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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 시내에 동굴?…'네거티브 문화재'는 어떻게

[취재파일] 서울 시내에 동굴?…'네거티브 문화재'는 어떻게
-소설 '방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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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관은 절을 하려하였으나 비좁아서 절을 할수가 없었음으로 잠깐 무릅을 굽혀 꾸는것으로 절을 대신하였다. 향로를 못가져온것과 향상에 놓았던 축문을 잊고온것을 깨달았으나, 김의관은 창임이더러 가서 집어오라고는 못하였다.

축을 부를 절차에 가서 김의관은 눈을감고 입속으로만 축문을 외웠다. 그래도 할 절차는 이럭저럭 다하였다. 첨작도 하고나서 합문을 생각하였으나 이것이 방공호 속인것을 생각하고는 입맛을 쩍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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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야 미쓰로(香山光郞)으로 창씨개명했던 춘원 이광수, 그가 194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방공호]의 한 대목입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조상 모시기를 중시하는 김의관, 이날도 증조부 제삿날이었는데 갑자기 공습경보가 울리기 시작, 가족들과 실랑이하다 결국은 방공호로 옮겨가 거기서 제사를 지내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은 비웃고.. 마지막에 김의관이 조선옷 입기를 고집하고 공습경보가 울렸는데도 굳이 제사를 지내야한다고 고집부리면서 세상 물정 몰랐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친다...

위에 발췌해온 부분은 김의관이 방공호로 들어온 뒤 제사를 지내는 장면입니다.(원문을 그대로 옮겼기에 '무릅' 등 현재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방공호 1만 개.. 전람회도 개최

다음은 1941년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일신보]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1940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된 뒤 광복 때까지 유일한 우리말 일간지였다고 합니다.)

2월 26일자, 지금의 서울인 경성의 한 백화점에서 방공호 전람회가 열렸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일제 방공호
방공호는 이러케
-삼중정서대전람회

총독부방호과에서는 시국아래 일반국민이반드시알어두어야할방공의지식을 보급식히고저 조선방공협회와 국민총역조선연맹의후원을어더서 이십오일부터 부내삼중정 육층에서방공호 전람회를열엇는데 이전람회는 오는삼월이일까지게속된다는바 진열품은 방공호모형십수종과 애국반을단위로한피난과대피의방공호등 국민이알지안어서 안될 지식을해득하도록외엿스며
참관하는사람에게는 방공호를 맨드는방법이라는적은책자까지나누어준다고한다


(방공호는 이렇게-삼중정(당시 백화점 이름)서 대전람회

총독부 방호과에서는 시국 아래 일반 국민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방공의 지식을 보급시키기 위해 조선 방공협회와 국민총력조선연맹(총독부 차원에서 조직한 친일단체로 하부 조직 중 하나가 가구 10호 단위로 구성된 애국반)의 후원을 얻어서 25일부터 (경성)부내 삼중정(백화점) 6층에서 방공호 전람회를 열었는데 이 전람회는 오는 3월 2일까지 계속되며 진열품은 방공호 모형 십수 종과 애국반을 단위로 한 피난과 대피의 방공호 등 국민이 알아야할 지식을 얻도록 하였으며 참관하는 사람에게는 방공호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소책자까지 나누어준다고 한다)

4월 5일자에는 경성부에 1만 개의 방공호를 만들 계획이라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일제 방공호
방공호 1만 축조
-1애국반 1방공호 계획

사전에 방공호를만드러 공습에서오는 재해를미연에방지하자고 경성부당국에서는 얼마전부터 정총대를 동원시켜 방공호축조를독려하고잇는바 이보다 실제로 손을거더쥐고 지하실을만들사람은 애국반원들이라하며 사일에는부당국으로부터 방면훈련부장에게 애국반들은 반마다 하나이상의 방공호를 축조하여 만일의경우가잇슬경우에 재해방지에염려가 업게하라는 명령을 나리고잇다 방면훈련부장은 그미테거미줄가티 늘어잇는 애국반에게 즉시 명령을전달하여 1만여애국반이 총동원이되어 방공호축조에 착수케 할터인데 이게완성되는날에는 부내에는1만여이상의 방공호가만드러저 철옹성가튼 방공도시가될것으로 기대된다


(방공호 1만 축조-1애국반 1방공호 계획

사전에 방공호를 만들어 공습에서 오는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경성부 당국에서는 얼마전부터 정총대(지금의 통반장격)를 동원시켜 방공호 축조를 독려하고 있는데 이보다 실제로 손을 걷어부치고 지하실을 만들 사람은 애국반원이라 하며 4일에는 부 당국으로부터 방면훈련부장에게 애국반들은 반마다 하나 이상의 방공호를 축조하여 만일의 경우 피해 방지에 염려가 없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방면훈련부장은 그밑에 거미줄 같이 있는 애국반에게 즉시 명령을 전달하여 1만여 애국반이 총동원되어 방공호 축조에 착수하게 할텐데 이게 완성되는 날엔 부내에 1만여 이상의 방공호가 만들어져 철옹성 같은 방공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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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개의 방공호가 실제로 얼마나 만들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런 기사로 미뤄볼 때 일제가 1945년 광복 이전까지 방공호 건설을 계속 독려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그 많던 방공호는 다 어디로?

이광수의 소설에서 보듯, 기사에서 보듯, 당시 집집마다 하나씩은 아니었더라도 수백에서 수천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이 방공호들, 다 어디로 갔을까요?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후 6,70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전쟁 발발로 서울은 폐허가 된 뒤 다시 재건됐고 그런 과정에서 일제 당시의 방공호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입니다. 다음으로는 꼭 전쟁 때문이 아니라 서울 곳곳을 개발하고 정비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필요가 없어 보이는 방공호는 부수고 그 위에 새로운 건물 등을 지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공호가 있건 없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냥 어딘가에 남아 있을 가능성입니다.

일제 방공호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문화재청이나 이런 일제 당시의 방공호를 굳이 파악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전국에 혹은 서울에 일제 때 방공호가 얼마나 만들어졌는지,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진 못합니다. 동네 주변에서만 누구네 집쪽에 동굴이 있다더라 그런 식으로 소문이 나 있는 정도죠.

서울 삼청동에서만 일단 동굴, 방공호 7곳이 확인됐는데 이는 아마도 당시 고관대작이 그쪽에 많이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일부 방공호의 경우, 수십 미터 길이로 파놓은 건 공습 등을 대비해 잠시 피신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땐 그 굴을 통해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용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필운동 쪽 전통가옥 뒷뜰이나 용산 문화원 부근, 옛 경희궁 터에서도, 작은 골방에서 대규모 시설 크기에 이르기까지 일제 때 방공호가 발견됐습니다.

일제 방공호
직접 가서 보니 일제 방공호라고 해서 특별해보이는 건 없었습니다. 긴급 상황에 피신하기 위한 시설이니 별난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투박해 보이는, 시멘트 구조물입니다. 이 방공호가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사료로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할 겁니다. 그렇다면 일제 방공호에 대해 전국적으로 조사라도 벌여서 현황을 파악한 뒤 제대로 관리하고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 문화재로 지정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네거티브 문화재', 어떻게?

자랑스런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부끄럽고 때론 치욕스런,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이런 문화재를 이른바 '네거티브 문화재'라고 합니다. 일제 때의 방공호도 '네거티브 문화재'라고 볼 수 있겠죠. 일본에 의해 강점당했던 우리로서는 일제 식민지 당시의 많은 유산이 '네거티브 문화재' 논란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18년 전엔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당시 중앙박물관을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철거했고(국민 지지율 90% 넘었으나) 2008년 즈음엔 구 서울시청 철거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고 최근엔 친일 인사들의 유물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하려다 반대에 부딪쳐 보류됐죠. 이번 일제 방공호 기사에 달린 댓글에도 다 폭파시키거나 없애버려야 한다는 의견이 꽤 많았습니다.

네거티브 문화재도 온전히 보존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분들은 흔히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예로 듭니다. 대학살이 벌어졌던 현장을 보존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함으로써 나치가 그저 유태인이나 피해본 유럽 여러 나라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인류의 공적'이었음을 알리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른 게 최근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따라 일본에서는 전쟁과 전범까지 미화하려는 양상이 보이고 있다든지 친일파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역사 교육을 등한시하면서 갖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라든지... 네거티브 문화재를 과연 올바른 시각에서 제대로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 문화재 당국에 썩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해두면 엄연한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소유주가 맘대로 훼손하거나 변형하거나 없애버리거나 말 그대로 '내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네거티브 문화재'에 대한 신중하면서도 빠른 판단, 그리고 실행이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일제 방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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