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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난 (蘭), 2달 째 피서 중...

피서 즐기는 양란(洋蘭), 심비디움

[취재파일]난 (蘭), 2달 째 피서 중...
대관령. 강원도 강릉시와 평창군을 잇는 해발 832미터의 고갯길이다. 동해바다와 직선거리가 고작 20Km 정도 밖에 되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표고 차는 무려 800미터를 넘는다. 그래서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와 폭설이 잦고, 여름엔 상대적으로 시원한 독특한 기후가 나타난다. 일 최저기온이 측정되기 시작한 1973년 이후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열대야가 나타나지 않았고, 낮 최고기온도 올여름 30도를 넘은 날이 단 하루(8월 11일) 밖에 없을 만큼 시원한 곳이다. 진정한 피서지가 아닐까?

우리가 미처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기도 전인 지난 6월 하순부터 이곳에는 수많은 피서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수도권과 충청지역에서 차를 타고 찾아왔는데 7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 차례차례 도착한 피서객 숫자가 거의 8만에 달한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이 피서객들은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이곳에만 머물면서 피서를 만끽하고 있다. 2달이 넘는 여유로운 피서. 우리가 늘 꿈꿔왔던 피서 법이기에 많이 부러워할 법도 하지만 다행히(?) 이 피서객들은 사람이 아니다.

심비디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기 만한 양란의 일종이다. 모양과 색상이 다양하고,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데다 알면 알수록 많은 종류의 이름이 나타나서 우리를 조금 당황스럽게 하는 식물. 이 심비디움이 바로 대관령에서 호젓한 피서를 누리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비닐을 걷어내고 대신 차광막을 친 하우스 25동 1만 6천여 평방미터 면적에 8만개 가까운 심비디움 화분이 빼곡히 놓여 있다. 한국 화훼농업협동조합이 여름 동안에만 운영하는 심비디움 사업장이다. 온전히 심비디움의 피서를 위해서 말이다. 농민들은 수백 Km의 거리를 수십 차례씩 왕복하며 심비디움을 실어 날랐고, 2-3주마다 찾아와 비료와 거름을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왜? 이 심비디움은 모두 귀한 몸들이다. 이번 여름에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만 9월부터 각자의 농장으로 돌아가 내년 1월 중국으로의 수출을 준비할 수 있다. 심비디움은 품종에 따라서 노랗고 붉은 계통의 꽃을 화사하게 피우는데 이 색상 때문에 중국인들이 이 꽃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에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농민들은 이 시기에 맞춰 튼튼하고 예쁜 꽃이 피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여름 피서가 필수다. 심비디움이 꽃을 피우려면 3년 동안 정성 들여 키워야 하는데 여름을 제대로 나지 못한다면 농민들은 3년 농사를 한 순간에 망칠 수도 있다고 한다.
양란

심비디움은 그 자체가 하나의 품종이 아니라 식물분류학상의 속(屬, genus)명이다. 그러니까 심비디움 속(屬)에 속한 모든 종(種, species)을 총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양귀비”나 “와인 샤워”, “레드 썬”, “피스 인 더 월드” 등의 이름은 모두 심비디움 속(屬)에 속한 하나의 품종을 형태나 색상에 맞춰서 이름 붙여 놓은 것이다.

심비디움은 원래 동남아시아나 중국, 호주 등 아열대 지역에서 자라던 식물인데 유럽에서 육성되거나 개량돼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습하고 선선한 곳을 좋아하고 추위에 강해서 무더위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관령에서 2-3달 피서를 보내다 보면 튼튼하게 자라나 겨울부터 빛깔 좋고 건강한 꽃을 피우게 된다고 한다. 피서를 가지 못하면 사람도 능률이 떨어지듯이 심비디움도 꽃을 잘 못 피우거나 피워도 물러지거나 쉽게 썩는다고 한다.

농민들은 내년 1월로 다가온 춘절을 크게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지도층의 사치 근절 분위기 때문에 춘절 수출 실적이 아주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비디움은 중국 현지에서도 재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재배기술이 훨씬 더 좋다고 한다. 특히 내년 춘절은 올해보다 열흘 정도 빨라서 개화 시기 조절 능력이 뛰어난 우리 농민들이 중국 농가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심비디움 내수 시장이 아직 작은 편이라서 수출에서 타격을 입으면 농민들의 손해가 막심하다. 이 무더운 여름날 정작 농민들 자신들은 쉽게 떠나지도 못하는 피서를 심비디움에게는 2-3달씩 줘 가면서 지극한 정성을 쏟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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