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명예와 권력까지 사들인 인터넷

주인 바뀐 워싱턴포스트의 미래는

유희준 기자 yoohj@sbs.co.kr

작성 2013.08.07 15: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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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언론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터넷 쇼핑몰로 떼돈을 벌어들인 IT 업계의 거물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의 유력 일간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겁니다. 이번 인수를 놓고 종이신문 시장이 막을 내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워싱턴포스트가 인터넷 세상에 적합하게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말이 나오고 있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건 그 어떤 작은 변화나 노력만으로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과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일 겁니다. 어찌보면 언론산업도 결국 돈이 사업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동안 자구 노력을 지속해왔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등장하는 수많은 신생 매체와의 경쟁 속에서 종이신문은 더 이상 판매부수 하락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방송의 미래도 밝지는 않습니다. 방송도 디지털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사람은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조스입니다. 베조스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갑부 순위에서 19위를 차지했는데요. 현재 재산은 252억 달러, 우리 돈 28조 원에 달합니다. 워싱턴포스트를 2천7백억 원에 인수했으니까 자기 재산의 1%에 불과한 돈으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메이저 신문사를 사들인 겁니다. 그렇다면 메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사들인 이유는 뭘까요? 일각에서는 자선사업 차원에서 망하는 신문사를 구제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메조스가 워싱턴포스트라는 세계적 브랜드를 사들인 뒤 신문을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킬 것이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 직원들에게 공개한 서한에 워싱턴포스트의 미래를 전망해볼 수 있는 단서들이 숨어 있습니다. 디지털시대의 대세나 흐름과도 관련 있는 대목일 수 있어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까 합니다.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의 '가치와 임무'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워싱턴포스트의 경영에도 일일이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포스트가 진실 추구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탁월하게 수행한 부분을 인정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꿔말하면 베조스 본인도 저널리즘의 기본을 중시한다는 뜻이니까요. 워싱턴포스트가 그동안 쌓아온 명성을 계속 유지하게 되면 사주인 자신의 영향력도 그만큼 더 커질 수 있을 겁니다. IT 업계의 거물에 머무는 게 아니라 루퍼트 머독에 이은 언론 권력자로도 변모할 수도 있겠지요. 이와 관련해 베조스는 그레이엄 가문이 그동안 보여준 2가지 용기를 사례로 들면서 자신도 준비됐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용기는 취재기자들에게 "팩트가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천천히 다른 소스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들었고, 두 번째  용기는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관련 취재를 계속하라"고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조스 본인도 그렇게 언론사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말이겠지요.     
워싱턴포스트 캡쳐_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를 존중한다는 베조스가 바꿀 워싱턴포스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종이신문 시대가 막을 내린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이와 관련해 베조스는 경영자 측면에서 뉴스 산업의 위기를 다음과 같이 진단하면서 인터넷 경쟁시대에 맞는 새로운 변화를 주문했습니다.

 "인터넷이 뉴스 사업의 거의 모든 요소를 변화시키고 있다. 인터넷 탓에 뉴스 생산, 소비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믿을만한 수익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뉴스를 수집하는 최소 비용조차 건지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형태의 경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건 어렵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쉽지 않을 것이다.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는 뭔가를 새로 실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의 시금석은 독자와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바로 거기서부터 역으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낼 기회를 갖게 돼 흥분되면서도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워싱턴포스트는 1984년 워런 버핏의 제안에 따라 교육 사업 카플란을 진행하면서 나름대로 사업 다각화를 시도해왔습니다. 지난 2010년의 경우 총 매출액 47억 달러 가운데 카플란 중심의 교육 사업이 62%를 차지했는데요. 신문이나 방송의 수익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교육 사업에 대한 투자로 손실을 만회하는 전략을 추진해온 것입니다. 실제로 2010년에는 뉴욕타임스보다 2배 많은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워싱턴포스트 경영진을 곤혹스럽게 만든 건 신문 사업의 수익성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본사 사옥 매각을 추진하고 인터넷 뉴스 유료화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번 매각으로 80년 넘게 회사를 소유한 그레이엄 가문이  회사를 떠나게 됐는데, 지난해 포춘지가 선정한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된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베조스가 강조한 워싱턴포스트의 가치와 명성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까지 지역 신문에 불과했던 워싱턴포스트를 '미국 최고의 신문사'로 만든 계기는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입니다. 이 사건 이후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최고의 일간지로 거듭나게 되는데요. 아직도 권력형 비리 사건이 터지면 사건 이름 뒤에 게이트란 말을 갖다붙이는데 그 유래는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6년 개봉된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에 잘 묘사돼 있는데요. 고등학교 재학시절인 80년대 중반 이 영화를 처음 본 저는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든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활약상을 보면서 기자란 직업에 매료됐고, 장차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도 키우게 됐습니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언론의 사명은 이 영화를 통해 선명하게 제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워터게이트(Wategate)는 워싱턴 D.C.에 있는 호텔 이름입니다. 1972년 당시 이 호텔에 민주당 선거운동 본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워터게이트 호텔에 5명의 괴한이 침입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워싱턴포스트 소속 사건 기자 밥 우드워드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합니다. 괴한 중 한 명의 수첩에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돕는 일을 한 하워드 헌트란 사람의 백악관 연락처가 발견된 겁니다. 당시 초년병이었던 밥 우드워드 기자는 취재경험이 많고 직관이 뛰어난 칼 번스타인과 함께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딥스로트'라는 익명의 취재원을 만나기도 합니다. 익명의 취재원은 나중에 FBI 국장 마크 펠트로 밝혀졌는데요. 마크 펠트 국장은 지난 2005년 사망 직전에 자신이 '딥 스로트'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 2년동안 추적 취재하는 과정에서 백악관의 개입 사실도 밝혀내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 침입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던 닉슨 대통령은 1974년 '스모킹 건'이라 불리는 녹취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결국 임기 중 사퇴하는 미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이 됩니다.

 이렇게 미국 저널리즘 역사에서 아주 독특한 사건으로 명성을 쌓게 된 워싱턴포스트는 정가의 중심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가장 권위 있고 신뢰할 만한 정치, 정보 신문으로 자리매김 해왔습니다. 사실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사건 보도를 가능하게 한 것도 워싱턴포스트 사주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1971년 베트남전의 실상을 담은 극비문서 펜타곤페이퍼를 뉴욕타임스가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3회까지 보도했지만, 법원의 보도금지 명령이 나오면서 더 이상 보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 때 워싱턴포스트가 나섰는데요. 이 과정을 책임있게 밀어붙인 사람이 바로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이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역사는 18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틸슨 허친스란 인물이 민주당계 기관지로 워싱턴포스트를 창간합니다. 당시 발행부수는 10,000부에 불과했습니다. 1933년 판매부수 감소로 파산위기에 봉착한 워싱턴포스트는 캘리포니아 출신 금융업자 유진 마이어에게 넘어갑니다. 이어 1947년 트루먼 대통령이 마이어를 초대 국제개발은행장으로 임명하면서 경영권은 마이어의 사위인 필립 그레이엄에게 다시 넘어갑니다. 1963년 필립이 사망하면서 경영권은 부인인 캐서린 마이어 그레이엄이 맡게 되는데요. 이렇게 그레이엄 가문은 60년 넘게 워싱턴포스트를 경영해오면서 뉴욕타임스에 버금가는 유력지로 성장시키게 됩니다. 1980년대 워싱턴포스트의 발행부수는 80만 부를 넘어섰고, 최근에는 40만 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캐서린 그레이엄의 아들 도널드 그레이엄은 1971년 기자로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해 뉴스와 비지니스 업무를 맡게 됩니다. 1979년 발행인으로 취임했고, 1991년에는 CEO로, 1993년에는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레이엄 일가를 중심으로 한 가족 기업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레이엄 가문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중시하는 경영을 펼쳐왔습니다. 아울러 신문과 잡지는 물론 텔레비전(NBC 제휴 KPRC, WCIV, ABC 제휴 KSAT, WPLG, CBS 제휴 WKMG 등 지역방송), 케이블 TV, 인터넷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와 교육 서비스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해왔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중심으로 바뀌는 시대적 흐름과 대세를 결국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1994년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을 창업한 뒤 세계 최대 인터넷쇼핑몰로 키워낸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자 드디어 인터넷이 워싱턴포스트를 삼켰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제 더 이상 인터넷이 언론의 종속변수가 아니라는 걸 의미합니다. 물론 이번 인수 건을 통해 베조스가 당장 워싱턴포스트를 크게 바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분명한 건 베조스가 독자와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컨텐츠 공급을 강조하는 정책은 워싱턴포스트의 경영진보다 IT 업계의 거물이 된 베조스가 더 잘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인수를 계기로 워싱턴포스트의 소유와 경영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도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두고봐야 겠지만, 인터넷이 바꿀 언론의 지형 변화는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접어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