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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림이 들려주는 은밀한 이야기

<시크릿뮤지엄>전 리뷰

[취재파일] 그림이 들려주는 은밀한 이야기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 여행의 필수 코스인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서면, 모두들 어디론가 우루루 달려간다.
목적지는 같다. 세계의 걸작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이다. 이미 진을 치고 있는 50~60명의 사람들 중에는 까치발을 들고 모나리자의 ‘없는’ 눈썹이라도 보거나, 휴대전화를 들이대고 ‘모
나리자를 봤다’는 인증사진을 찍기 바쁜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는 ‘<모나리자>를 봤으면 루브르를 다 본거나 다름없다’는 마음으로 뿌듯하게 박물관을 나선다. 비단 루브르박물관에서의 관람 방식이 아니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대부분의 전시회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만을 ‘훑어’ 본다. 나중에 생각나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그 그림을 보기 위해 보였던 열정뿐이다. 하지만 <시크릿뮤지엄>은 이러한 관람 방식이 통하지 않는 전시다. 우선 파리를 가야만 볼 수 있는 명작들이 모두 모여 있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군분투할 필요가 없다. 명작이지만 진품이 아니라 고해상도 카메라로 찍어 가공한 명작이라는 점도 한몫을 한다. 결정적인 이유는 <시크릿뮤지엄>의 명작들은 그림 앞에서 ‘시간 투자’를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눈도장'도 제대로 찍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보이지만 볼 수 없던 비밀 찾기
권란 취재파일

“촛불의 작가”라 불리는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목수 성 요셉>. 어린 아들 예수가 밝혀주는 촛불 하나에 기대어 일하는 아버지 요셉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회화 작품이지만 초의 불빛은 마치 바람에 따라 너울거리는 듯하고, 가운데에만 환하게 촛불이 비추고 있어 ‘성가족’의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이에 마술 같은 관람 기법이 더해진다. 목공 도구를 움켜쥔 목수 요셉의 손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나 힘을 줬던지 발목의 핏줄까지 바짝 섰다. 땀이 송송한 얼굴은 살짝 찡그려 있다. 요셉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이때 들리는 요셉의 신음 소리, “끙….” 예수의 아버지이자 성인인 요셉이 우리네 아버지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처자식과 생계를 위해 어두컴컴한 작업실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해 일을 하는 가장의 모습, 딱 그것이다. 원작이 주는 느낌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원작을 봤다면 촛불에 환하게 비친 요셉과 어린 예수의 얼굴만 바라봤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정과 톱밥, 잔뜩 힘을 준 요셉의 발은 아마 못 보고 넘어갔을 것이다. 거기에 원작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소리’는 묘한 공감대마저 불러일으킨다. 서로를 위한 아버지와 아들, 그냥 우리 가족 혹은 이웃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이다.
권란 취재파일

미국 산업혁명 시대의 모습을 그린 조지프 라이트의 <공기펌프 안의 새에 관한 실험>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만 치부됐던 자연현상의 비밀이 벗겨지는 경외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적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용과 시간이 드는 실험이기에 온 가족이 모였다. 여기에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는 <시크릿뮤지엄>판 가공작은, 여기서 세 개의 모니터에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담았다. 젊은 남성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실험 장면을 쳐다보고 있고, 소녀의 얼굴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젊은 여성은 아예 눈을 가렸다. 심지어 실험 대상인 새의 표정까지 보여 준다. 투명한 유리 도구 안에 갇힌 새는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푸드덕거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어두운 밤하늘에 뜬 보름달!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악(惡)의 상징이었다는데,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과학적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두려움을 은연중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장치인 듯하다. 그림의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훑는 시선으로 친절하게 보여주지 않았다면 작가의 이런 세심함은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시크릿뮤지엄

이렇게 <시크릿뮤지엄>은 고해상도 카메라로 명작을 촬영해 거기에 다시 애니메이션 효과와 소리를 입혀 또 다른 명작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원작의 ‘아우라’를 해쳤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크릿뮤지엄>은 제목 그대로 그림의 ‘비밀’을 하나하나 들춰내고 있다. 관람객들로 하여금 원작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나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거기에 그림을 보는 인내심까지 길러준다. 야금야금 한 장면씩 비밀을 벗기다 보니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그림 앞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 원고는 '예술의전당 월간지 뷰티풀 라이프'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시크릿뮤지엄>전은 예술의전당에서 9월 22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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