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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허민 구단주 "신문배달 하듯…너클볼도 팍팍"

[취재파일] 허민 구단주 "신문배달 하듯…너클볼도 팍팍"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허민 구단주가 지난 2일 미국 독립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러 화제입니다. 선수 경력도 없는 야구광이 8년간 너클볼을 연마해 미국 무대에서 데뷔를 한 겁니다. '37살의 성공한 청년 기업가가  너클볼 투수로 변신한다'는 만화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꿈같은 일을 해내고도 정작 허 민 구단주의 소감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SBS와 전화 인터뷰에서 “꿈을 이룬 게 아니고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 나온 신문배달부를 보고 너클볼의 성공을 확신했다”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약간의 감동과 약간의 재미가 함께한 허 민 구단주의 솔직한 인터뷰를 Q&A로 소개합니다.

“센 상대를 만나 신났어요.”

Q: 꿈을 이룬 소감이 어떻습니까?

A: “꿈을 이룬 게 아니고 이제 시작한 거죠. 물론 선수가 되는 게 꿈이긴 했지만, 한 경기 던졌다고 야구선수가 된 건 아니죠. 앞으로 던질 200경기 300경기 중의 한 경기니까요. 차츰 선수가 돼가는 과정이죠. 서울 대학교 때 처음 유니폼을 입었지만, 항상 벤치만 지켰어요. 시합을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었으니 제 공식 경기로는 이번이 처음이죠.
  제가 만나본 타자들 중에 제일 센 타자들을 만서 재미있고, 신났어요. 지금까지 제가 상대한 타자들은 모두 연습 경기에서 만난 대학생이나 루키리그 선수들이었는데, 이 리그가 싱글 A 수준이거든요, 나름 한 번 붙어보자는 생각으로 재미있게 했어요. 실점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과정이니까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알 수 없는 게 ‘너클볼’이죠“

Q:1회에 부진했는데, 긴장해서일까요?

A:“나이가 40 돼가다 보니, 긴장은 없었습니다. 너클볼이라는 게 원래 그래요. 갑자기 제구가 안 되요. 예를 들면 웨이크필드도 자기가 너클볼 투수로 변신하고 한 이닝에 홈런을 세 개인가 맞았어요. 제가 던지고도 어디로 갈 지 모르거든요. 그 만큼 실전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 이유 없이 난조가 옵니다. 스트라이크가 안 들어가더라고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뭐든 일들이 운에 좌우되는데 제가 실력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조금 운이 따라 줬다면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투스트라이크 이후 삼진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도 있었고, 홈런 말고 플라이아웃이 될 수도 있었거든요. 사실 저희팀 홈경기장이 우익수 쪽에 식당이 있어서 앞쪽으로 나와 있어요. 90미터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면 홈런이 많이 나오는 편이죠. 운도 안 따랐다는 느낌 받았습니다.”

“첫 스트라이크 잡은 공을 기념으로 챙겨 줘 뭉클“

Q:동료들이 경기 끝난 뒤 무슨 말을 하던가요?

A: “미국이라는 나라가 원래 다 좋은 소리를 많이 해서 그런지, 다들 “멋지고, 훌륭했다”고 말을 해줬습니다. 제가 경기 끝나고, 좀 뭉클한 마음이 들었던 게 감독이 공을 건네주더라구요, 제가 첫 번째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잡은 거였어요. 첫 번째 스트라이크 공을 포수가 가지고 있다가 감독이 저한테 준거예요. 좀 마음이 따뜻해 졌습니다.“

“생활의 달인을 보고 ‘너클볼’ 확신“

Q:언제쯤 ‘너클볼’이 실전에 통할 것이라고 느꼈나요?

A:“작년쯤 됐던 것 같아요. 고양원더스와 연습경기를 하면서 제 공이 통할 수 있지 않을까 했었고, 올 초에 마이너리그 테스트 보면서 결과가 꽤 괜찮은 편이었거든요. 제가 너클볼러로 변신하고 오늘이 최악의 경기라고 할 만큼 안 좋았습니다. 성공한다 안한다가 중요한 건 아니고 그냥 좋아서 하는거죠. 가슴뛰니까.. 그렇다고 사회인리그에서 뛰기에는 아쉬움이 남고요, 강한 상대를 상대로 공을 던져 보고 싶으니까 계속 도전했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제가 너클볼에 집중하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SBS에서 생활의 달인을 본 뒤예요. 그걸 보고 너클볼을 확신했죠. 이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우연히 생활의 달인을 봤는데, 신문배달하는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자기 원하는 배달지점에 팍팍 넣더라고요. 그걸 하는데 몇 년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제가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너클볼은 회전을 없애기만 하는 건데, 내가 1년이 걸릴 지 3년이 걸릴 지 10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계속하다보면 되겠구나, 이거다 싶었죠. 결국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시간이 흐르면 수준이 올라오니까 그 다음은 뭐가 있을까..하다가 기회를 잡는거 아닐까요?”

“던질 때가 가장 행복”

Q:굳이 늦은 나이에 투수가 되려는 이유는 뭘까요?

A:“인생에서 일정시점이 지난 뒤에는 성공을 쫓기 보다는 행복을 쫓았습니다. 그 행복의 정의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정의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거든요. 마음가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클볼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하루에 한 시간 두 시간 연습을 했어요. 점점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시간을 늘려 왔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8년이 걸린 거죠. 인생에서 행복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시간을 늘려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만화가가 꿈이라면 하루 한 시간씩 만화를 그리는 거죠. 그래서 고양원더스를 만들기 전부터 저는 너클볼을 던지고 있었고, 다행히 훌륭한 감독님을 모시게 되서 김성근 감독님한테 기본적인 걸 배우게 됐죠. 그전엔 견제라든지 수비 훈련을 해 본적이 없었어요. 고양 원더스에서 연습경기도 출전하고 함께 훈련도 했습니다. 제가 연습하는 데는 따로 있습니다. 혼자서 연습했죠. 코치 한 명이랑.

“50살까지 던질겁니다.“

Q:앞으로 보완할 점은 뭘까요?

A:“일단 스트라이크를 많이 못 던졌어요. 어쨌든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고, 다음 경기를 하면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져야 겠죠? 마운드에 설 수 있는 한 계속 던질 겁니다. 어떤 팀에서 뛰든 계속 던지면서 도전할겁니다. 1회성 이벤트라고 비하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 번 던지려고 8년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몸이 허락하는 한은 50살까지 던지고 싶습니다.

만화같은 도전.."나는 투수다!"
허 민 구단주의 데뷔전 중계화면을 보면서 낯설고 놀라운 점이 있었습니다. 경기에 앞서 태극기가 경기장에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고등학교 합주단의 라이브 연주였습니다. 미국 독립리그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외국인 선수가 선발 등판할 경우 그 선수의 국가를 연주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5천여 명의 관중은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한국인 투수 허 민이 4회 마운드를 내려오자 뜨거운 박수로 격려했습니다. 3이닝 5실점한 패전투수를 향해 말이죠. 메이저리그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한국팬들에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나는 투수다!"라고 외치는 괴짜 구단주의 도전은 이렇게  만화처럼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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