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공세가 하늘을 찌른다. 여기저기 생겨나는 커피점은 셀 수 없다. 스타벅스와 카페베네 같은 유명 체인점이 인기몰이를 하자 너도 나도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커피전문점을 열고 있다. 이러다보니 한 집 건너 하나씩 커피전문점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실제 전국의 커피 전문점 숫자는 2007년 2305개에서 2009년 불과 2년 사이 2배 이상 늘어나며 5297개, 2년만인 2011년 역시 2배 이상 늘어나 1만개를 넘어서서 1만2381개에 달했다. 지난해는 1만5천 여 개로 5년 사이 무려 7배 가까운 증가를 보였다. 기하급수라는 표현이 딱 맞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춤한다는 소식이다. 커피전문점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징후도 여기저기 나타난다. 토종 브랜드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던 카페베네가 지난 1분기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5억원 손실로 적자를 기록했다.
커피빈코리아, 탐앤탐스 등 메이저 커피전문점들도 지난해 외형은 커졌지만 영업이익을 간신히 내면서 흑자규모는 전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스타벅스도 30% 매출 신장을 보였지만 영업이익은 6%로 흑자 성장세가 2006년 이후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동안의 가파른 성장세가 내실 면에선 한 풀 꺾인 셈이다. 이는 커피전문점의 난립에다 대형 브랜드의 골목상권 규제, 불황에 따른 저가 커피 선호 등 여러 요인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녹차 같은 전통 차 시장이 커피의 무차별적 공세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최근 들어 커피의 대항마로까지 성장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신개념 '티하우스'를 아시나요?
이를 보여주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티 하우스’의 등장이다. 얼마 전 지인이랑 약속을 하게 됐는데 한 녹차 브랜드의 티 하우스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찻집, 옛날로 치면 다방이라는 곳인데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커피전문점처럼 시끌벅적하거나 요란한 음악으로 정신없는 그런 곳이 아니라 우리 전통 녹차를 주종으로 명차, 우롱차, 밀크티, 녹차가공음료 등 다양한 차가 정갈하게 제공되고 있었다.
커피전문점만 해도 밥값보다 비싼 커피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데 반해 티하우스는 가격대도 다양해 골라 마실 수 있었다. 손님들이 조용조용 얘기해 분위기가 차분한 가운데 1인 손님을 위한 테이블과 층이 마련돼 있는가 하면 녹차 관련 브로슈어와 서적이 비치돼 있는 등 인테리어도 깔끔해서 쾌적한 느낌마저 주는 것이었다. 중년 이상의 연령대가 좋아할 만한 곳이라 생각됐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직장인과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가 더 많았다.
커피는 지금까지도 카페인 등 여러 성분 때문에 건강 유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다 우리나라는 한 해 수입액이 많을 때는 7천 억 원에 이른다. 올 들어서는 가정이나 기업 등에서 소비가 크게 줄면서 수입액도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들이 가장 많이 마시고 있다.
반면 녹차는 비타민 C와 카테킨류 등 다양한 성분 때문에 항산화, 항암 효능이 보고되고 있고 플라보놀 성분은 구취를 없애는 등 여러모로 몸에 이롭다. 조금이라도 안 좋거나 해롭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거기다 녹차는 전남 보성과 제주 등 국내에서 생산되고 전통 차 문화를 잇는 토산물이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다만 과거 부유층이나 특정 계층에서만 향유되다 보니 녹차나 전통 차의 대중화는 요원했다.
외래종 커피 대항마는 토종 녹차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에서 손님 접대용으로는 커피가 주종이었지만 지금은 녹차가 눈에 띄게 늘었고 과거 커피 선물이 지금은 녹차 세트로 대체되고 있다. 오설록 같은 전문 녹차 브랜드가 곳곳에 매장을 열고 판매를 늘리는가 하면 커피전문점에 가서도 녹차나 혼합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녹차의 대중화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 수 십 년을 우리 땅에서 녹차를 생산하고 토종 녹차를 대중화시키는데 힘을 쏟아 온 한 기업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져져 있지 않다. 그는 지난 2003년 타계한 아모레퍼시픽(당초 태평양화학공업) 창업자 서성환 전 회장이다.
서 회장은 1945년 국내 첫 화장품회사를 설립해 어렵사리 궤도에 올려놓은 뒤 해외 시장을 둘러보다 세계 각 나라들마다 고유의 차 문화가 있는데 우리는 왜 전통 차 마시는 문화가 사라졌을까 의문을 품었다. 곧이어 그는 이를 되살리는 일은 기업이 직접 나서서 녹차를 재배, 생산하고 보급에 나서는 길 밖에 없다고 결론 내리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업성이 불투명한 녹차 사업에 뛰어든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인 60년대 말이었다.
한 기업인의 집념이 결국..
그는 녹차 생산 적지를 찾기 위해 전국을 십 여 차례 답사한 끝에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한라산 중턱을 직접 낙점했다. 제주는 녹차를 즐기고 다도를 화서에도 남긴 추사 김정희 선생의 혼이 서린 곳이다. 버려진 황무지를 개간해 녹차나무를 심고 가꾼 끝에 도순, 서광, 한남다원이 속속 조성되면서 지금의 매머드 다원이 완성됐다. 여기에 녹차박물관이 들어서고 정원이 조성되면서 투어 코스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는 “소비자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가게 하라”는 경영철학을 강조하며 오랜 기간 적자를 보며 큰돈이 되지 않는 녹차사업을 끝까지 밀어 붙여 2000년 대 이후 빛을 보기 시작했다. 특히 많은 농약 살포로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리던 일부 지역의 녹차와는 달리 제주 녹차는 유기농 무공해에 사활을 걸어 많은 공인기관으로부터 무농약,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이런 노력이 밑거름이 돼 서 회장의 타계 뒤 가속도가 붙으면서 마침내 전통 녹차의 대중화라는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가로선 당연한 일이라 할 지 모르겠지만 그가 집념으로 일군 사업의 의미를 곰곰이 따져본다면 이게 바로 사업보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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