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는 도쿄 시내 중심부 치요다(千代田)구 구단(九段)에 자리한 일본 전통 종교 시설 '진자(神社)'다. 원래 이름은 '도쿄 초혼사(東京 招魂社)'였다. 넋을 불러 모셔서 위로한다는 뜻이다. 어떤 넋인가? 답은 제국주의 일본의 출범 전후 광풍의 역사에 들어있다. 일본이 무사 정권인 바쿠후(幕府)체제를 끝내고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근대국가로 출범하는 이른바 메이지(明治)유신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신, 구 체제의 충돌로 내전이 벌어진다. 1868년 무진(戊辰)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보신센소(戊辰戰爭)'라고 부른다. 새 정부의 관군으로 싸우다 전사한 사람이 7,751명이나 된다. 메이지 정부는 수많은 전몰자를 위하여 보란 듯이 제사할 자리가 필요했다. 1869년 6월 19일 옛 바쿠후의 군 주둔지였던 구단 언덕에 초혼사의 첫 삽을 뜬다. 10년 뒤인 1879년 야스쿠니(靖國)신사로 이름을 바꾼다.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다. 모두 메이지 천황 무츠히토(睦仁)의 명에 따른 것이었다.
여느 신사와 달리 군부의 중심인 육해군성이 직접 관리를 맡았다. 천황을 위해 전사한 군인의 위패를 받들며 '영령(英靈)'으로 추앙했다. 무츠히토가 친히 찾아가 배례하고 시 한 수를 바친다. ''나라 위해 몸 바친 사람들의 이름을 무사시노에 모시는 신령한 울타리'. 야스쿠니신사 본전 휘장과 홈페이지 첫 머리엔 이 구절이 장식한다. 20세기 들어 일본이 벌인 아시아 침략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은 물론 민간인, 심지어는 식민지배한 나라 사람들까지 246만6천 명의 위패를 안고 있다. 2차 대전 전범들까지 영령으로 존경받는 곳이다. 천황을 인간으로 나타난 현인신(現人神)이라고 내세우며, 그를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도록 홀리고 기만한 지배 이데올로기 메카니즘의 기관, 야스쿠니는 그 자체가 전범의 성격을 지녔다고 일본의 사회평론가 츠다 미치오(津田道夫)는 갈파했다.
야스쿠니에 대한 일본 보수 정치인들의 집착은 나카소네 이후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까지 결성했을 정도다. 올해는 무려 102명이나 참배해서 지난해 55명의 2배 가까이 늘었다. 야스쿠니 참배와는 별도로 8월 15일에 일본 정부는 야스쿠니 길 건너편 부도칸(武道館)에서 천황 부부와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국가 공식의 전국 전몰자 추도식을 치른다. 이 자리에서 나오는 추도사가 어떤 내용이며 어떤 수준인가에 일본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역대 총리들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 끼친 가해를 인정하고 전쟁하지 않겠다고 표명해왔지만 올해 아베 총리는 최소한의 반성 표현도 담지 않았다. '역사에 겸허하고 배워야 할 교훈은 깊이 가슴에 새기겠다'는 애매한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1995년 무라야마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수치로 알고 부정하는 퇴행적 역사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전몰자 추도식 자체도 일본이 과거 침략 가해 역사를 잊고 있음을 드러낸다. 흰색과 노란색 국화로 장식한 제단에 세운 추모비문은 '전국 전몰자의 영'(全國戰沒者之靈)'이다. 추도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과거 자신들이 일으킨 소위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으로 연합군의 공습이나 상륙전 와중에 목숨을 잃은 자국민으로 선을 긋는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인해 희생된 아시아 각국인에 대한 미안함 같은 건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도칸 아래 해자 주변의 벚꽃 명소로 이름난 치도리가부치(千鳥が淵)의 무명 해외 전몰자 35만 명을 기리는 묘원도 자신들의 피해상만 처연하게 드러내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패전의 상처를 달래고 치유하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패전을 빚게 된 원인인 가해 역사를 끝까지 감추기만 해서는 일본이 아시아 이웃나라들에게 진정으로 신뢰받지 못한다. 일본 내에서도 야스쿠니를 대신해서 새로운 국가 공식 추도 시설을 세우자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야스쿠니를 끔찍이도 받드는 전몰자 유족회와 우경화된 일본 정치인들에게 막혀 빛을 못 보고 있다.
일본은 야스쿠니에 스스로 발목을 묶지 말고 과감하게 발상과 의식의 대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도쿄 한 가운데 '태평양 전쟁 희생자 추모비'를 세우고 '평화기념관'을 세우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부국강병으로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웃 나라들을 침탈하고 고통을 끼친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추모비와 기념관에 아시아 각국 정상과 전쟁 피해 희생자와 유족을 초청해 엄숙한 추도식을 치르는 것이다. 아직 생존한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앞자리에 모시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이 그렇게 하면 열망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도 수월하게 풀릴 수 있고 덕을 갖춘 국가로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주일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일본 기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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