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해운대 이안류 예보가 비밀? 피서객 안전은 뒷전

[취재파일] 해운대 이안류 예보가 비밀? 피서객 안전은 뒷전
정부 정책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부산 해운대에서는 '이안류'(역파도)가 그 유행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이안류는 해변에서 갑자기 먼 바다 쪽으로 생기는 바닷물의 좁고 강한 흐름입니다. 두 기관이 이안류를 맡았습니다. 한 기관은 기상청, 다른 한 기관은 국립해양조사원입니다. 해운대 이안류 때문에 한 해 처음으로 100명 넘게 구조된 게 2009년인데, 그때쯤부터 두 기관 사이에 미묘한 긴장 관계가 시작됐습니다. 이안류에 대해 서로 비슷한 정책을 내놓고,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마치 닭갈비 원조 싸움 비슷한 신경전이 벌어진 겁니다.

기상청 이안류 정책의 핵심은 ‘예보’입니다. 언제 이안류가 나타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해 미리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2010년부터 착수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이정렬 교수 연구팀이 기상청 예산을 지원 받아 이안류 예보 시스템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왔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해운대에 연구실을 차려놓고 파도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그래서 ‘해컴’이라는 예보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시스템은 거의 완성 단계입니다. 실제 가동도 가능합니다. 파도의 높이와 파도의 방향 등 데이터를 입력하면 이틀 치 이안류 예보 정보가 나옵니다. 위험한 정도를 5단계로 구분하는데, 3시간 간격으로 나오는 것은 기상청 날씨 예보와 똑같습니다. 기상청은 이 예측 정보를 해경과 119수상구조대 등 유관 기관에 제공한 적도 있습니다. 예보의 정확도는 78% 정도라고 개발진은 설명합니다.

반면 국립해양조사원 이안류 정책의 핵심은 ‘감시’입니다. 이름도 이안류 실시간 감시 시스템입니다. 해변에서 1.2km 전방에 해운대 부이가 둥둥 떠 있는데, 그곳에서 역시 파도의 높이와 방향 등을 수집해 분석합니다. 이 감시 시스템은 말 그대로 예보와 무관합니다. 지금 이 시각,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가를 숫자로 변환할 뿐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안류 경계지수입니다. 숫자에 따라 위험 등급은 4단계로 나뉩니다. 해운대 여름경찰서 사무실에 가보면 커다란 TV에 이 감시 시스템이 떠 있습니다. 24시간 모니터하는 건 아니지만 수시로 참고합니다. 119 수상구조대는 대장과 팀장 등 일부 인원만 이 위험 등급 정보를 문자메시지로 받는다고 합니다.

두 시스템의 개념과 뿌리는 이렇게 다릅니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기상청은 예측 시스템에 수집 데이터를 넣고 돌려 예보 결과를 얻어내는 날씨와 같은 방식이라면, 해양조사원은 감시 시스템에 데이터를 넣고 가동하는데, 지금 환경이 과거 이안류가 발생했던 환경과 일치할수록 이안류 경계 지수가 올라가도록 만든 방식입니다. 해양조사원의 그것은 한 마디로, 예전에 이 정도 파도 조건이면 이안류가 생겼으니까, 지금도 위험할 것이다, 라고 경종을 울리는 겁니다. 현재를 과거에 투영하는 식입니다. 해양조사원은 그래서, 과거 이안류가 생겼던 컴퓨터 모형을 미리 천여 개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해양조사원의 이안류 실시간 '감시' 정보는, 기상청의 '예보' 정보보다 정보의 힘과 활용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히려 수상 안전의 최전선에 있는 해경과 119구조대에 정신적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이 커보였습니다. 경계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어 긴장해야겠네, 각성을 주는 겁니다. 사실 현장에서 구조 요원들이 가장 의지하는 것은 이안류 경계 지수가 아니라, 자신들의 눈입니다. 육안과 망원경입니다. 해경 관계자는 사실 해양조사원에서 이안류가 생기면 자기들한테 좀 알려달라고 한다고 귀띔했고, 119구조대 관계자도 실시간 감시 정보가 솔직히 큰 도움은 안 된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구조 요원이 수영 통제선 근처에서 상시 대기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 감시는 컴퓨터 감시를 늘 압도하게 마련입니다.
이안류_500

그런데 올해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작년까지 기상청 따로, 국립해양조사원 따로, 나름 정보를 생산하던 체제가 무너지고, 해양조사원의 실시간 정보만 가동되고 있는 겁니다. 기상청 예보 시스템은 먹통이 됐습니다. 시스템 개발진은 여전히 해운대에서 예측 정보를 계산하고 장비를 검증하고 있는데, 이 정보가 해경과 119구조대에는 전혀 전달되고 있지 않습니다. 망루에서 근무하는 해경과 119구조대 요원에게 물어봐도 기상청 예보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30명이 갑자기 휩쓸렸다가 구조된 7월 13일 이안류는 사전에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기상청 예보 정보는 연구실 안에만 맴돌고 있었고, 해양조사원 감시 정보는 위험을 실시간 중계하지도 못했습니다. 촬영 때문에 해운대에 머물렀던 8월 1일에도 약한 이안류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안류를 ‘주의’해야 한다는 기상청 정보는, 구조 당국도 모르는 바람에, 제 빛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안류 예측은 해변에서 8번과 9번 망루, 발생 위치도 맞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두 기관이 이안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기상청이 손을 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상청은 최근 이안류 문의 전화조차 응대하지 않고 해양조사원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해양조사원이 이안류 업무를 전담하게 됐다는 이유입니다. 두 기관의 협의 결과, 이안류는 2013년부터 갑자기 기상 현상이 아닌 걸로 정리됐습니다. 그럼 기상청 예보 시스템은요? 물어보니까, 해양조사원에 시스템을 좀 가져가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도 안 가져간답니다. 이번엔 해양조사원에, 기상청 시스템 안 쓰세요? 물었더니, 본인들은 예보 기관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체적으로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게 있으니, 굳이 다른 기관 시스템을 쓸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기상청이 들인 3년의 시간과 예산은 어떻게 되는 건지, 이안류 예보는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슬쩍 뭉개자는 심산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해양조사원의 속내는 복잡합니다. 실시간 감시 시스템에 이안류 예보 시스템까지 들여오면, 기상청 거라서 못 쓰겠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두 개가 서로 뿌리부터 다른 체계라 통합하는 건 불가능하고, 어차피 보완적으로 써야 할 텐데, 그럼 이안류를 주의하라는 경고가 더 많이 나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걸 싫어하는 것이 바로 해운대구청과 해수욕장 상인들입니다. 해양조사원에 여러 차례 민원을 넣었다고 합니다. 해운대 하면 이안류가 떠오른다, 대피 횟수가 너무 많다, 심지어 보도자료 내는 것도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까지만 해도 7,8월을 장식했던 해양조사원의 이안류 보도자료가 올해는 왜 그런지 진짜 쏙 들어갔습니다. 피서객 안전보다, 지역 경제를 각별히 챙기는 해양조사원인 것 같습니다.

두 기관이 이안류를 예보하겠다, 감시하겠다, 괜히 보도자료를 뿌려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장시간 돈을 들여 예보 체계를 만든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1년 전 8월 4일, 해운대에서는 대규모 이안류가 발생해, 피서객 140여 명이 먼 바다 쪽으로 한꺼번에 휩쓸렸습니다. 수영에 자신 있는 사람이라도 힘이 빠지면 익사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걸 TV에서는 저~ 멀리서 찍힌 CCTV로 보여드려서 별 게 아닌 것 같지, 실제로 바닷물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건 순식간입니다. 119구조대가 촬영한 영상 속에서는, 이안류에 휩쓸려나가는 사람이 해변을 향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날 해운대는 정신없이 피서객을 구조한 뒤에야 해수욕장 일부를 통제했습니다. 이안류 예보는 이런 뒷북 대응을 그만하고, 앞으로는 인명 피해를 사전에 막아보자는 지혜의 산물입니다.

이안류 예보는 안전한 해운대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불안한 것은 이안류 그 자체가 아니라, 이안류가 언제 생길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안류를 걱정하는 사람은 이안류 예보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될 때 안심하고 바다에 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기자라서 걱정이 평균 이상인 것 같습니다만, 매년 해운대에서 구조되는 백여 명의 피서객, 제가 그 당사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해수욕장 손님 떨어지니까 이안류 보도자료를 자제하고, 이안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게 한다? 이러다 또 잔뜩 휩쓸려나가면 큰 뉴스가 되고, 해운대는 이안류 위험의 상징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악순환입니다. 해양조사원은 홈페이지에 기상청 예보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는데, 바람직한 일입니다. 해운대 해경도 모르는, 119구조대도 모르는 예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안류 예보가 사장되지 않길 바랍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