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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꼬이는 한국 역도…말 없는 '밀가루 회장님'

[취재파일] 꼬이는 한국 역도…말 없는 '밀가루 회장님'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이 구속됐습니다. 밀가루 세례까지 받는 망신을 당하고 영장실질 심사를 받은 끝에 철창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여대생 청부 살인사건’의 주범 윤 모 씨의 남편인 류 회장은 의사에게 돈을 주고 윤 씨에 대한 허위진단서를 쓰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구속은 개인적인 불행을 넘어 한국 역도에도 엄청난 충격을 던졌습니다. 류 회장은 대한역도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성추행 파문으로 홍역을 치렀던, 아니 아직까지 성추행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위기의 역도연맹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성추행에 이은 감독들의 집단 사퇴, 그리고 회장의 구속까지... 갈수록 꼬이고 있는 겁니다. 평양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클럽 역도선수권(9월 15일~17일)을 코앞에 두고 출전 자체가 불투명해 졌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류 회장 체제에서 계속 몰락하고 있는 한국 역도의 슬픈 현실을 되짚어 봅니다. 

돈 풀기도 전에...꽁꽁 묶인 회장님

류회장은 1993년부터 부산역도연맹을 이끌다가 지난해 11월 한국역도의 수장으로 선출됐습니다. 런던 올림픽 노메달의 수모를 당한 박종영 전 회장이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시했고, 류 회장이 바통을 이어 받은 겁니다. 류 회장은 취임사에서 “런던 올림픽에서 실패한 것은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4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결실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투자하며 돕겠다”고 통 큰 각오를 밝혔습니다. 한 마디로 돈을 풀겠다는 겁니다. 영남제분이라는 탄탄한 중견기업의 지원을 받게 된 역도인들은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장미란의 은퇴와 사재혁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로 꿈나무 육성이 필요했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사건이 터졌습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류 회장의 부인 윤 모 씨가 지난 2007년 허위진단서(유방암, 파킨슨 병 등)를 발급받아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뒤 지금까지 거짓 환자 행세를 하며 병원 VIP병동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지난 5월 한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제기된 것입니다. 류 회장은 허위진단서 발급을 위해 의사를 매수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당시 대한역도연맹측은 “류 회장은 이미 부인과 이혼한 상태여서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연루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그리고 류 회장도 아무일 없다는 듯 역도연맹 회장직을 큰 문제없이 수행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투자나 최선을 다해 돕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때부터 역도인들은 ‘설마 설마’하며 가슴을 졸이기 시작했습니다.

성추행 파문...총감독 영구제명

오승우 감독
류 회장의 첫 번째 업적(?)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미란의 금메달을 일궈냈던 오승우 전 여자대표팀 감독을 대표팀에 복귀시킨 것입니다. 오 감독을 신임 총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갔습니다. 성추행 파문입니다.

지난 7월 SBS로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는 “19살 여자 역도선수가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감독이 마사지를 한다면서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몸을 만졌다.”며 “역도연맹에 감독교체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지만, 아무런 조치 없이 넘어가려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역도 연맹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부랴부랴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결국 진위여부를 가리지는 못했습니다. 오 총감독은 “억울하다“며 계속 결백을 주장했지만, 선수 측이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가겠다며 강하게 맞섰고, 결국 역도 연맹은 오 총감독을 영구제명하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했습니다. 오 총감독은 ”억울하지만 회장님에게 누가 될 수 없다.“며 재심 청구를 포기하고 징계를 받아들였습니다. 사태는 이렇게 끝나는 듯 했습니다.

남녀 감독 동반 사퇴...선장 없는 표류

지난 1일 역도연맹에 전화를 걸어 “15일 평양에서 열리는 ‘아시아 클럽 역도 선수권’ 일정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확정된 게 없다.”는 겁니다. 세상에 대회가 보름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대회 일정도 안 나왔다니, 아무리 북한에서 대회를 한다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담당자의 어투도 굉장히 난감한 느낌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남녀 대표팀 감독이 동반 사퇴하면서 역도 연맹이 다시 뒤집어진 겁니다. 이유를 알아 봤더니 역시 성추행의 여파였습니다.

총감독의 영구제명 이후 역도연맹은 강화위원회를 열고 이형근 남자 대표팀 감독을 신임 총감독으로 추천했습니다. 이형근 감독은 88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출신으로 10년 넘게 대표팀을 이끌어 온 베테랑 감독입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는 총감독과 남자 감독을 겸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류 회장은 강화위원회의 추천을 무시하고 현역에서 사실상 물러나 있던 60대 역도인을 총감독으로 지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감독을 앞세워 여자역도대표팀 감독 교체에 나서자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결국 이형근 감독과 여자대표팀의 김기웅 감독이 동반 사퇴 의사를 밝혔고, 강화위원장인 연맹의 살림꾼 안효작 이사마저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렇게 한국 역도는 안팎의 내홍에 시달리며 선장 없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말없는 회장님...한국 역도의 앞날은? 

회장 공백사태를 맞은 대한역도연맹은 조만간 이사회를 소집해 추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사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류 회장의 법정투쟁을 지켜보며 마냥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자신은 무죄라고만 말할 뿐 한국 역도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꼬인 실타래를 풀 실마리가 보이질 않습니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역도인들의 한숨만 커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한 가지.
류 회장은 평양에서 열리는 아시아 클럽 선수권에 참가할 예정이었습니다. 한 역도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에 '영남제분 밀가루'를 트럭에 싣고 가 선물하려는 계획까지 세웠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자신이 밀가루 선물(?)을 받는 신세가 됐습니다. 웃어야 하나요? 울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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