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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봉준호 감독,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경계하는 이유

[인터뷰] 봉준호 감독,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경계하는 이유
개봉 9일만에 전국 480만 명을 동원한 영화 '설국열차'는 그야말로 폭주 기관차 같다. 2013년 한국영화 중 가장 뜨거운 작품이 되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화제를 모으리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설국열차'를 대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묘사하자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중"이다. 

영화를 향한 호평과 혹평의 화살은 대체로 연출자인 봉준호 감독에게 집중되는 분위기다. 어떤 이들은 "역시, 봉테일!"이라고 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믿었던 봉준호마저…."라고 말한다. 어쩌면 고속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설국열차'의 동력은 '논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설국열차'는 개봉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무수한 떡밥을 투척했다. 영화 자체에 대한 호불호부터 작품성에 대한 극과 극 평가, 장면 장면에 대한 다양한 해석까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에서 이렇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은 없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관객들로부터 '투 썸즈 업'(Two Thumbs Up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으로 호평을 뜻하는 제스추어)이라는 천편일률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일까.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를 둘러싼 다양한 반응들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는 "모든 관객이 좋아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격렬할 줄은 몰랐다"고 웃어 보였다. 

'설국열차'의 진짜 윌포드, 영화를 설계하고 가동한 단 한 명의 독재자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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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살이 많이 쪘다. '괴물' 때 인터뷰 사진과 비교해보니 그땐 호리호리했다고 여겨질 정도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체질에 잘 맞았던 건가?

A. 체코로 촬영을 떠날 때 96kg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108kg이 됐다. 촬영하면서 스트레스성 폭식을 많이 했다. 게다가 스태프 대부분 서양 사람들이다 보니 밥차 메뉴도 서양식이었다. 최근 몸무게를 재면서 '아 끝장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백팔번뇌가 들더라. 요즘 자체적인 감량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웃음)

Q. 로케이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왜 하필 체코를 선택했나. 봉준호 감독의 글로벌 프로젝트 영화 정도 되면 우리나라 지자체에서도 지원하겠다는 곳이 많았을 것 같은데?

A. 한국에서 찍을 생각도 했었다. 이를테면 일산 킨텍스 같은 곳 말이다. '원작 속 기차는 1,001칸인데 영화 속에서 이를 다 구현할 수 없고, 우린 대략 100여 칸 정도로 구상했다. 이조차도 영화에 다 등장하는 게 아니라 최대 4칸 정도 붙이려고 했다. 한 칸에 25m라 쳐도 100m인데 넓은 세트가 필요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스튜디오 대여료가 비싸다. 동유럽 쪽을 물색하다가 할리우드 중,저예산 액션영화를 많이 찍는 체코의 바란도프 스튜디오(이곳에서 찍은 대표적인 할리우드 영화로는 '헬보이'가 있다)에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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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트의 규모와 정교함이 놀랍더라. 스크린에 구현된 기차가 정말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될 정도로. 이 세트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태프들이 고생했을지 눈에 보이더라.

A. 실감 나는 기차의 느낌을 주위 위해 열차를 상하좌우 자유롭게 구동시키는 초대형 짐벌(Gimbal)을 설계하고 제작했다. 특효팀 바란도프 플래쉬(Barrandov Flash)가 내가 직접 그린 기차 구동의 시뮬레이션 도면을 기초로 각 칸 아래, 중앙 부분에 특수 모터를 설치하고, 흔들림의 빈도수와 강약까지 조정할 수 있도록 칸마다 6개의 에어 스프링을 장착하는 식으로 대규모 기차 짐벌을 탄생시켰다. 그 결과 실제 트랙을 달리는 기차처럼 실감 나게 흔들리고 곡선 구간을 통과할 때는 뱀처럼 휘며 연결된 앞칸의 공간이 시야 전반으로 깊숙이 들여다보이면서, 좁고 긴 기차 특유의 공간감까지 구현할 수 있었다. 

Q. 세트 촬영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아무리 하나의 세계를 구현한 세트라지만, 하루종일 그곳에서 촬영했을 생각을 하니 노고가 적잖았을 것 같다. 

A. 처음엔 프라하가서 찍는다니까 충무로 영화인들이 "와~"하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두 달 동안 매일매일 시커먼 세트장에 갇혀 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더'때는 청정의 산과 들을 넘나들며,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과 함께 했었는데...아침마다 봉고차가 스태프들을 태워서 스튜디오에 데려다 주는데 홍경표 촬영감독은 출근할 때마다 "우리 사북탄광으로 끌려가는 광부 같다"고 얘기하곤 했었다.(웃음)

Q. '괴물'에 이어 이번에도 송강호-고아성과 함께 작업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두 사람은 미리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A. '마더' 때도 김혜자 선생님과 영화를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썼듯, 이번 영화도 시나리오 쓰기 전에 두 배우에게 캐스팅 제안을 먼저 했다. 어차피 '설국열차'가 노아의 방주처럼 여러 인종, 여러 국적의 캐릭터가 배치 될 것으로 구상했기에 좋은 배우를 미리 세팅해놓고 싶은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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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 배우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이 봉준호 감독에게 주는 영감이란 어떤 것인가?

A.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멋진 배우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어하는 건 모든 감독의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송강호 선배는 나에게 "내 최고작은 '살인의 추억'이야"라고 말하는 데 그게 진심이었으면 좋겠다. 이창동, 박찬욱 감독님 앞에서도 꼭 그렇게 얘기하시길(웃음). 나중에는 나와 송강호 선배가 원맨쇼를 하는 영화도 한번 해보고 싶다. 

고아성도 너무나 좋은 배우다. '괴물' 이후에 찍은 '여행자'를 보고 강호 선배와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싶었다. 요나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어떤 신비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인데  그 역할엔 고아성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Q. 틸다 스윈튼의 캐스팅 스토리야 널리 알려진 얘기고, 크리스 에반스도 먼저 출연 의사를 보였다는데 사실인가? 관계자 말로는 유명세와 비교하면 합리적인 개런티에 캐스팅 했다던데?

A. 다행히도 '어벤져스' 전에 계약이 성사됐다.(웃음). 크리스 에반스는 이미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무렵이었는데 먼저 우리 작품에 관심을 두고 연락을 해왔더라. 유명 배우라고는 하지만, 예외 없이 오디션을 봤고, 여러번의 미팅을 거쳤다. 오디션을 보러온 배우 8명 중 한명이었다.

크리스가 대작 영화에 출연하며 얼굴이 알려지긴 했지만, 알고 보니 그 사이사이에 작품성 있는 인디 영화도 많이 했더라. 그는 촬영 전까지 '커티스'라는 캐릭터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촬영하면서 그 돌 같은 근육은 허름한 의상 아래 꼭꼭 숨겼다. 그와의 작업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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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에 대한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시사회 이후부터 '정치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아무래도 메시지가 돌출돼있고, 표현방식이 너무 직접적이다 보니 나올 수밖에 없는 평가 같은데?

A. 맞다. 어떻게 보면 '설국열차'는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영화다. 그런데 SF영화라는 장르 안에 있는 거니까 그 안에서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지 않나. 학생이면 학생, 국민이면 국민 무인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시스템 안에 놓이게 되는데 '과연 이걸 박살하거나 탈출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커티스는 시스템을 박살 내고자 하고, 남궁민수는 시스템을 박살 내는 건 의미가 없고 그 시스템 밖으로 탈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이 딜레마에 처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에겐 시스템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한편 포근히 안기고 싶은 욕망이 있다. 프로틴 블록을 만드는 인물도 커티스의 반란을 응원하지만, 함께 하자는 제안은 거절하지 않나. 또 커티스도 마찬가지로 영화 후반부 큰 갈등을 보여준다.

Q. 개인적 생각으론 당신 작품 중에서 가장 쉽고 단순한 영화라고 여겼는데 관객들은 여전히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의도한 것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도 분명 있을 텐데 그런 해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A. 사실 의도하지 않은 것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봉테일'이라고 하는데 작품을 만들고 난 뒤 오히려 똑똑한 관객들에게 해석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살인의 추억' 때 영화를 해석한 다양한 글들이 있었는데 그 중 50%는 나도 처음 발견한 의미들이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경계하는 이유는 스스로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을 의식하고 작품을 만들게 될까봐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떡밥'이나 '미끼'를 던지게 되면 작품이 치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스트레이트한 작품을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설국열차'는 돌직구 영화다.

Q. '설국열차'에 대한 관객들이 해석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미국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의 리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한국 관객의 지적 수준을 존중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라는 글을 있었는데, 굉장히 공감했다.

A. 우리나라 관객들 정말 놀랍다. 어떨 때는 관객의 해석이 기막히게 좋아서 해외에 나가서 인터뷰할 때 써먹기도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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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신이 영화가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창작자로서 만끽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 아닐까? 

A. 그건 그렇다. 가랑비에 옷 젖듯 영화를 보고 나서 뭔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건 좋다. 어떤 영화는 끝나고 화장실 가는 사이에 그 감상이 휘발되기도 한다. 그런 단순한 재미를 위해 나도 블록버스터를 즐겨본다. 하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관객의 머릿속에 뭔가 맴돌고, 잘려고 누웠는데 영화 속 어떤 장면이 자꾸 생각나고 이런 건 좋은 것 같다. 다만 영화를 통해 어떤 철학을 내세우고, 메시지에 대해 설교하려고 하는 건 싫다. 

Q. 원작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 얼개 외에 캐릭터 및 세부 스토리는 모두 창조한 것이다. 배우들의 캐릭터와 연기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흥미로운 장면도 꽤 많이 등장했다. 인물의 성격과 향후 행동을 보여주는 신(SCENE) 말이다. 영화 초반 메이슨(틸다 스윈튼 분)이 구두를 가지고 질서와 균형을 설파하는 장면이 무척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왜 하필 구두였을까?

A. 영화를 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메이슨은 속물적인 사람이다. 영화에서 그리진 않았지만, 난 메이슨이 원래 머리칸 사람이 아닌 중간 칸 출신의 인물로 설정했다. 그랬던 그가 윌포드의 눈에 띄어 신분 상승한 케이스로 말이다. 돼지가 완장 차면 무섭다고, 메이슨은 자신의 출세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인물이다. 그러니 되지도 않는 털코트, 하얀색 정장 같은 걸 입고 자신의 신분을 뽐내는 거다. 과시적인 연설을 하면서 구두를 들고 "이건 280mm 짜리 혼란이야"라고 말하는 대사도 그런 캐릭터를 바탕으로 설정한 것이다.

Q. 이를테면 복면 쓴 군인들이 도끼로 생선의 배를 가르는 장면 같은 건 좀 지나치게 상징적인 신처럼 느껴졌다.

A. 대부분의 관객이 알아챘을 테지만 '이제 도끼가 피 맛을 보게 될거야' 이런 의미로 넣은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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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설국열차'에 대한 관객의 평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있다면?

A. 일일이 다 보지는 못했는데, 어떤 관객이 트위터에 "영화를 보고 지하철로 귀가하는데 앞으로 뛰어가서 기관사를 만나고 싶더라"는 후기를 썼더라. 그 맨션을 보고 신나게 웃었다.

Q. 한국에서의 극과 극 반응과 달리 북미 쪽에서는 극찬이 대부분이다. 해외 개봉을 앞두고 마음이 조금은 놓일 것 같다.

A. 미국 영화계에서는 버라이어티지 평가가 아주 중요하다. 이번에 리뷰를 써준 스콧 파운다스라는 기자는 그곳에서도 영향력이 엄청난 사람이다. 그 때문인지 기사가 나간 뒤 미국의 스태프들로부터 "축하한다"는 메일을 많아 받았다.

Q.  '설국열차'가 엄청난 속도로 흥행 중이다. 과연 '괴물' 신화를 깰 수 있을까?

A. 글쎄, 일단 2주차 지나봐야 알 것 같다. 관객의 사랑은 받아도 받아도 늘 고픈 것 같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와 비교하면 '설국열차'의 흥행에 대한 콘트라스트가 엄청나게 느껴진다. '플란다스의 개' 개봉 당시 명동의 한 극장에 몰래 숨어서 영화를 봤는데, 그때 관객이 나 포함 4명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내 영화가 말이 안되는 것 같아 얼굴이 빨개져 도망친 기억이 있다. 올해 '살인의 추억' 개봉 10주년인데, 그래서 인지 '설국열차'의 개봉과 흥행이 더 뜻깊게 다가온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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