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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 전용기 항로, 'MB' 땐 노출·'GH' 땐 안 됐다는데…

[취재파일] 대통령 전용기 항로, 'MB' 땐 노출·'GH' 땐 안 됐다는데…
‘정승의 말(馬)이 죽으면 문상 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 안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권력 지향적 세태를 이렇게 잘 꼬집은 표현이 또 있을까요? <코드 원(대통령 전용기) 극비 항로, 인터넷에 노출>에 대한 취재 과정에서 청와대 경호실을 상대하다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코드 원의 이동 항로가 인터넷에 생방송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니, 상공은 지상보다 경호가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항로를 그것도 실시간(청와대 경호실은 ‘실시간’이라는 말에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더군요)으로 아무나 볼 수 있다면? 국가 원수의 안전은? 그게 사실이라면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


하지만 생각만큼 취재가 쉽지 않았습니다. 항공 실무자들의 여러 증언과 자료 등을 확보했고 해당 미국 사이트 쪽과 수차례 인터뷰를 가졌으며 심지어 저를 피하기 시작한 취재원들을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면서까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동선까지 인터넷에 노출된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리고 최종적으로 청와대 경호실에 문의했습니다. 캐내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창과 방패의 일합이 시작된 것이죠.

예상했던 대로 경호실은 부인했습니다. 코드 원이 움직였을 때 그 항로가 노출됐다는 건 대통령의 안전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것이고 그 책임은 오롯이 경호실이 져야 하기 때문이지요. 워낙 강하게 부인을 하고 나와 잠깐이지만 취재원들의 증언에 의심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기자인 저는 경호실이 ‘사실은 이렇다’는 설명 중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하나하나 따져봐야만 했습니다. 경호실 역시 기자가 갖고 있는 증거와 자료가 무엇이고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대책 회의를 가졌을 거라 확신합니다.

일회용


다시 경호실과 통화가 됐습니다. 그랬더니 ‘작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해외 순방 시 항로가 인터넷에 노출된 걸 인지하긴 했다’는 생각지도 않은 솔직한(?) 답변이 나왔습니다. 취재원의 증언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습니다. “올해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과 중국 순방 때는 절대 항로가 노출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항로 노출 사실을 인지해 기술적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언제부터 노출돼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박근혜 대통령이 탔을 때부터는 항로 노출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막았는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보안 사항이라 말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보.안. 네. 기자에겐 정말 뚫을 수 없는 두껍고 견고한 방패입니다. ‘보안, 국가 안위’ 등의 표현을 쓰며 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면 기자로선 더는 접근할 방법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문 건너편에서 그들이 정말 잘 해주길, 잘 하고 있기를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고 또 바랄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대통령 경호


청와대 경호실이 거짓 해명을 한 게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안위가 달린 문제라 조직 논리로 대응한 게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다만 ‘MB’ 때는 노출됐지만 ‘GH’ 때는 노출되지 않았다는 솔직한(?) 답변을 듣고 저 위의 속담이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제 이런 기분과 느낌은 너무 오버인 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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