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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젊음과 열정은 있지만 '배려'가 없다"

[취재파일] "젊음과 열정은 있지만 '배려'가 없다"
 강렬한 태양과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며 여름을 즐기는 피서객들. 경포해변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변으로 가보니 피서객들의 웃음소리보다 호루라기 소리가 더 많이 들렸습니다. 해양경찰과 해병대 안전요원들이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호루라기를 불면서 "나오세요. 나오세요"라고 수없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수영한계선을 넘거나 그 근처에서 위험하게 노는 피서객들 때문입니다.

"파도 때문에도 그렇고 저쪽으로 넘어가보고 싶은 오기도 생겨서 넘어가는 거 같아요."

"파도 때문에 넘어질 수 있는데 그런 스릴로 노는 거죠."

 수영한계선을 넘는 피서객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대강 정리가 됩니다. 일단 젊거나 어린 학생입니다. 그리고 남자입니다. 또, 튜브를 맹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수영실력을 과신하고 있습니다.

"파도가 들어왔다 밀려서 돌아서 나갈 때 사람들도 밀려서 나갈 수도 있고,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나가는 바람이 불면 아무리 해안으로 나오려고 해도 바다로 계속 밀려갈 수도 있습니다."

 해양경찰의 경고입니다. 바다에는 파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수영을 잘하고 튜브가 있다고 해서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튜브표류와 같은 부주의로 819건의 물놀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백사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불편한 모습이 또 보입니다. '담배'입니다. 경포해변은 금연 해수욕장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담배를 필 수도 있는 곳입니다. 그래도 주변을 조금만 생각하고 담뱃불을 붙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백사장에는 수많은 피서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고, 다 피운 담배공초를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백사장에 버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해수욕장 입구에는 에어컨까지 설치된 흡연실이 있었지만 무색해 보였습니다.

"사람들 다 피니까 눈살이 찌푸려지는 점도 어쩔 수 없죠. 피라마라 말을 못하니까.. 제가 불편하니까 제가 자리를 떠요. 요즘 섣불리 말하면 위험해서..."

 경기도 남양주에서 두 딸을 데리고 경포해변을 찾은 한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돌아서는데 모래집을 쌓고 있는 아이들 사이로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청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제 발밑에는 담배공초가 보였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해수욕장을 찾았는데 귀청을 때리는 음악소리에 경찰관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행사해요?"

"아니에요 행사는 무슨 행사요. 매일 밤 이래요. 아주 시끄러워 죽겠어요. 새벽까지 저래요."

 그리고 한 마디 더 붙였습니다.

"한 10시부터 나가보세요.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그랬습니다. 백사장에서는 클럽 음악이 쩌렁쩌렁 울리고 한껏 멋을 낸 젊은 남녀들이 백사장으로 끊임없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음악소리의 중심으로 가봤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 제 느낌은 축제였습니다. 모두들 신나게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열정을 붙태우고 있었습니다. 정말 신나게들 놀았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습니다. 혹시 질이 나쁜 친구들이 괴롭히지는 않는지, 싸움이라도 일어나지 않는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시각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나름 질서 있게 젊음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별일 없네요? 나름 질서 있게 노는데요?"

"지금은 괜찮아요. 이제 한 11시부터 술 먹기 시작하면 또 달라요."

 역시 그랬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백사장은 술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신나게 음악에 열정을 불태웠던 젊은이들 대부분이 백사장에서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껏 멋을 낸 이유도 알거 같았습니다. 모두 흔한 말로 '즉석만남'에 빠져 있었습니다. 백사장은 말 그대로 거대한 클럽으로 변했습니다. 술과 음악. 그리고 즉석만남으로 백사장이 흥청거렸습니다.

"외로워서 여자도 만나게 되고 그런 목적으로 오는 거죠. 술은 많이 마셔요. 각자 (소주) 3병씩은 마신 것 같아요."

 역시 술이 과하다 보니 추태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연인은 휴가 와서 술을 먹고 싸우다 여성이 화를 참지 못하고 술에 취해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즉석만남의 흥에 너무 겨웠는지 남녀가 바다에서 물장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튜브까지 들고 바다에 들어가려고 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경찰이 말리자 빨리 나오라는 경찰을 향해 빨리 안 나가고 천천히 나갈 거라며 경찰을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위험한 폭죽도 등장했습니다. 피서객이 앞에 있는데 그들을 향해서 불꽃을 쏘아대고, 수십 개의 폭죽을 한 번에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흥청거리던 백사장 술판은 새벽 2시가 되면서 강제로 끝났습니다. 백사장 청소를 위해 모두 강제로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었던 백사장은 쓰레기장이었습니다. 먹던 그대로 몸만 딱 일어나서 나가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술병, 과자봉지, 음식물 쓰레기, 돗자리까지. 그냥 그대로 있었습니다. 새벽 2시부터 청소가 시작됐습니다. 쓸고 담고, 줍기를 반복했습니다. 쓰레기차는 얼마 되지 않아 꽉 찼습니다. 경포해변에서는 올해 평일은 최대 15톤, 휴일에는 최대 25톤 정도의 쓰레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해수욕장에는 젊음이 있었습니다. 다소 무질서함도 있었지만,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해 내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젊은이들에게 필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젊은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열정과 즐거움만이 전부라는 겁니다. '배려'가 없어 보였습니다. 노는 건 좋습니다. 이왕 놀 거면 신나게 재밌게 노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렇게 놀 장소가 필요하고 그런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결코 백사장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안 되고 술도 절대 마시면 안 되고 이성도 절대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쉽습니다. 자신의 흥과 즐거움이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흥과 즐거움도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해지면 얼른 가야죠. 여기 밤에 어떻게 가족하고 있어요."

 충남에서 처가인 강릉에 두 딸과 아들을 데리고 피서를 온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어린 아이들도 중년의 아저씨도 같이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 모든 사람은 해수욕장에서 젊은이들 처럼 음악을 즐기고 술도 함께 즐기고 여름 밤바다를 만끽할 권한이 있습니다. 자신이 즐기고 싶은만큼 남들도 똑같이 즐기고 싶은 마음은 같은 겁니다.

해수욕장


"내 아이는 절대 해수욕장 놀러 안보낼거에요."

 즉석만남이 오늘따라 잘 안된다고 하던 한 20대 청년이 한 이야기입니다. 내 아이가 해수욕장에 놀러간다고 했을 때 흔쾌히 다녀오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면, 지금부터 바꾸면 됩니다. 술 마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과음만 안 하면 됩니다. 과음은 항상 추태를 불러옵니다. 담배 피고 싶으면 불편하겠지만 흡연구역에서 피우고 오도록 몸을 좀 움직여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폭죽을 쏘고 싶어도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 한마디 더 나누고, 시원한 바다 바람 느끼면서 한번 참아 보면 어떨까요. 먹은 쓰레기는 내가 정리해서 가다가 쓰레기통에 버리면 됩니다. 멋 부려도 좋습니다. 그런데 짙은 화장과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야 예쁜 여성이 되는 걸까요. 그리고 팔이며 등에 문신이든 헤라든 타투를 해야지만 여름 남자가 되는 걸까요. 젊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겁니다.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상상은 해봅니다. 클럽 음악이 흐르는 백사장. 음악에 빠져 신나게 몸을 흔드는 젊은이들 속에 아이들도, 그 아이들의 부모님도 함께 즐기는 모습. 백사장에 도란도란 앉아 맥주 한잔, 와인 한잔, 샴페인 한잔, 혹은 소주 한잔 가볍게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워하는 가족들로 가득한 백사장.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가는 젊은이들이 밤바다의 정취를 더 깊게 만들어 주는 그런 여름 밤바다를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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