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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편의점 아저씨' 청백리 대법관의 변신? 변심?

김능환 전 대법관의 로펌행에 대한 단상

[취재파일] '편의점 아저씨' 청백리 대법관의 변신? 변심?
지난 3월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던 김능환 전 대법관이 퇴임했다. '청백리'라는 별명에 걸맞게 공로패마저 사양하고 누구보다 소박한 모습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튿날, 그는 부인이 낸 조그만 채소 가게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곧바로 출근했다. 5부 요인으로 꼽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하루 아침에 '편의점 아저씨'로 변신한 것이었다. 모든 언론들이 앞다퉈 청백리의 변신을 감동 스토리로 타전했다. 청문회 때마다 고관대작들의 고액 재산 문제에 속이 불편했던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청량제와도 같았다. 그 후로도 한동안 김 전 대법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5개월 여가 지난 오늘(8월 27일), 김 전 대법관이 일부 법조출입기자들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이런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없을 無, 항상 恒, 낳을 産, 없을 無, 항상 恒, 마음 心,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 저는 다음 달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일하기로 하였습니다. 김능환 배'
김능환

'無恒産 無恒心', 경제적인 안정없이는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으로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편의점 아저씨에서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변신하는 데 대한 김 전 대법관의 설명이었다. 편의점 경영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굳이 김 전 대법관의 상술에 대한 요령부득 여부를 따지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예상 가능한 일이다. 부인이 운영하는 채소 가게도 마찬가지다. 장사의 수완이 몸에 밴 상인들에게도 불경기가 힘들거늘 평생 공직자만 했던 그에게 恒産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 전 대법관의 말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자면 그래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는 뜻이 된다. 누가 그의 '변신'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無恒産 無恒心'이 나온 '맹자'의 구절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항산이 없이 항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뜻 있는 선비'뿐이라는 것이다. '뜻 있는 선비'는 배를 좀 곯을지언정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에 대비해 '일반 백성'은 배를 주리면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다는 '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김능환 전 대법관은 공직자 시절 칭송받아 마땅한 '청백리'였다. 33년 동안의 공직 생활 동안 모은 재산이 9억여원이 불과했다. 서민에게는 많은 돈이지만, 재직 당시 대법관 가운데는 꼴찌 수준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 '뜻 있는 선비'에 해당했다. 남들보다 적은 재산에도 주변의 유혹에 한치의 흔들림이 없는 '恒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편의점 아저씨'가 된 뒤 그는 '일반 백성'으로 돌아갔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마음이 괴로운 '백성' 말이다.

'편의점 아저씨'의 '로펌 변호사'로의 '변신'을 보며 씁쓸한 건 그의 '변심'이 야속해서가 아니다. 만인의 표상이 됐던 '청백리'를 더 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됐음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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