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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막오른 中-美 GPS 전쟁

[월드리포트] 막오른 中-美 GPS 전쟁
모르는 길도 척척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 요즘은 초행길이라도 차량에 내비게이션만 설치돼 있으면 크게 걱정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운전해 갈 수 있는데요.  차에 내비게이션이 설치돼 있지 않더라도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역시 별로 문제될 게 없습니다. 내비게이션 기능 앱을 다운 받아 사용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길을 헤매는 '길치'라도 내비게이션이 알아서 화면과 음성으로 길잡이를 해주기 때문에 지도를 보거나 차를 세우고 물어보는 번거로움 없이도 원하는 장소에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인데요. 한국인인 제가 베이징에서도 별다른 곤란을 겪지 않고 모르는 장소에 운전해 갈 수 있는 것도 다 '내비' 덕분입니다.

내비게이션은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정보 즉, 위성위치확인시스템 정보를 미국이 전 세계에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인공위성을 이용해 정확한 위치를 찾아주는 것이죠.
미국은 현재 우주 궤도에 쏘아 올린 24개의 인공위성을 이용해 GPS 정보를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7중]나로위성 교
지난 70년대 군사용으로 개발되고 활용되던 GPS가 승용차 내비게이션이나 항공기 위성항법장치 등 민간 부문에서도 쓰이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는데요. 바로 1983년에 발생한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입니다. 당시 KAL 여객기는 사할린 상공에 들어 갔다가 옛 소련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에 격추돼 269명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사건을 보고 받은 당시 레이건 미 대통령은 군사분야에만 쓰이던 GPS를 민간 분야에서도 쓸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이후 차량용 내비게이션 등 GPS 정보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해온 이 GPS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중국이 자체 개발해 구축해온 GPS가 이제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로까지 접어든 겁니다.
중국 GPS의 이름은 북두(北斗, 중국 발음으로는 베이도우)입니다. 옛날 선원들이 하늘의 북두칠성을 보고 위치를 파악한 데서 따왔다고 합니다. 지난주 중국의 베이도우 GPS 정보를 수신할 수 있는 차량용 내비게이션 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중국 베이도우 프로젝트 당국과 CCTV 등 관영 방송에서는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습니다. 중국 GPS의 성능이 궁금하던 차에 직접 제품을 구경해보고 정확도도 확인해 봤습니다.

제 스마트폰에 있는 내비게이션은 미국의 위성이 제공해주는 GPS 정보를 수신합니다.
그래서 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중국 GPS 제품을 장착한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서로 비교해 봤습니다. 목적지는 복잡한 골목길에 있는 한 장소로 잡고 출발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중국 GPS가 좀 더 정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느낌'이라고 표현한 것은 실제로 오차를 측정하는 장비 없이 육안으로만 비교를 해봤기 때문입니다. 어쨋든 두 '내비' 모두 비교적 정확하게 길을 안내해줬는데 중국 GPS 제품 판매사원의 말로는 "기존 미국 GPS의 경우 오차범위가 몇 십미터 정도인데 반해 중국 GPS는 10미터 정도로 정확도가 조금 더 개선됐다"고 했습니다.

중국 베이도우 프로젝트 당국도 중국 인공위성의 위치가 미국의 위성 보다 낮기 때문에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위성의 고도가 낮기 때문에 위성의 수명은 미국보다 짧다고 하더군요. 정확도를 높인 대신 수명은 희생한 셈이어서 중국으로선 그 만큼 더 자주 위성을 쏘아 올려야 합니다.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이 GPS 정보를 전 세계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도 중국이 독자적으로 GPS 망을 구축한데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애초 미국이 GPS를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했듯 GPS는 현대전에서는 가장 중요한 무기이자 없어서는 안될 정보 수단입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GPS를 바탕으로 수 만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목표지점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습니다. 전투기나 전폭기도 GPS가 있어야 목표 지점에 날아갈 수 있고 미사일도 발사할 수 있습니다. 소총이나 대포 정도를 빼고는 사실 GPS 정보를 활용하지 않는 최신 무기가 없을 정도입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
그런데 만약 미국과 중국 사이에 분쟁 또는 전쟁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전시 또는 준전시 상황에서도 미국이 중국에 GPS 정보를 제공해줄까요? 중국군은 유사시 미국이 GPS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을거라고 우려해왔습니다. GPS 정보가 없다면 말 그대로 '깜깜이'로 싸울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결과가 뻔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중국은 지난 94년부터 독자적인 GPS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2000년 1호 베이도우 위성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어 지난해까지 모두 16개의 위성을 쏘아올려 지난해말부터는 중국 전역은 물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GPS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도 중국 GPS 서비스 지역에 당연히 포함돼 있습니다. 파키스탄과 태국 등 4개국은 이미 미국의 GPS가 아닌 중국의 GPS 체계를 채택하기로 했습니다. 중국은 오는 2020년까지는 위성을 35개로 늘려 전 세계로 서비스 범위를 넓힐 계획인데요. 리주홍 중국 GPS 개발 총책임자는 "2020년쯤이면 중국의 베이도우가 미국의 GPS와 경쟁해볼만 하다"고 말했습니다.

군사적인 필요나 목적외에도 내비게이션과 지도 제작, 여객기 항법장치 등 GPS 관련 산업은 이미 100조원대의 거대 시장으로 급성장했습니다. 지난해말 중국 GPS 관련 내수 시장 규모만 21조원 가량으로 집계됐습니다. 스마트폰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스마트폰을 활용한 위치기반서비스 확대 등 2020년에는 중국 내수 시장만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GPS 관련 산업이 중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현재 중국 내수 시장에서 자국산 GPS 점유율은 5% 미만, 나머지 95% 는 미국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내수 시장에서 자국산 GPS 점유율을 2020년까지 최대 80%까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입니다. 안방부터 챙긴 뒤 세계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를 위해 올 1월해부터 장쑤와 구이저우 등 중국내 9개성에서 생산되는 차량의 내비게이션에는 모두 자국산 GPS 장착을 의무화하도록 했습니다. 앞으로 자국산 의무화 대상 지역은 점점 넓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또 GPS 개발 프로젝트에 9천억원 가량을 투자해, 모바일 생태계를 개발할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역시 자국산 GPS 비율을 늘리고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GPS 전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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