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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2013년 카이로에서 1980년 광주를 보다

[월드리포트] 2013년 카이로에서 1980년 광주를 보다
기자생활 17년차,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들에 비하면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제가 헤아린 죽음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현장에서 목격한 죽음이 그랬고, 카이로 특파원 부임 이후에 경험한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까지 기사로 쓴 죽음의 숫자가 한 20만쯤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 같이 극단적인 인간성의 파괴,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현장들이죠.

이 와중에 카이로 한복판을 피로 물들인 이집트 군부의 시위대 무력진압은 앞서 경험했던 죽음들과는 조금 다르게 제 가슴을 무겁게 합니다.

5.16 쿠데타와 닮은 나세르의 집권과정, 무바라크와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까지 유독 한국과 비슷한 현대사의 궤적을 그려온 이집트. 최악의 유혈참극인 이번 ‘카이로 학살’을 목격하며 저는 1980년 5월 광주를 떠올렸습니다.

1> 저항
80년 광주의 저항은 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 총 든 군인은 정치하지 말라는 당연한 헌법적 요구였죠.  2013년 카이로의 저항 역시 쿠데타에 반대하고 선거로 뽑힌 정부를 복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무르시 정권이 이슬람 색채를 강화하고 경제난 해결에 실패하는 등 실정도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거로 뽑힌 정부라는 본질이 바뀔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80년 광주에서처럼 총 든 군인들은 2013년 카이로에서 무자비하게 저항을 짓밟았습니다.

2> 배신
오랜 외세의 수탈과 왕정의 무능에 지쳐 있던 이집트 국민들에게 비록 쿠데타이긴 했지만 왕정을 폐지하고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는 등 근대국가의 초석을 놓았던 나세르 대통령과 집권기반인 군부는 오랫동안 기를 펴지 못하던 이집트 국민들의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진영에 대해선 가혹한 탄압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대규모 학살이 벌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독재자 무바라크의 축출 과정에서 절묘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냅니다. – 사실 시민혁명 당시 군부의 가혹행위 등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군부의 막강한 영향력 앞에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이슬람 집권 세력의 진실 규명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죠 - 지난 6월 무르시 대통령의 축출 과정을 주도한 군부를 많은 이집트 국민들이 지지한 것도 그것이 진실에 부합하느냐와 관계없이 이런 전통적이고 굳건한 군부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카이로에서 벌어진 학살은 이런 군부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이번 살육으로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쿠데타를 감행했다는 군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고, 살육당한 진영은 이제 군부와는 화해할 수 없는 정치적 배신감 속에 가슴 깊이 보복의 칼날을 품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군부는 이런 반대세력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이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한 억압적 방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집트 민주주의가 거꾸로 갈 수 밖에 없는 외통수에 빠져든 것입니다.  1980년 저항에 나섰던 광주시민들이 느꼈던 군에 대한 배신감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미완의 실패’로 마무리된 이후 대학가에 군과 경찰이 상주하고 혹독한 민주적 탄압 속에 민주주의 겨울을 겪었던 우리의 경험은 아마도 이집트 시민들이 겪을 머지않은 미래가 될 것 같습니다.

이집트 유혈사태 캡


3> 고립
1980년 광주는 무섭도록 고립돼 있었습니다. 외부와의 통신과 교류가 차단된 이들의 저항을 언론들은 전두환 신군부의 발표를 앵무새처럼 옮겨 적으며 ‘북괴에 포섭된 폭도들의 난동’쯤으로 왜곡했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몇몇 외신기자들의 목숨을 건 취재 덕에 뒤늦게나마 빛을 보게 됩니다.

2013년 카이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알 자지라 등 몇몇 외신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이집트 언론들은 무력진압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군부의 편에 서고 있습니다. 이런 이집트 언론인들은 지난 달 군부 기자회견장에서 쿠데타에 비판적인 알 자지라 기자들을 내쫓기도 했습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기자가 기자를 내쫓는 장면은 민주주의에 적응하지 못한 이집트 언론들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무르시 집권 시절 내내 이슬람 성향 인사들이 국영 언론사들을 장악하고 비판언론을 고소 고발로 옥죄면서 이집트 언론계는 이슬람 정권과 불편한 관계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6월의 무르시 대통령 축출을 ‘쿠데타’라고 일컫기라도 하면 일부 이집트 언론인들과는 공격적이고 거친 언사가 오가는 싸움에 가까운 논쟁을 피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기에 무르시 축출 이후 이슬람계 위성채널들이 대거 폐쇄된 반면 거대자본들이 새로 만든 민영방송들은 군부가 제공한 자극적 화면들을 몇 번씩 재방송하며 이슬람 진영을 고립시켜 왔습니다.

궁극적 ‘진실’ 대신 이익에 부합하는 ‘사실’만이 편취되는 현실은 1980년 광주의 경험과 2013년 카이로의 경험이 또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4> 미래
1980년 광주의 비극을 제물삼아 권력을 쥔 신군부와 그 후예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 구도를 바꾸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수많은 용공조작 사건들이 그랬고, 선거 국면에선 어김없이 등장했던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조작이 그랬습니다.

87년 대선을 거치면서 고조된 지역감정은 한국정치와 사회인식에 마치 끝을 알기 힘든 아카시아 뿌리처럼 휘감겨 지금까지도 거대한 ‘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 ‘일베’로 상징되는 일부 극우진영이 광주의 아픔을 조롱하는 행태가 어린 세대들에게 까지 퍼져가는 상황은 그래서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3년 카이로 학살 이후 한층 권력의 키를 강하게 쥘 이집트 군부도 이런 상징 조작에 심혈을 기울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쿠데타로 축출된 이슬람 정권 인사들에게 이슬람 과격파와 테러분자라는 딱지를 붙이기 위해 이미 온갖 수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물론 일정 부분 무르시 정권 인사들과 이슬람 과격파들의 연계가 사실로 들어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민주적 선거로 선출됐다는 무르시 정권의 정통성을 뒤엎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가장 폭력적이고 잔혹한 방법으로 정치적 테이블에서 거세된 무슬림 형제단 등 이슬람 세력이 과연 선거를 포함한 제도적 틀을 통한 집권 가능성에 다시 희망을 걸 것이냐는 것입니다. 선거에서 이겨도 군부가 뒤집으면 그 뿐인 현실이 반복된다면 그들은 제도정치 참여 대신 다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겠죠.  국제적 신망이 두터운 노벨상 수상자 엘 바라데이도 “유혈참극으로 이득을 볼 진영은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분자들 밖에 없다”는 군부 비난 성명을 내고 부통령직에서 사퇴했습니다.

결국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최악의 참사는 많은 이들에게 ‘아랍의 봄’이 다시 ‘겨울’로 역행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인 역사적 사건이 될 것 같습니다. 마치 80년 서울의 봄이 5월 광주 이후 겨울로 바뀐 것처럼 말이죠. 물론 짧은 겨울과 이른 해빙을 기대해 보지만, 복잡하게 얽힌 이집트 안팎의 상황은 낙관적 기대를 쉽지 않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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