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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어느 홍위병 아들의 눈물 어린 사모곡

[월드리포트] 어느 홍위병 아들의 눈물 어린 사모곡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당국에 고발해 총살당하게 만든 아들의 절절한 참회입니다. 뒤늦게 참회한다고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돌아오시는것도 아니고, 오히려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이라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만 돌아오고 있지만 공개 참회를 한 아들의 표정은 편안하고 담담해보였습니다.

베이징의 유력지인 신징바오를 비롯한 많은 중국 언론들이 과거 문화대혁명 시절 홍위병으로 활동하며 어머니를 총살당하게 만든 변호사 장홍빙(張紅兵. 59살)씨의 사연을 앞다퉈 기사화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회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의 상흔이 아직도 중국 사회 곳곳에 뚜렷히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들의 이런 참회에 대해 이미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처럼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들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지 않을까…아니 이미 용서해줬을지도 모릅니다.
월드리포트


(장홍빙씨 가족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장홍빙씨, 왼쪽의 중년 여성이 그의 어머니)

 
장 변호사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문혁의 광풍이 최고조에 달하던 1970년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그는 16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본명인 장톄푸(張鐵夫)를 붉은 병사란 뜻의 홍빙(紅兵)으로 바꿀 정도로 광적인 홍위병이었습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이 곧 진리라고 생각한 그는 가족모임에서 어머니가 "마오 주석이 잘못하고 있다. 왜 류샤오치(劉少奇)를 박해하나"라고 한 발언을 당국에 고발했습니다. 어머니가 마오를 비판하고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세력)의 우두머리로 여겨진 류샤오치를 지지했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발언을 이미 문제삼아 당국에 신고했지만 혹시 아버지가 사사로운(?) 부부 감정 때문에 또는 아이들을 돌봐야한다는 점 등등을 고려해 어머니의 반혁명적인 발언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을까봐 직접 어머니의 발언 내용이 담긴 편지를 쓰고 자신의 홍위병 흉장까지 동봉해 홍위병 대표가 묵고 있는 숙소에 전달한 것입니다.

아들의 고발로 어머니는 곧바로 체포돼 감옥에 갇혔고 2개월 뒤 반혁명 분자로 몰려 총살당했습니다.

장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그렇게 어머니를 고발하면 어머니가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아니 한발 더 나아가 어머니를 고발한 편지 말미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총살 시켜야한다"라고 썼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사회 조류에 그냥 휩쓸려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도대체 그 놈의 사상(思想)이 뭐길래 아들이 어머니를…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장 변호사는 문혁이 끝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용서받을수 없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이후 그는 자신의 잘못과 어머니의 복권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그 결과 지난 80년에는 사형이 잘못됐다는 판결과 함께 어머니가 복권됐습니다. 어머니가 복권됐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잘못을 눈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에는 고향인 안후이성 구전현 당국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의 묘를 국가 문물로 지정해줄것을 청원했습니다.  참혹한 비극의 주인공인 만큼 충분히 문물로서 가치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중요 문물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사를 세상 사람들이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겁니다.

그는 공개 참회에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나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 이 땅에 다시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문혁 박물관을 건립해 잘못된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장 변호사에 앞서 지난 6월에는 산둥성 지난시에 사는 류보친(劉伯勤)이란 사람이 한 잡지에 자신이 홍위병 당시 박해했던 교장과 교사, 급우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사과하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입에 올리지 못하고 금기시됐던 문혁 관련 증언들이 최근 속속 나오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잇따른 문혁 관련 증언의 배후에 어떤 정치적 움직임이 있지 않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커져가는 중국내 빈부격차 속에 가난했지만 평등했던 마오 시절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이를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중국 권력내 정치 투쟁, 움직임 분석과는 별개로 무엇보다 광기의 시간이 되풀이되서는 안된다는 홍위병 아들의 절절한 사모곡, 문혁이 주는 교훈을 중국 사회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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