적발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 100원이라는 게 2초면 없어지는 게임기였습니다. 60초, 1분이면 3천 원. 10분이면 3만 원, 한 시간이면 18만 원입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숫자가 맞기 때문에 점수가 좀 올라가긴 하지만 최소한 한 시간에 10~20만 원은 그냥 없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현장에 있던 손님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온다고 하는데 한번 와서 20만 원만 잃고 가도 한 달이면 80만 원씩 기계를 보고 앉아 있으면서 날리는 겁니다. 이게 중독이고 사행성인 겁니다.

 이런 불법 게임장은 지금까지는 주로 도심 외곽에 비닐하우스나 폐공장들에서 운영해 왔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을 특정장소에서 태워 불법 게임장까지 데리고 가는 밖이 보이지 않는 '깜깜히 차'라는 게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장에 중독됐다고 하는 정보원에 따르면 서울시내에도 주로 태능쪽 외곽에 이런 큰 불법 게임장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능가서 기다렸다 깜깜히 차타고 또 들어가고 하는 시간이면 그냥 일본 가서 한다는 농담도 게임장에 다니는 사람들끼리는 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형 불법 게임장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점점 점조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소규모로 조금 더 접근성이 좋은 곳에 불법 게임장을 만들어 놓고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만 하고 또 이동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도심으로 불법 게임장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의심받지 않고 조용한 주택가 까지 침입하고 있는 겁니다.

 손님들은 대부분 문자를 받고 게임장을 찾아다닙니다. 게임장을 운영하는 업주들은 손님 리스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손님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문자로 영업장을 안내해 줍니다. 손님들은 다 그 문자를 보고 주택가에 숨어 있는 게임장까지 찾아오는 겁니다.

 주택가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나니 일부 주민들이 무슨 일인지 구경나와 있었습니다. 불법 게임장이 있었고 지금 경찰이 단속을 했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당연히 모두 황당해 하고 불안해했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던 어머니는 이제 애들을 어떻게 혼자 밖에 나가게 하냐며 걱정했습니다. 1층 식당을 하는 식당 주인은 밥을 시켜서 가지고 올라가면 절대 안은 못 보게 하고 문 밖으로 나와서 밥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왜 그런지 이제야 알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건물 맞은편에 있는 건물의 직장인들은 아침마다 왜 앞 건물에서 사람들이 나오는지 이해가 된다며 아니 어떻게 이런 주택가에 불법 게임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도심 곳곳의 어느 건물에는 불법 게임장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불법 게임기는 한 대당 50만 원이면 인터넷을 비롯해 어디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게임장을 다니던 손님이 대부분 업주로 변신합니다. 계속 다니다 보니 관련 업계에 있는 사람들과 친분이 생기고 그동안 잃은 돈도 있고 하니 손님에서 업주가 되는 겁니다. 게임장을 찾는 손님은 끊임없고 게임기는 구하기 쉽고, 게임기 사업을 지원해주는 세력들은 존재하고, 불법 게임장이 없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게임장을 안다녀야지 했는데, 계속 문자가 오고 하니 그냥 또 가게 되고, 그렇게 한번 가면 또 가게 되고 그래요. 중독성이 강해요. 안 가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게임장을 다니는 한 손님의 고백입니다. '중독'도 일종의 질병입니다. 치료가 필요합니다.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보다는 손을 내밀어서 손을 잡아줘야 합니다. 이렇게 게임장에 중독돼 있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서 최대한 게임장을 찾는 수요를 줄이는 게 단속과 병행돼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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