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중앙선관위 위원장에서 퇴임할 당시에도 향후 거취에 대해 "아내의 가게를 도우며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며 "당분간 공직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법조계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 후 곧장 로펌으로 직행하는 '전관예우' 관행과 달리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그의 모습은 대법관 출신 '편의점 아저씨'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랬던 김 전 위원장이 6개월도 채 안돼 결국 고소득이 보장된 대형 로펌행을 결정하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과 함께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국 서민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았다"며 비난까지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김 전위원장이 스스로 자신을 '무항산자'로 규정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대법관과 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고 아내가 편의점을 하는 분이 무항산자라고 말하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맹자가 말한 무항산의 의미는 그야말로 하루하루 살기 힘든 서민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김 전 위원장의 구체적 수입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그의 생활수준이 정말 '무항산'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은 '무항산'에 해당될 게 틀림없습니다. 김 전 위원장이 언급한 '무항심, 무항산'은 <맹자> 맨 앞인 양혜왕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조금만 페이지를 넘기면 등문공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빈천불능이'(貧賤不能移) 즉 바른 길을 걷는 사람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결코 그 志操(지조)를 꺾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김능환 전 위원장의 로펌행 자체를 굳이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이 그냥 "저의 경험을 살리고 좀 넉넉하게 살고 싶어서 결정했다"고 말했으면 훨씬 더 솔직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가 굳이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을 거론하며 서민 생활을 6개월만에 정리한 것은 결국 군색한 변명이란 씁쓸한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고전속에 담긴 선철(先哲)의 깊은 뜻을 끌어쓸 때는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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