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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수지로 '나이스샷', 생태계 위협하는 수중골프장

[취재파일] 저수지로 '나이스샷', 생태계 위협하는 수중골프장
지난 주, 경기 용인시의 한 저수지 위에 세워진 수상 골프연습장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저수지에 세워진 수상 골프연습장이라니, 상상이 잘 안되실 텐데요. 이 연습장이 인터넷 등을 통해 내건 광고를 잠시 볼까요.

"지상 3층 규모로 층당 32타석 씩 총 96타석으로... 페어웨이 길이가 300미터에 이르는 신개념의 친환경 수상 골프연습장입니다. 기존 골프연습장의 답답한 그물망잉 아닌 탁 트인 저수지를 향해 마음껏 공을 날려 보낼 수 있고 XX 저수지와 XX산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2층과 3층 연습타석은 마치 필드에 나온 것처럼 청량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수지 한 가운데에는 130미터, 180미터, 22미터 등 거리 별로 마크가 돼 있어 비거리를 측정할 수 있고, 야간에는 저수지에 떨어진 공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조명시설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골프라는 스포츠를 해 본 적도, 즐기지도 않아 잘 알지 못하지만 많은 이용자들이 그물망이 걸린 연습장을 '답답하다' 느끼나 봅니다. 광고처럼 이 연습장은 저수지를 향해 공을 날리는 방식입니다. 공은 물 위에 뜰 수 있도록 특수재질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업체 측은 하루에 2~3번, 배를 띄워 그물로 공을 걷는데 펜스 안에 떨어져 있는 수만 개의 공이 모두 걷힐 리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골프연습장 앞 수면엔 하얀 공들이 그야말로 빼곡히, '동동' 떠 있습니다. 저수지 위엔 비거리를 알려주는, 숫자가 적힌 부표가 떠 있고 더 외곽으로는 공이 나가지 못하도록 펜스가 설치돼 있습니다.

그런데 장마가 지나고 일대에선 이용자들이 저수지 수면 위로 날린 골프공 수천 개가 펜스 밖까지 벗어나 인근 하천으로 유입된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정말일까?
저수지 골프장 캡쳐

취재에 나가보니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며칠 전에도 업체가 공을 주웠다며 귀띔해줬지만, 제가 현장에 간 날에도 수초 사이사이 물살이 약한 곳마다 시커멓게 변한 골프공이 100개 가까이 떠 있었습니다.

이 연습장은 지난 2008년 주민과 환경단체 반대를 무릅쓰고 용인시의 허가를 받아 들어선 이래 평일과 주말 모두 아침 7시~밤 11시까지 운영됩니다. 수도권 일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성업 중입니다. 이용객들이 수면 위 부표를 겨냥해 날리는 공은 하루 평균 2만~3만 개인데, 이중 수천 개가 노후된 그물 구멍 사이로 빠져 나가 수거되지 못하고 펜스 밖 지역에 방치돼 있던 겁니다. 최근 장맛비가 많이 내리면서 탄천과 한강 쪽으로 떠내려가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녹조현상과 연습장 이용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문제도 심각했지만, 수상 골프연습장 시설 특성상 발생하는 소음과 수질 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가장 심각했습니다. 용인시 환경단체의 조사 결과 매년 3월 산란기 때 찾아오던 두꺼비 수만 마리 등 각종 어류와 양서류, 조류들이 길 건너 논습지 등으로 보금자리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살 곳을 잃은 겁니다.

수상 골프연습장은 현재 체육시설이 아닌 공원시설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체육 시설이 적용받는 엄격한 기준의 '체육시설 설치에 관한 법률'이 아닌,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인허가 하면 쉽게 유치 가능한 거죠.운영기간 동안 적용받는 환경영향 평가 기준도 없어 저수지 생태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에 비하면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셈입니다.

기사가 나가고 나서 반향이 컸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의 공분하고, 담당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좀 더 관리를 잘하겠다'며 다짐의 전화를 해 왔습니다.

하지만, 수상골프연습장은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전기뱀장어 아시나요? 한번에 500볼트씩 전기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전기뱀장어를 잡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아마존 강 원주민들은 수면 위를 막대로 수십 차례 소리 내 쳐냅니다. 뱀장어가 처음엔 외부의 공격에 놀라 평소처럼 전기를 쏘아대며 위협하지만, 결국 계속된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아 진이 빠져 물 위에 동동 뜨게 된다죠. 탄천으로, 한강으로 흘러가는 골프공들도 문제이지만, 하루에 2~3만 개씩 저수지 수면 위로 떨어지는 골프공, 그 자체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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