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숭례문 퍼포먼스 '해프닝'

이명호 작가의 숭례문 프로젝트 ‘불발’

[취재파일] 숭례문 퍼포먼스 '해프닝'
18일 일요일 새벽 2시, 주변 건물의 불은 거의 다 꺼져있고 인적도 드문 숭례문 앞 도로에 8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숭례문 뒤쪽 도로에는 교통경찰과 모범운전자 10여 명이 나와 도로 통제를 시작했다. 이윽고 숭례문 바로 뒤쪽, 통제되고 있는 도로변에 거대한 크레인 3대가 자리를 잡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나무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 이명호가 있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촬영만 있는 게 아니다.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설치작업도 함께 이뤄진다. 작가는 나무 뒤에 하얀 캔버스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작가의 사진 속에 들어온 나무는 ‘평범한 나무’가 아닌 ‘작품 속 나무’가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사진 버전이다.

‘나무 작가’ 이명호가 이번에는 숭례문을 선택했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된 뒤 5년 3개월의 복구 과정을 거치고 지난 5월 ‘회복’된 모습을 보여준 숭례문. 다시 돌아온 숭례문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숭례문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숭례문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세우고 동 틀 녘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겠다는 것이다.
숭례문 3_500
그래서 주말 신새벽에 숭례문이 떠들썩했던 것이다. 국보 1호에 펼쳐지는 퍼포먼스인만큼 엄청난 준비가 필요했다. 우선 준비기간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문화재심의위원회까지 거쳤다. 숭례문 뒤에 펼칠 캔버스의 크기는 가로 45m, 세로 18m, 무게만도 1.2톤에 달했다. 혹시나 숭례문을 덮쳐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캔버스를 치는 위치를 안전펜스 뒤쪽으로 잡고, 호주 기술자들에게서 캔버스를 받칠 비계의 구조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 디데이 나흘 전, 경기도 용인의 한 사설 야구장에서 예행연습까지 마쳤다. 크레인을 설치해서 캔버스를 들어올리기까지 2시간 남짓 걸렸다. 그동안 나무 작업을 워낙 많이 해보긴 했지만, 문화재에 해보는 건 처음이어서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사상 초유의 구경거리였기에, 취재진의 관심도 대단했다. 방송사들은 작업을 시작한 자정부터 현장에 나와 과정을 하나하나 다 담고자 했다. 한 방송사에서 보통 2팀씩 나와 다시는 못 볼 프로젝트 과정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는 ‘헬리캠’이라는 특수장비까지 동원하고 나섰다. 헬기에서 찍은 그림처럼 하늘에서 내려다 본 숭례문의 모습을 담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 크레인으로 캔버스를 설치해, 4시부터 7시 사이 사진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9시부터 일반인 관람이 시작되므로, 작업을 마친 뒤 7시에서 9시 사이 철수가 완료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크레인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나 싶었다. 그런데, 설치 예정 시간 2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작업은 계속 제자리였다. 비계를 짜는 것 같긴 한데, 진전되는 건 하나도 없어보였다. 애초 해가 뜨기 시작해 어스름한 아침에 사진을 찍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온통 밝은 아침이 됐는데도 캔버스는 올라가지 못했다. 이제 곧 된다, 된다, 된다, 캔버스가 올라가기만 하면 사진 작업에 들어간다, 스태프들은 기대와 희망을 담아 얘기는 거기서 그치고 말았다. 크레인이 캔버스를 매단 비계를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던 중, 오전 7시 30분쯤 갑자기 ‘덜컹’ 하면서 바닥에서 조금 올라가나 싶던 비계가 무너져 버렸다. 조금 올라간 상태인데다, 숭례문과는 거리가 좀 있어서, 다행히 숭례문이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화재청 관계자는 흠칫 놀란 모양이다. 무전기를 통해 “당장 촬영을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담당자는 프로젝트 기획자와 작가를 찾았다. 한참 동안 논의를 벌인 끝에, 8시쯤 기획자들이 지쳐있는 취재진 앞에 나타나 “프로젝트는 여기서 끝낸다”고 포기 선언을 했다.
숭례문 실패_500

“문화재의 안전을 위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숭례문의 안전에 민감한 문화재청이기에, 크레인이 덜컹하는 순간 심장까지 덜컹 내려앉았을 것이다. 프로젝트팀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작업을 하다보면, 크레인이 내려앉을 때가 많다. 하지만, 다 문제없이 진행이 된다. 그래도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눈에 눈물이 맺힌 듯 했다. 그래도 애써 담담해한다. “파인아트(순수미술)를 하는 사람으로서, 국가의 이미지와 상징을 구축하는 작업에 참여했다는 데에 큰 의의를 둔다. 비록 프로젝트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조차 너무나 소중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숭례문 문의 절반 정도 올라온 캔버스를 바라보며 “저만큼 올라온 것조차 예술”이라며 웃음 짓는다.

장장 1년 6개월에 걸친 준비기간, 2억 원이 넘는 예산, 50여 명의 스태프까지....... 국보 1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규모 아트 프로젝트는 이렇게 ‘하룻밤 꿈’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문화재를 훼손할 수도 있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일 수가 있느냐고 비난을 하기도 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따끔한 얘기들도 나왔다. 하지만, 고이고이 모셔만 두는 것이 ‘문화재 보호’이고 ‘관리’는 아닐 것이다. 안전을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는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문화재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오늘 일을 밤새 묵묵히 지켜본 숭례문도 내심 아쉽지 않을까 싶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