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카네기 멜론대 연구진이 무인자동차로 개조한 GM사의 캐딜락 SRX 차량. 지난 4일 고속도로를 포함한 거리 33마일의 도로를 달리는 데 성공했다)
지난 4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이 열렸습니다. 미 하원의원과 주 교통부장관을 태운 캐딜락 SRX 차량이 펜실베니아 주 크랜베리를 출발해 33마일(약 53km) 떨어진 피츠버그 국제공항에 도착한 겁니다. 물론 하원의원과 주 장관이 흥미로운 대목은 아닙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차량이 운전자가 필요 없는 무인자동차였다는 점, 그리고 고속도로를 달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고속도로 주행에 성공한 무인자동차의 이번 주행은 미국 ABC 방송을 비롯한 현지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무인자동차 개발, 어디까지 왔을까
*美 카네기 멜론 대학 무인자동차 고속도로 주행 실험
-미 ABC 뉴스 링크
-미 피츠버그 지역 방송 WPXI 뉴스 링크
동영상을 보면 무인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길에 주차돼있던 무인자동차의 운전대가 저절로 빙그르르 돌아가더니 직진하는 다른 차를 피해 안전하게 도로에 진입합니다. 도로가 합쳐지는 구간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옆 차선의 차를 먼저 보내며 양보 운전을 합니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에는 도로 상황에 맞게 가속을 시도합니다. 계기판의 숫자는 시속 60km를 넘어 올라가고 엔진 소리도 점차 커집니다. 스스로 운행하는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다니, 이쯤 되면 저절로 움직이는 운전대와 빨라지는 차의 속도에 승객들의 등에 식은땀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행 정보가 앞좌석 뒤에 붙어있는 모니터를 통해 뒷자리에도 계속 전달되기 때문에 승객들은 차량이 이상 없이 달리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운행이 순조롭게 끝나고 자동차는 무사히 피츠버그 공항에 도착합니다. 아직 시험 주행이기 때문에 안전성 보장을 위해 엔지니어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지만 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특별히 할 일은 없어 보였습니다.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이 개발한 이 차량은 운전자나 연구소의 원격 조종 없이도 주행할 수 있는 무인자동차입니다. 위성항법장치(GPS)와 전파 탐지기, 적외선 레이더, 카메라 등을 이용해 도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주행과 정지, 가속과 감속을 판단합니다. 주변 정보를 자체적으로 모아 주행에 필요한 판단을 내리는 만큼 차에는 다양한 장비가 장착돼 있습니다. 앞 범퍼에는 적외선 센서와 카메라가 부착돼 있고 운전석 앞 유리 위쪽에도 센서가 달려 있습니다. 백미러에는 카메라 두 대가 달려있어 좌우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시할 수 있습니다. 차량 뒤 트렁크 바닥에는 모니터와 키보드를 포함해 자동운행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컴퓨터가 설치돼 있습니다. 주행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장애물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목소리로 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은 기본입니다. 주행 중인 다른 차량과 무선으로 통신할 수 있는 기능도 탑재돼 있습니다.
(연구진이 개발한 무인자동차의 트렁크 바닥 모습. 컴퓨터와 각종 전자 장치가 탑재돼있다.)
무인자동차 개발의 첫 번째 목표는 '교통사고 없는세상'
카네기 멜론대 연구진은 무인자동차 개발의 목표가 교통사고를 줄이고 운전자와 탑승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술 발전을 통해 교통사고로 발생하는 인명 피해를 줄이겠다는 의지입니다. 연구진을 이끌고 있는 라즈 라즈쿠마르 교수는 "정밀하고 정확한 정보에 입각해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 또한 목표"라고 말합니다. 운전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자동운행 장치가 대신하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무인자동차는 먼 거리를 운전해야 하는 사람에게 직장과 가정에 쏟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라즈쿠마르 교수는 기대합니다. 술을 마신 채로 운전을 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라고 라즈쿠마르 교수는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교통사고로 4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년 동안 539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무인자동차가 거리를 누비게 될 때쯤이면 '대리운전' 광고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즈쿠마르 교수는 오는 2020년이면 무인자동차 개발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무인자동차의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자리 잡고 법적 제도적 장치가 10년 안에 정립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주행 속도를 자동으로 유지하게 하는 장치나 차선을 바꿀 때 위험도를 경고하는 장치는 이미 개발된 상태라고 합니다. 다음 개발 단계는 차가 꽉 들어찬 시내에서 앞뒤 차와 접촉 없이 저속 주행을 하거나 차선이 하나 뿐인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기술의 발달은 이 과제들을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기업 간 개발 경쟁도 뜨거워…미국 피츠버그는 '거대한 시험주행장'
카네기 멜론 대학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사와 더불어 글로벌 자동차 생산업체들은 최근 너나없이 무인자동차 개발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인 다임러 벤츠가 오는 2020년까지 무인자동차를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달 27일엔 일본의 닛산도 2020년까지 판매에 들어가 10년 안에 무인자동차를 상용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도요타와 아우디도 국제 전시회에서 무인자동차 시제품을 공개했습니다. BMW와 폭스바겐 등 독일차 브랜드들은 무인자동차 연구개발비에 이미 수십조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네기 멜론대 무인자동차 연구진과 시험 주행에 참여한 하원위원 빌 셔스터의 모습)
다만 무인자동차가 다른 자동차들처럼 도로를 달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선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을 수준으로 기술이 발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도로 주행을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험 단계에서 지방 자치단체와 교통당국의 지원과 협력은 필수적입니다. 카네기 멜론 대학이 추진하고 있는 'traffic21' 프로젝트는 이런 차원에서 고안됐습니다. 'traffic21' 프로젝트는 피츠버그 지역을 하나의 '진화하는 실험실(learning lap)'로 삼아 무인자동차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무인자동차 연구진들은 물론 카네기 멜론 대학의 공공 정책 분야와 정보 시스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도시 인프라와 도로 교통 정보에서부터 인공 지능과 인간의 인지적 요소에 대한 연구까지 다양한 차원의 연구가 새로운 도시 환경을 향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traffic21'팀은 이 프로젝트가 피츠버그에서 성공할 경우 국가 단위와 세계로도 연구가 이어질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원대한 계획 안에서 무인자동차는 새 시스템을 만드는 첫 단추이자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세포가 될 예정입니다.
*美 카네기 멜론 대학 'traffic21' 홈페이지 링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지난 1482년 태엽으로 가는 자동차를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500여 년이 지난 현재 자동차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해왔고 인류는 자동차와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무인자동차 시대가 10년 안에 찾아올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회식 자리가 끝난 뒤 대리운전 번호 대신 무인자동차를 부르는 시대가 오는 걸까요. 10년 뒤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